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이윤석론, 소심한 그가 아름답다...

까칠부 2010. 3. 25. 00:15

문득 지난주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자격을 하나의 드라마라 간주했을 때 과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메인MC인 이경규? 아니면 국민할매 할마에 김태원? 봉창 김성민? 돌싱 김국진? 비덩 이정진? 막내 윤형빈?

 

그동안도 그랬다. 그는 항상 비겁하고 소심했다. 나약했다. 더구나 고루하고 완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항상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가장 놀라고, 가장 당황하고, 가장 회의적이었으며, 가장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션이 끝났을 때는 가장 만히 바뀌어 있었다.

 

바로 이윤석이다. 참 욕도 많이 먹었다. 웃기지 않는다고. 그런데다 소극적이고 뒤로 뺀다고. 잘하는 게 없다고. 가끔은 또 문제가 될만한 말이며 행동을 해서 더 그러기도 했었다. 그나마 이정진이 비덩 캐릭터를 갖게 되고서는 윤형빈과 더불어 가장 존재감 없는 멤버이기도 했고. 한 마디로 쩌리였다. 이윤석 자신도 인정하듯 그닥 대단할 것도 주목할 것도 없는.

 

그러나 정작 지난주 지지난주 남자의 자격 미션에서 주인공이 누구였느냐면 바로 다름아닌 이윤석이었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지난주 선물편과 지지난주 아이돌편에서 미션이 요구하는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이윤석 그였다.

 

사실 남자가 여자속옷을 사러 가기가 그리 쉬운가. 여자속옷 매장 근처에 가는 것만도 그리 쑥쓰럽고 민망하다. 더구나 이윤석 정도면 남자다운 것에 익숙한 세대다. 여자는 별세계의 존재이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그래서 여자 속옷 사이즈까지 외우고 다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물도 남의 일이다. 그저 성실하게 진심으로만 대하면 알아주겠거니... 자기 일만, 역할만 잘하면되겠거니...

 

그런데 어느날 선물을 한다. 그것도 전혀 생각도 못한 속옷을. 당황해하고 민망해 하며 속옷을 고르는 모습이란. 여자속옷의 심오함과 다양함에 놀라며, 쑥쓰러워하며, 부끄러워하며, 그러나 아내를 위해 속옷을 고르고 그것을 선물하며 뿌듯해 하는 모습이란.

 

지지난주 열광편에서도 처음 아이돌에 열광하는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던 것이 이윤석이었다. 역시나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 그대로, 과연 아내도 있는데 여자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그것은 이성친구편에서 아내도 있는데 어찌 이성친구를 사귈 수 있겠느냐며 회의하던 모습의 연장선상이다.

 

역시나 놀라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러나 이윤석은 이내 상황에 적응한다. 놀라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어색한 모습 그대로, 서툰 모습 그대로, 미션에 적응하며 자신을 바꾸어간다. 이성친구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고,

 

바로 남자의 자격이 추구한 그것이었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보통의 평범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런 남자들이 이루어나갈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루어나가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놀라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서툴고 어색해 쭈뼛거리면서도 한 번 쯤 해 볼 만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미션을 접한 남자들의 모습이란 바로 이윤석과 같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윤석이 소심하고 나약하기만 했느냐면, 해병대편에서도 이미 헬기레펠에서 뛰어내리고, 참호격투에서도 가장 열심히 버틴 이가 또 이윤석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윤석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할 수 있는 마라톤편에서는 절뚝거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그는 끝내 하프코스를 완주하고 있었다. 이윤석과 이경규가 만들어낸 드라마 아닌 드라마는 감동 그 자체였다. 남자의 모습이란 이렇지 않을까.

 

프로그램에서 비쳐지는 이윤석의 모습이란 그렇다. 말한대로 그는 소심하고 나약하며 비겁하다. 고루하고 완고하며 또 때로 무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윤석은 매우 성실하다. 나이가 많은 형들인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에게 깍듯하고 동생인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에게는 다정하다. OB들과 있을 때는 착한 막내가 되고, YB들과 있을 때는 자상한 큰 형이 된다. 그것이 드러난 것이 또 "아내가 사라졌다."편과 "자동차"편이었다. 또 아직 예능에 익숙지 못한 YB들과 있을 때는 나름 MC로서 상황을 부여하는 역할도 한다. 소심하지만 마음착한 가장이라는 캐릭터는 의외로 여러 곳에서 빛을 발한다.

 

좋은 남사람이지만 오해받기 쉬운 타입이다. 소심하고 나약해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그의 한 구석에는 따뜻함과 상냥함이 있다. 고루한 옛생각에 갇혀 있어 완고하면서도 그러나 때가 되면 껍질을 깰 줄도 아는 용기도 있다. 비겁하게 움츠러들다가도 자기가 아닌 남을 위해서는 또 앞장설 줄 아는 책임감도 있다. 못하겠다 하면서도 한 가닥 자존심에 스스로를 위해 끝까지 견뎌낼 줄 아는 의지도 있다. 참으로 못났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남자라.

