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이트노벨 '내 청춘에 러브코미디는 없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다른 것 아니다. 아싸의 정신세계를 정말 정확하게 적확하게 잡아서 묘사하고 있었다.
아웃사이더가 아웃사이더인 이유는 그 세계가 자기완결적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의 세계에 다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오로지 대상이고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히키가야 하치만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오류를 범하고 혼란에 빠지는 이유였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세계에 절망했으니까. 인간에게 좌절했으니까.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심지어 자기마저 객체화 대상화시키고 만다. 인간이란 이렇다. 이 세계란 저렇다. 그러므로 나란 존재은 그렇다. 그러니 싹 다 뒤집어 버리자. 다 엎어 버리고 깡그리 바꿔 버리자. 그래서 내가 30대까지 극우였었다. 히틀러를 추종하고 있었다.
그냥 싹 다 뒤집어 엎었으면. 저 꼴보기 싫은 개자식들 다 뒈저 버렸으면. 그 가운데는 김영삼도 있었고 대한민국을 IMF로 몰아넣은 관료와 기업인도 있었다. 언론인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저 새기들 다 어떻게 해버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진보란 긍정이다. 낙관이다. 반드시 잘 될 것이란 희망이다. 언론의 보도를 보면 안다. 하나를 바꾸면 뭐가 잘못될 것이다. 하나를 새롭게 바꾸면 뭐가 크게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내버려두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 비관이다. 절망이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진보는 그럼에도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꾼다.
어떻게 해도 미래가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 기대도 낙관도 없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다 뒈져 버리라. 다 망가져 버리라. 전쟁이라도 나서 이 세계가 폭삭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처음 분노했다.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어찌 멀쩡한 동급생들을 두고 아무일없이 군인들과 떠날 수 있는가. 하지만 곧 이해했다. 절망했다. 인간에 실망하고 현실에 좌절했다. 그러니 저런 놈들 따위 자기에게 아무 필요도 의미도 없다.
인간이란 대상이다. 단지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둘 쯤 뒈지거나 말거나. 서넛쯤 좀비가 되거나 말거나. 가장 가까운 이가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어느새 더이상 중요치 않다. 그냥 다 뒈져 버리자.
어쩌면 좀비물을 이루는 근간이 아닐까. 다 뒈져버리다. 그냥 싹 다 망해 버리자. 그러면 뭐라도 생기지 않을까. 아니더라도 손해 볼 건 없다. 인간이란 희망인가? 절망인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보고서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는가? 오래전 나름이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비관적 낙관론자다. 더이상 나빠질 수 없으니 지금 이대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더이상 나빠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 이미 좋은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나를 옭죄던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증오와 경멸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어째서 좀비물이었을까? 어째서 학교였던 것일까? 그나마 의미는 있었다. 어른들이 그래도 어른다웠다. 아마도 세월호의 오마주가 아니었을가. 그래도 어른다운 어른들도 없지 않았다. 나에게는 없었지만. 수십년이 흘렀다. 인간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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