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예능과 이미지소모...

까칠부 2010. 3. 16. 22:48

사실 이 이야기는 청춘불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 번 - 아니 여러번 반복했었다. 거의 대부분 김신영이 타겟이었다. 더불어 김신영의 방식에 의존하는 제작진에 대해서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이미지의 반복적인 노출과 캐릭터 구축과의 차이에 대해서였다.

 

한선화가 언제부터인가 백지가 되었다. 통편녀였는데 유리와 곰태우와 삼각관계를 만들더니 그 말도 안되는 구구단 실력으로 백지캐릭터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김신영인지 아니면 제작진인지 아예 그것을 밀어붙인다. 프로그램 안에 코너까지 만들어서 그냥 백지로... 그 결과가 어땠더라?

 

내가 구하라의 유치개그를 반대한 것도 그래서였다.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한 번은 재미있어도 두 번은 질린다. 세번째는 짜증이 난다. 이미지소모란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두 번 보니 지루하고 세 번 보니 질리고 네 번 보니 짜증이 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도 반복해 노출되면 결국에 언젠가는 비호감이 되어 거부되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면 어째야겠는가.

 

답은 이미 다른 예능 가운데 있다. 요즘 1박 2일이든 무한도전이든 거의 보지 않아 다른 프로그램을 예로 들기는 그렇고, 당장 남자의 자격만 보더라도 그렇다. 청춘불패에 백지 한선화가 있다면 남자의 자격에는 할마에 김태원이 있다. 아무리 한선화더라도 IQ81에 몰상식의 극치를 보이는 김태원에 비하면 그 캐릭터의 강도에 있어 한참 거리가 있다. 그러나 김태원은 지금도 소비된다. 어떻게?

 

역시 전에도 했던 말이다. 김태원의 바보캐릭터 뒤에는 음악인 김태원이라고 하는 반전이 숨어 있다. 아니 드러나 있다. 음악인 김태원으로서와 더불어 토크에서 남다른 식견과 경륜이 엿보이는 재치있는 멘트를 던지는 예능인 김태원도 있다. 바보스러움이란 천재와 예능인에 딸린 하나의 개성일 뿐이라.

 

더구나 김태원은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코너처럼 대놓고 과시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자체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가볍게 툭 던지는데 알고 보니 바보더라. 알고 보니 이건 돌고래와 호형호제하는 몰상식이더라. 바보스러움은 단지 김태원이라는 인간을 이루는 일부라.

 

한 마디로 "뿐"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그것은 단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지 김태원이라는 한 개인의 그같은 일면에 불과할 뿐이라. 즉 입체성이면서 제한성이다.

 

다시 말해 전에도 말한 70%론과도 통한다 할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이란 항상 자신의 100을 내보일 수 없다. 아니 내보일 수 없어도 100이란 그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이며 최고일 것이다. 100을 다 보여주고 나면 어찌 하는가. 그래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70만을 보여주며 항상 그것이 최선인 듯 하다가 나머지 30으로 반전을 주는 것이다. 항상 기대할 수 있게끔.

 

마찬가지로 입체적이라는 것은 그것은 단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체가 100이면 그것은 70, 혹은 50 그 이하다. 나머지가 50 이상이 있을 수 있다. 기대하게 되며 반전이 이루어진다. 항상 보던 모습임에도 그같은 일상에 숨겨 보여줄 때 그것은 때로 100 그 이상의 놀라움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미 기존에 구축된 캐릭터로써 기대하는 것도 있다.

 

역시나 그래서 나오는 게 기대와 충족. 재미란 무엇인가? 기대다.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 사람들은 만족을 느낀다. 기대로부터 배신당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움을 느낀다. 만족은 언젠가는 질린다. 놀라움도 언젠가는 지친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는가. 만족하게 하고 놀라게 해야 한다.

 

바로 그게 캐릭터다. 단순히 구구단 못하고 상식이 부족한 백지가 아닌, 그 백지까지 아우르는 나머지가 바로 캐릭터다. 하늘같은 선배들 앞이기에 혹시나 하면서도 끝끝내 고개를 떨구고 울먹이고 마는 그런 신인으로서의 순수함이라던가, 신인이고 무명이기에 분량을 챙기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에서의 안쓰러움과 귀여움, 그리고 가끔 보이는 의외로 날카롭고 영리한 말이며 행동들까지. 그런데 유독 구구단은 못하더라... 다른 모습들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보여지는 그같은 모습은 한결같으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준다.

 

즉 자기가 자신을 연기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기를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예능감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다. 자기라는 안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모습들을. 음악인으로서의 엄밀함과 국민할매로서의 우스꽝스러움, 그리고 연륜이 느껴지는 토크와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몰상식...

 

구하라의 유치개그가 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예쁘다. 그것도 화려하게 예쁘다. 새침하게 생겼다. 예쁜 척 할 것 같다. 그런데 보여지는 털털함의 의외성. 그리고 또 가끔 보여지는 아이돌로서의 화려함이 보이는 모습들. 유치개그란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다. 저렇게 예쁜 아이가 저렇게 웃기기도 하는구나. 저런 돌 날라갈 것 같은 개그로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같이 웃게 만드는구나.