 

최근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부쩍 이윤석을 주목하게 된 이유다. 남자의 자격이 진행되면서 처음 그리 소심하고 움츠러들기만 하던 것이 어느새 이경규를 대놓고 디스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손을 모아 미안함을 표할 정도로 여전히 소심하고 성실하다. 과연 이런 것이 남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아무튼 그래서 남자의 자격을 통해 또 하나 확인한 것이라면 이윤석이야 말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통이라는 것. 아무리 김태원이 국민시체로 이윤석의 국민약골 캐릭터를 가져갔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볼품없이 길다는 이윤석의 깡마른 몸에서 나오는 서툰 몸개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김병만이 슬랩스틱을 한다지만 그것은 아크로바틱이지 원래 전통적인 코미디에서 하던 슬랩스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에 가장 가깝다면 이윤석의 몸개그일 것이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웨이크보드편과 자격증편. 웨이크보드 편에서 이윤석이 단지 웨이크보드에 오르는 것만으로 보여준 몸개그는 가히 전설이라 할만하다. 자격증편에서 도배지를 바르면서 보여준 어눌하고 서툰 동작들은 과거 이주일과 이상해, 서영춘 등이 보여준 슬랩스틱의 정수였다. 그것을 전혀 코미디같지 않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제는 이윤석 아니고서는 어려우리라.

 

그런 점에서 이윤석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토크라 할 수 있다. 차라리 말로써 사람들을 감탄시킬 수는 있지만 말로써 사람들을 웃기기란 무리다. 매우 논리적이면서 직관적이고, 간결하고 적확하게 대상을 묘사하고 정의하는 모습은 확실히 놀랍지만, 그러나 개그를 치는 타이밍이나 센스란 확실히 일류라 하기엔 거리가 있다. 어지간히 웃길 줄 아는 연예인이라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는 한계가 있다. 그게 아마도 그동안 이윤석이 예능에서 고전한 이유겠지만...

 

그러나 바로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점에서 그런 약점이 상쇄된다 할 수 있다. 굳이 말을 잘 할 필요는 없다. 단지 타이밍에 맞게 던질 수만 있으면 누구나 그것을 받아 살릴 수 있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그만한 능력이 된다. 더구나 토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진심이니. 리얼버라이어티라는 말 그대로 프로그램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설득력일 것이니. 그것은 솔직하게 자신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다. 그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누구보다 시청자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이윤석 뿐이리라. 더 대단하지도, 더 멋지지도, 더 웃기지도 못하지만, 바로 그 못난 모습이 남자이기에.

 

물론 내가 주인공이라 했어도 사실 그들 에피소드에서도 이윤석이 웃긴 것은 얼마 없다. 웃긴다면 이경규가 웃기고 김태원이 웃기고 김성민이 웃겼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도 이윤석이 아닌 다른 멤버의 것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반드시 웃겨서 주인공이지는 아니지 않은가. 바로 그에게 그 주제가 담겨 있기에. 그가 곧 작품에 있어 주제를 맡고 있기에 그는 주인공인 것이다. 내 생각이다.

 

나는 참 나약하다. 그리고 소심하다. 거기다 비겁하기까지 하다. 고루하고 완고하다. 때로 자기 세계에 갇혀 살기도 한다. 그래서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을 겁내 하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고 바뀌고 싶어 한다. 이윤석처럼. 그래서 그리 이윤석은 내 눈에 뜨이고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주목해 볼 바다. 비록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프로그램의 뒤에서, 혹은 사이사이에서, 혹은 밑에서, 가장 공감가는 모습으로, 가장 못난 모습으로, 그러나 미션이 요구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그것들을. 가장 우리와 같은, 그렇기에 가장 열심히 바뀌어가는 그같은 모습들을.

 

리얼버라이어티에서만이 가능한 부분들이라 할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에 시청자가 알아서 각본을 쓰고 이야기를 만든다. 연기는 출연자들이 하되 그들의 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시청자다. 잘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윤형빈의 모습에 어느새 공감하던 것처럼. 이제는 이윤석이 그런 것이라.

 

하루하루가 새롭다. 한 편 한 편이 새롭다. 새롭게 발견되는 모습들과 그 모습들에서 발견되는 나의 모습들. 나의 현재와 나의 욕망. 나의 실재하는 현재와 나의 욕망하는 어떤 모습들. 남자의자격이 남자의 자격인 이유라 하겠다. 그래서 이윤석이 요즘 너무 좋다. 그는 곧 나이므로. 그는 남자다. 바로 나와 같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