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 요철이와 찌빠와 페페와 간첩의 기억

까칠부 2021. 2. 15. 04:35

발명을 해 보겠다고 매일 엉터리 실험만 하는 말썽꾸러기 꼬마가 있다. 그리고 꼬마에게 어느날 펭귄인지 공룡인지 로봇인지 아무튼 무언가가 배달되어 온다. 그리고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알고 보니 간첩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 아이들 만화에는 그렇게 간첩이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하여튼 동네에 뭐 수상쩍은 사람이 있다 싶어 조사해 보면 거의 북한과 접선하는 간첩인 경우가 많았다. 때로 간첩들이 주고받는 난수표를 주워서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미국에게 소련이라면 역시 한국인에게는 북한이고 간첩이다.

 

그래서 해돌이 뿐만 아니라 찌빠도 페페도 북한에 그리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초능력은 북한으로 넘어가 공산당을 골탕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아, 요술공주 보배도 있었구나.

 

그런 느낌이다. 시즌1 마지막화에 윌의 대사에 나온 '아타리'에서 실감하고 만다. 물론 나는 아타리 세대가 아니다. 아타리는 커녕 내가 처음 가져 본 게임기가 대학 시절 지인에게서 중고로 샀던 메가드라이브였었다. 그 전에는 게임기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었다. 당연히 그런 걸 살 만한 형편도 안되었던데다가 주위에도 그런 걸 가지고 있는 녀석 따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아는 것이다. 80년대 미국에는 아타리라는 게임기가 있었다. 머리로 아는 사실이 이미 익숙한 장면들과 함께 그 시간들을 재구성해낸다.

 

1980년대 미국인들은 소련이라고 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위협을 실제로 느끼며 살았었다. 언제 소련과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른다. 소련에 의해 미국이 공산화될지 모른다. 그 전에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인해 이 세계가 끝나게 될 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스푸트니크에서 아폴로로 이어지는 현대문명의 정점에 있는 두 거대제국의 경쟁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결과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소련이라는 공포와 그와 맞서는 국가라고 하는 거대권력과 그리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 기적과도 같은 과학적 성과들은 환상을 만들어냈다. 미국 어딘가에는 외계인과 UFO를 실제로 연구하고 초능력자를 양성하는 비밀기관이 있을 것이다. 그들로 인해 실제 존재하는 그것들이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구는 거대한 공과 같은 구조로 내부가 텅 비어 있는데 정부에서 그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것들도 그래서 항상 미국 정부와 연관지어 설명되고는 했었다.

 

마을 바로 옆에 정부의 비밀스런 연구시설이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곳에서 초능력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실제 초능력자가 숨겨져 있다 해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른 세계와도 연결된다. 다른 차원의 존재가 그 실험을 통해 세상에 나타난다. 화면의 톤까지도 어쩌면 그 시절 외화들을 꼭 닮아 있는 것인지. 그 시절의 음악과 문화와 일상들이 그 시절 가졌던 판타지와 함께 나타난다. 그런 걸 안다는 자체가 어려서 그런 종류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잡지만 보면 죄다 그런 이야기들 뿐이었으니. 마치 '응답하라'시리즈를 배경으로 그 시절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판타지의 설정까지 그대로 함께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요철이가 엉터리 실험을 하고, 찌빠가 날아다니고, 페페가 동네를 누비는. 어디선가 둘리는 길동이 아저씨네 집을 날려먹고 있겠지? 그리고 동네에 숨어 있는 간첩의 존재로 인해 모험도 해 보는 것이다.

 

미국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오래전부터 잃고 있었다. 워킹데드 이후 시즌이 넘어가도 계속해서 꾸준히 보게 되는 드라마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더이상 문화적으로도 전혀 다른 남의 나라 드라마를 어색함까지 참아가며 찾아봐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한국 드라마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굳이 다른 나라 드라마를 보느라 부족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건 너무 익숙하다. 오히려 한국드라마보다 더 익숙하고 친근한 내용이란 것이다. 아, 그랬었지. 생경한 느낌이다. 미국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내게 가까운 존재였는가.

 

추억으로 더욱 보게 되는 드라마일 것이다. 오히려 더 낯설기만 할 오래전 미국의 이야기가 그렇게 친숙하게 내게까지 다가온다. 그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찾기에는 글쎄... 그런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제도 썼지만 하필 최근 방영을 시작한 한국드라마 '루카'와 병행해 보면서 더욱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을 것이다. 성인 남자와 어린 소녀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만큼 익숙한 소재고 설정이다. 시즌 2를 시작하려 한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