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남자와 여자는 같은 별에 사는 외계인이다.

까칠부 2010. 3. 21. 18:41

예로부터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문필가,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여자는 도무지 모를 존재다."

 

여자 입장에서는 어떤지 모른다. 그러나 남자 입장에서 여자란 불가해의 외계인과도 같은 존재다. 도대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아니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도 모르겠는.

 

차라리 고양이라면 처음부터 생긴 게 다르니 다르다 이해할 수 있다. 생긴 것도 다르고 하는 것도 다르니 원래 나와 다르려니. 그러나 여자는 나와 다른 것이... 아, 많구나. 예쁘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흠...

 

아무튼 그렇다 보니 무얼 해주려 해도 뭘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이걸 해 주면 좋아할까? 아니면 저걸 해 주면 좋아할까?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면 그냥 비싼 것 아무거나 주면 좋을 텐데, 가까운 사이이기에 더 조심스럽다. 물건을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을 전하는가.

 

선물이란 그래서 소통이다. 선물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선물의 가격표가 아니다. 선물의 쓰임이 아니다. 그것을 고르고 산 자신의 마음이다. 그것을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진심이다. 그래서 더 고민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만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담을 그릇이기에.

 

그러나 무지란 두려움이라, 알지 못하니 차마 선물을 사기도 꺼려진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기 마음을 전하는 것이 서툰 남자들이기에 -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리라 믿는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남자들이기에 더욱 선물을 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평생 백화점에 선물을 사려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의 네 꼰대들처럼.

 

그에 반해 상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 아니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은 얼마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가. 윤형빈은 끝내 헛발질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러나 선물을 사는 동안에는 더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러웠다. 그게 또 오히려 여자친구인 정경미에게는 당혹으로 다가왔겠지만.

 

그러나 역시 선물이란 주고 받는 마음인 것이다. 어떻게 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르고 돈을 주고 구입하고 또 조심스레 건네는 마음이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담아서, 약간의 떨림과 흥분을 담아서.

 

사이즈도 맞지 않는 속옷이라든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옷에 악세사리라든가, 그럼에도 고맙게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이란. 고맙게 웃으며 받아주는 그 마음이야 말로 선물에 대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겁쟁이에 허세쟁이인 남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경규와 김태원, 이윤석, 김국진이 좋았고, 어느새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김성민과 이정진의 마음씀씀이도 좋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당당한 윤형빈의 무모함도 좋았다. 이게 바로 남자의 모습이라.

 

아마 여자들 가운데는 오늘의 이경규나 김태원의 모습이 거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청자게시판에 가보니 이런 미션이 있으면 바로 그같은 모습들에 대한 비난이 퍼부어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남자의 본모습인 것을.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남자 역시 여자가 이해할 수 없는 별개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여자란 그렇게 남자들에게 가깝고도 먼, 사랑스러우면서도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딸이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여자친구가 되었든 아내가 되었든.

 

간만에 정말 의미있는 미션이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해봐야 할 101가지라는 주제에 딱 어울리는. 이것이 남자라. 그리고 그런 남자에서 머물기보다 한 걸음 더 내딛는 남자란.

 

 

아무튼 이번 미션에서 유독 눈에 띈 부분은 어느새 이경규 저격수로 자리잡은 이윤석이다. 이경규가 김태원더러 남자라 했을 때 김태원이 이윤석의 이름을 떠올린 것처럼 남자의 자격 멤버 가운데서도 가장 고루한 꼰대로서의 남자의 모습을 보이던 이윤석이, 이제까지의 하인캐릭터에서 소심한 반항을 하는 이경규 저격수로 나서고 있다. 오히려 김국진의 저격보다 더 재미있다. 더구나 저격을 하고서는 소심하게 손을 모으고 사과하는 모습이 어찌나 유쾌하기만 한지. 드디어 이윤석도 물이 올랐구나.

 

어머니 옷을 사러 가서 어머니 연배의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도움을 받는 김국진의 모습도 정겨웠다. 스스럼없이 그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김국진의 인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하겠다. 소탈하고 소박하고.

 

누나에게 선물을 하고 돌아서는 김성민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억지로 떠맡겨지듯 주어진 미션임에도 선물을 주려 짧지 않은 시간을 차안에서 기다리던 이정진도. 여자 속옷매장에서 아내의 속옷을 사며 당황스러워하는 이윤석의 모습은 정말이지 귀여웠다. 좋은 사람이다. 윤형빈의 허세 역시 무모하지만 용감했다.

 

드디어 1년. 참 멀리도 왔다. 처음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싶더니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초반 5의 시청율도 나오지 않아 망하네 마네, 그러나 어느새 여기까지.

 

결국에 그같은 진심이 통한 때문이리라. 허세 없는 진심들이. 진심어린 허세들이. 남자의 날모습이. 꾸밈없는그 진솔한 거친 모습들이. 큰 웃음은 없어도 공감어린 미소가 있다는 것이.

 

새삼 남자의 자격 1주년을 축하한다. 그동안 함께 해 온 시간들에 대해. 함께 울고, 함께 웃고, 때로는 화내고 욕하고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시간들이.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