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첫째 채소란 자체가 애초부터 사람이 선호하는 식재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과일은 단맛이라도 있지 채소는 대부분 아무맛도 나지 않거나 심지어 쓰고 떫고 매운 경우마저 매우 흔하다. 그나마 맛있다며 먹는 채소들조차 예외는 아니라서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바로 한구석에서 저같은 불쾌한 맛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대부분 채소들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조차도 농업기술의 발달로 종자를 개량한 탓에 최근에 들어 맛이 더 선명해지고 좋아진 것이 이 정도란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연상태의 채소란 것이 사람이 일부러 좋아서 찾아먹을 만한 음식이었겠는가.
원래 사람의 몸이란 섬유질 많은 식물을 소화해서 에너지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사람은 당과 지방과 단백질을 소화시켜 에너지로 쓰고 몸을 구성할 뿐 섬유소는 그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배출할 뿐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샐러드만 죽어라 퍼먹은 뒤 다음날 화장실 가서 확인해 보면 된다. 조금의 더러움만 참으면 화장실에서 자신이 전날 먹은 채소의 종류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채소는 영양이 되지 않는다. 일단 소화기관에서 소화시켜 흡수할 수 있어야 영양이 되는데 사람의 몸은 대부분 채소들을 영양으로 사용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왜 채소를 먹는가? 다른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말 그대로 초근목피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얻으려면 당질이 풍부한 열매나 구근류, 혹은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다시피 그런 것들이 자연상태에서 항상 흔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열매가 열리는 시기는 정해져 있고, 모든 식물의 뿌리가 당질을 저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짐승의 고기를 얻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사냥이란 수단을 통해야만 한다. 그래서 다른 영양을 섭취할 수단이 없을 때 사람은 채소라도 먹어 배를 채워야 했던 것이었다. 바로 먹을 것이 떨어진 춘궁기에 배라도 채우려고 산으로 들로 나가 나물을 캐야 했던 조상들의 모습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는다는 행위는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영양을 섭취하기 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당질부터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당질을 가장 고농도로 압축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곡식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인류가 가장 흔히 먹는 밀과 쌀, 보리, 옥수수같은 주곡물들이었다. 밀과 쌀로 만든 빵과 밥만 제때 충분히 먹어주어도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그 밖의 나머지들은 그런 기본에 더한 사치이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부족했을 때의 대안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역사상 거의 모든 문명들은 일단 주곡물의 확보에 주력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면 먼저 주곡물부터 심고 본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유럽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전근대사회에서 경제의 단위는 어디까지나 땅이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주곡물이었었다. 유럽에서는 밀이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쌀이었다. 먼저 밀과 쌀이 있고 그를 대신할 수단으로 금과 은이 유통되었던 것이었다. 전근대 일본에서 다이묘들의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던 고쿠다카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석꾼이네 만석지기네 쌀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그 부를 측정하고 있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아서 군주들의 재정이란 많은 시기 자신이 소유한 영지에서 농노들이 농사지어 거둬들인 생산을 화폐로 계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땅이 있으면 당연하게 밀과 벼를 심어야 했었고, 원래 밀과 벼를 기를 수 없는 땅이라도 그리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만 했었다. 인류의 역사란 그를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산을 깎고, 숲을 베어내고, 늪과 바다를 메우는, 물이 없는 황무지에도 물을 끌어다 곡식을 심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다른 작물을 심어야 했었다. 아니면 가축을 기르던가.
프랑스에서 흉년이 들자 구황식량으로 소를 먹었다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조선왕조실록에 흉년이 들자 배고픈 백성들이 농사에 쓸 소까지 잡아먹는다며 우려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농사는 짓지 못해도 풀밭을 만들어 소와 양은 기를 수 있다. 아니면 밀농사까지는 어려워도 소와 말을 먹일 귀리나 콩 정도는 적당히 기를 정도가 된다. 돼지야 그냥 숲에 놓아 기르면 알아서 먹을 것 찾아먹고 겨울까지 살을 찌워 놓을 것이다. 그러다 가축 먹일 것도 부족해지는 겨울이 되면 큰 놈들은 도축해서 햄이든 베이컨이든 만들어 겨우내 보관해 놓고 먹으면 되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가난한 시절의 유산은 풀죽이나 나물 같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흉년이 심해지면 밀이나 쌀과 같은 곡식이 고기보다 더 귀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곡식을 주로 먹었던 것이었다. 고기를 주로 먹었던 것이었다. 채소는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단지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었다. 곡식과 고기를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한 용도이거나, 아니면 곡식과 고기가 부족해서 양이라도 늘리기 위한 용도이거나. 그리고 후자의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하게 채소를 섭취해야 할 필연성은 줄어들게 된다. 즉 이미 풍족하게 곡식과 고기를 먹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더 맛있게 먹겠다고 반드시 채소를 먹어야 할 필요성은 줄어들고,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채소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채소는 굳이 어렵게 힘들게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과연 그런 노력을 들일 이유가 채소란 식재료에는 있는가.
내가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최저시급보다 50%를 더 준다고 해도 하려는 사람이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살을 찌우려고 먹어도 살이 빠진다. 지방이 많은 목살을 매일 구워먹어도 오히려 살이 빠질 것을 걱정해야 하는 곤란한 처지다. 기왕에 먹으려면 고열량으로 먹어야지 다이어트 식품은 있어도 처치곤란이다. 괜히 먹어도 배만 부른 음식은 내게는 독과 같다. 아마 전근대사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샐러드로 배채울 시간에 고기를 한 점 더 먹는다. 고기가 없으면 빵이든 밥이든 조금이라도 뱃속에 우겨넣어야 한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건강에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에 채소를 먹어야 한다. 실제 채소가 건강에 좋다는 것도 영양이 넘쳐나는 최근의 이야기지 오래전에는 당연하게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여기고 있었다. 몸에 힘이 떨어지거나 병에 걸리거나 하면 고기를 약처럼 찾아 먹었고 실제 효과까지 보았다. 채소는 그나마 먹는 양을 늘리거나, 아니면 맛과 향을 더해지는 보조수단이었던 것이지 건강을 위해 찾아먹는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영국과 미국에서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채소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상식이 전파되기 전 곡물과 고기라는 주식의 확보가 더 절실하던 시기에 그것을 이루어낸 어쩌면 유일한 문명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같은 이유로 중국의 요리들도 대부분 기름지기 이를데 없다. 중국 요리에 쓰이는 기름이 바로 돼지기름이다. 그리고 중국 요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재료들도 대부분 고기들이다. 중국에서도 맛과 향을 더하는 용도 이외의 채소는 몇 가지만 겨우 쓰이는 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곡물과 과일과 채소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심지어 채소에서도 향채와 일반 채소는 또 전혀 다른 분야인 것이다. 어째서 한국요리에는 채소가 많은가. 그 전에 한국에서 요리란 것이 성립한 것이 과연 언제이던가.
채소는 당위가 아니다. 더욱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채소를 먹지 않아도 사람은 건강하다. 주말 동안 채소라고는 먹지 않고 고기만으로 술만 먹어대는데도 오히려 변비 하나 없다. 혈압도 정상이고 혈중콜레스테롤이며 신장과 간수치 역시 모두 정상범위 안에 있다. 워낙 몸쓰는 일이 많은데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량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굳이 채소가 필요없다. 오히려 건강 좀 챙겨보겠다고 쌈채소 사다가 고기 좀 싸먹었더니 바로 화장실에서 설사부터 하고 본다. 왜 어떤 사람들은 채소를 먹지 않는 것인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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