 

만일 유치개그를 처음 하던 그대로 일상에 녹여냈다면 나는 오히려 반겼을 것이다. 민호가 게스트로 왔을 때 했을 듯 일상 가운데 녹여 구하라의 엉뚱한 매력으로 승화시켰다면 나는 오히려 그것을 더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청춘불패는 그것을 구하라의 전부로 만들었지. 내가 반대한 이유다. 구하라의 전부가 되어 버리면 유치개그와 함께 구하라도 소모된다.

 

예능에서의 이미지소모론에 대한 반론이다. 예능에서 이미지가 소모되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결같게. 그렇다고 매번 다를수는 없다. 그것도 꽤나 정신사납고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기대를 하게 만들되 배신당하게 만들라. 만족시키면서도 놀라게 하라.

 

결국에 자기 자신을 연기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게 하라는 것이다. 박규리가 하고 있는 그대로다. 벌써 1년을 넘어가고 있는데 오히려 박규리의 여신컨셉은 박규리라고 하는 본질까지 침범하며 그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는가. 여신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망가지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그 타이밍을 정확히 캐치해낼수 있는 박규리만의 어떤 감각 때문이다. 항상 박규리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저 여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라 한 열댓은 말아먹었다. 아니 덕분에 춘추전국시대는 400년만에 끝날 것일까? 과거를 조사할 필요가 있겠다.

 

과거 예능에 도전했던 연예인들이 실패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한 가지가 통한다. 그러니 그것만 들이미는 것이었다. 반복해서 보이고 그것을 소모했다. 그리고 지치고 지루해하는 사이 자신도 소모되었다. 더 이상 어떤 기대도 없고 놀라움도 없으니.

 

리얼버라이어티가 유리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점에서다.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에서는 사실 출연 자체가 제한되어 있고, 프로그램적으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에 자기의 다양한 일면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MC급을 제외하고는 결국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일면만을 보이기 쉽다. 쉽게 소모된다. 역시 박규리가 놀라운 이유다.

 

그러나 리얼버라이어티는 말 그대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일단 한 번 출연하면 고정으로 오래 간다. 기회가 많다. 설사 통편집을 당하고 나오는 분량이 얼마 안 되어도 반복적으로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일 수 있다. 항상 전부가 아닌 일부로서 시청자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리얼버라이어티에 반복출연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소모한 연예인이 몇이나 되는가. 제대로 리얼버라이어티를 했을 경우.

 

그래서 바로 청춘불패를 대놓고 까댔던 것이었지만. 김신영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었고. 이미지를 반복해 노출하는 것과 캐릭터 구축은 다르다. 그런 식으로 반복해서 특정한 이미지만을 노출하는 것은 결국 이미지와 더불어 개인을 소모하는 것이다. 개인이 소모되면 프로그램도 소모된다.

 

제대로 캐릭터만 잡아 그것을 자기로써 연기할 경우 오히려 이미지 소모는 걱정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로써 그에 대해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생긴다. 청춘불패 출연으로 어느샌가 G7에 대해 이전과 다른 기대가 생긴 것이 그 예다. 기대하게 된다. 어떤 모습들에대해.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떻게 자신의 다양한 - 입체적인 자기를 보여 줄 수 있다면 이미지는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확고하게 대중에 각인되게 된다.

 

즉 굳이 예능에 출연한다고 이미지소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예능에 나와 웃긴다고 그것이 모두 이미지소모가 되는 것이 아니고. 돌려쓰기라는 것이다. 자기 안에 다양한 일면이 있다면 그것을 지루함 없이 적절히 조합해 항상 놀라고 항상 기대하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예능에서도 어쩔 수 없이 연륜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일 테지만. 경륜이란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돌이란.

 

예능에 나와 웃긴다고 그저 이미지소모라...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 대중은 이미 무대 위만이 아닌 무대 뒤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배에 표시를 하고서 칼을 찾으러 들어가봐야 강물은 이미 흘러간 뒤라는 것이다. 배는 흘러갔는데 칼은 어디 있을까?

 

이미지소모란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단지 특정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소모되고 말 것인가. 자기라고 하는 하나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대중에 보이고 인정을 받을 것인가. 대중으로부터 자기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후자를 이미지구축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과연 예능은 이미지를 소모할 뿐인 달콤한 독배일 뿐인가. 그러나 이미 예능에서의 캐릭터로서 대중에 인지도를 높이고 호감도를 높이고 있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에 소모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오래 간다. 오히려 그저 연기와 음악만으로는 소모되고 말 것도 더 오래 갈 수 있다. 그것을.

 

구하라에게는 더구나 아주 좋은 모델이 있다. 스승일 것이다. 박규리. 박규리의 센스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보고 따라해 배운다면 결코 이미지소모를 걱정할 것이 없으리라. 지금까지 예능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욱 하라구로서 대중에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니. 더욱 도전할 때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라구를 알리기 위해서.

 

미리 겁먹고 물러나는 사람에게는 뒤가 없다. 뒤란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지혜라는 것은 바로 그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미지를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지를 구축할 것인가. 기회란 항상 열려 있음을. 두려워 움츠러드는 자에게 기회란 없다. 용기가 곧 지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