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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vs청주? 마침내 찾아낸 여과지

까칠부 2024. 1. 7. 02:03

그러고보면 술관련 유튜브나 블로그 대부분이 청주가 아닌 막걸리를 주력으로 다루고 있을 것이다. 일단 만들기가 쉽고 빠르다. 그리고 쌀가루가 있어 맛이 더 풍부하고 달기까지 하다. 청주는 전에도 썼지만 뭔가 애매한 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일단 한 번 청주에 맛을 들였고 작년 겨울 손목을 다치면서 막걸리를 짜는 게 힘들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막걸리는 물까지 부어서 제대로 짜주어야 마지막까지 걸러서 먹을 수 있다. 바로 그게 힘들어서 그냥 청주를 주력으로 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러면 어떤 것으로 걸러야 찌꺼기없이 맑은 청주를 고스란히 걸러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많은 양조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즐겨쓰고 있는 시아 주머니는 당연하게 걸러야 한다. 이건 구멍이 커서 짜기는 쉬운데 그만큼 쌀가루도 많이 섞여 나오게 된다. 뭉친 누룩찌꺼기나 쌀찌꺼기만 걸러주면 된다면 이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겠지만 역시 청주를 원한다면 아니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거르고 나서 냉장고에 한참 놔두면 알아서 찌꺼기가 가라앉으며 청주가 나오기는 한다. 그걸 또 거르는 자체가 일이니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러면 눈이 고운 면포로 거르면 되지 않는가? 눈이 고우면 그만큼 짜기가 힘들다. 더욱 익은 쌀은 섬유소와 전분이 제대로 결합해 있어서 고운 눈을 막고 아예 안에서 버티는 경우가 많다. 압착기로도 이걸 짜내려면 생고생을 해야 한다. 더이상 익은 쌀로는 술을 만들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 이유다. 익은 쌀로 술을 만들면 고운 면포가 방해가 된다. 그리고 이 경우도 결국 아주 고운 쌀가루가 걸러놓은 청주 아래에 가라앉아 있게 된다. 뭐 이대로도 좋기는 하다. 마지막에 쌀가루 일어나면 막걸리처럼 추가로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이것으로 좋은 것인가?

 

어제 병원에 가는 김에 근처 마트에서 잠시 장을 봤었다. 아예 술을 집에서 만드니 더이상 대형마트에서 살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자체브랜드 라면과 전동칫솔과 과자만 사들고 나오려 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여과지. 그 순간 오래전 한창 더치커피 빠져 살 때가 떠올랐다. 여과지에 병에 넣어 침출시킨 커피를 쏟아 놓기만 해도 알아서 중력의 힘으로 커피가 아래의 병에 모이고 있었다. 이 여과지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마침 몰트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맥주라 하기도 애매한 술이 한 통 있었다는 것이다. 몰트 입자가 너무 고와서 이미 한 번 면포로 거르다가 큰 낭패를 겪기도 했었다. 그때 두 봉 사놨다가 그냥 마지막으로 있는 재료나 다 써보자고 만든 것이었는데 기회가 좋았다. 술지게미까지 옮길 수 있는 커다란 깔대기에 마트에서 산 여과지를 깔고 위에 발효시킨 몰트주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방안에서 지난주 거른 막걸리를 홀짝이며 넷플릭스를 보다가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위에 질척한 몰트 찌꺼기만 남은 채 아래는 맑은 술만 고여 있다. 아, 이거로구나!

 

아마 찾아보면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한적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그 정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술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무려 3개월 만에 내가 원하는 도구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레시피까지 지난주 찾아냈으니 3개월간의 실험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봄부터는 진짜 내가 원하는 술만을 만들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45*45 사이즈짜리 7장이 대략 3천원, 가격도 적당하다.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