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물류일 2주간의 감상과 보고

까칠부 2020. 11. 1. 07:03

지지난주부터 단기 계약직으로 물류일을 하고 있다. 단기 계약직이 일용직보다 좋은 점은 별 말 없이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고 돈을 월급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4대보험도 적용되고, 각종 연차니 경조휴가니 하는 것들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느끼는 것은 더럽게 힘들다.

 

대한통운이 지금 물류를 소화 못해서 난리난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일은 더럽게 힘든데 최저임금이다. 야간수당 더해지니 꽤 받는 것 같은데 그래봐야 최저임금이란 것이다. 기왕에 최저임금 받고 일할 것이면 누가 그 힘든 상하차 하려 하겠나. 물류에도 여러 일이 있다. 기왕에 같은 돈 받고 일할 것이면 분류나 피킹을 하지 상하차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분류나 피킹보다는 상하차가 다 성격에 맞더라.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어다 나르면 되니까.

 

굳이 육체노동을 하겠다면서 일급도 더 높고 난이도도 낮은, 더구나 숙련도에 따라 급여가 오르기도 하는 공사장 일 대신 물류일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정해진 곳으로 출퇴근하고 싶다. 숙식노가다도 사실 숙식하는 장소만 바뀔 뿐 매번 근무지가 달라지는 건 마찬가지란 것이다. 더구나 매일 출근하는 일이라면 사무소에서 일단 모인 뒤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출근에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시간도 근무시간의 연장이다. 반면 물류일은 어디서 할 것인지만 정해지면 멀든 가깝든 일하는 동안에는 계속 거기서만 일할 수 있다.

 

아무튼 물류일 몇 주 하고 내린 결론은 하나다. 택배를 보냈는데 부서져서 도착했으면 부서질 물건을 택배로 보낸 게 잘못이다. 그러고보니 전부터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택배를 보낼 때면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과하게 포장해서 보내고는 했었다. 정답이었다. 택배비는 같다. 깨질 물건이라고 택배비를 더 받거나 그러는 게 아니다. 더구나 일하는 사람들도 최저임금에서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깨질 물건이라고 따로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힘들어 뒈지겠다. 그거 살살 들었다 놓으려면 그만큼 더 힘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던져야 산다. 한두개면 어떻게 버티면서 살살 놔 보겠는데 그게 몇 차 넘어가면 그때는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던지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하루에 깨져서 배송도 못 보내는 물건이 제법 나온다. 어쩌겠는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으면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깨지고 손상되는 것이 두려우면 그만큼 돈을 더 주고 특별히 다루어 주기를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받고, 혹은 같은 돈을 받더라도 덜 힘든 상태에서 물건 하나하나 신경쓰며 물류일도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아무에게나 맡겨도 그만, 더불어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해도 그만이라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어차피 최저임금이니 최저임금만 받을 아무나 시키면 그만인 것이고, 일하는 입장에서도 여기 말고 다른 데 가도 똑같이 최저임금은 받으며 일할 수 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특정한 물품에만 특별한 대우를 해주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근육통도 사라지고, 퇴근할 때 느껴지던 고단함을 넘은 육체적 고통도 거의 없어진 채다. 대신 시간이 부족하다. 택배물량이 요즘 터져서 하루 기본 11시간은 물류센터에 붙박혀 있어야 한다. 그래도 주말은 쉴 수 있으니 다행. 그리고 일한 만큼 또 급여도 정확하게 들어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노가다가 좋은 점은 이것 하나다. 돈 떼먹힐 일이 거의 없다. 특히 물류쪽은 더욱. 월급도 못받고 생고생한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덕분에 일주일에 휴일인 주말 이틀 겨우 드라마 보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저것 골라 봤는데 그나마 가장 마음에 끌리는 것이 유인나의 '나를 사랑한 스파이'. 느긋하게 떡갈비 안주에 막걸리 마시면서 쉬는 김에 드라마도 몇 편 때려 본다. 대부분은 잔다.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항상 느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