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설상화 - 성시경의 '팩트'와 정체성 고백

까칠부 2021. 12. 22. 09:04

몇 년 전부터 '팩트'란 단어를 말끝마다 붙여 쓰던 어떤 놈들이 있었다. 일부의 특정한 사실을 가지고 전체의 진실을 정의할 수 있는 근거라고 내세우며 달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놈들이 주장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주화운동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들의 난동, 혹은 간첩이 주도한 폭동이라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의 배후에 분명 북한의 지령과 간첩의 개입이 있었다.

 

성시경이 말한다. 미운 건 '팩트'랑 관련없구나. 사실이 아닌데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될 리 없지 않은가. 무슨 뜻이겠는가. 80년대 이른바 대학가 운동권에 간첩이 침투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 간첩이 야당의 정치인과 접촉하려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안기부도 그런 간첩들을 잡기 위해 오로지 애국심만으로 불순분자들을 추적하고 검거하고 신문했다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90년대 이후 대학가의 문화가 바뀐 배경 중 역시 첫번째는 신분구성의 변화였다. 있는 집 자식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고, 특히 명문대에 진학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자식들이야 자기 일이기고 하기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오히려 있는 집 자식들이면 사회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그같은 논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범하는 위험한 것일 수 있다. 한총련 작살나기 전부터 그렇게 대학가는 대학생들의 신분변화에 따라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던 학생운동에 대한 마타도어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학생운동은 빨갱이들의 난동이다.

 

아마 그 무렵 대학 다녔을 것이다. 집안도 원래 잘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성시경에게는 민주화운동은 북한의 지령이고 간첩의 선동이었다는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인 것이다. 안기부가 오로지 애국심만으로 사람들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고문한 것 역시 '사실'인 것이다. 아, 고문은 안했겠구나. 저리 훌륭하신 원칙주의자들께서 설마 고문씩이나.

 

오히려 민주화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민주화진영의 왜곡이고 조작이라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절절함마저 느껴진다. 정해인이나 지수와 다르다. 이 놈은 확신범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어야 한다.

 

처음 그냥 제 잘난 맛에 사는 자유의지주의자가 아닌가 했었다. 사실 자유의지주의자는 미국에서도 오히려 공화당에 더 많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정도를 넘어섰다.

 

그래도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말하는 걸 동의하지는 않아도 인정하는 편이었는데, 아마 내가 여기서 성시경 욕하는 게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 인간이 어디 출신인가.

 

참고로 일베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그 주장과 논리가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주장을 처음 본 것이 90년대 후반, 그때도 그 놈들은 '팩트'를 떠들어댔었다. 새삼스런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