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 그 참을 수 없는 답답함, 지루함

까칠부 2024. 3. 16. 01:10

늙어서 그런가 이제는 노가다가 싫다. 반복해서 무언가를 하는 자체가 너무 지겹고 지루하다. 그보다 피곤하다. 더구나 없는 시간 쪼개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 너무 지친다. 아마 내가 PC로 게임을 즐기면서 마이트 앤 매직이나 디아블로 같은 미국식 게임에 많이 익숙해진 때문일지 모르겠다.

 

일단 길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짜증난다. 어찌보면 헷갈리지 않고 정해진 길을 바로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일 수 있지만 이쯤에서 여기로 이동할 수 있었으면 바라는 순간에는 이게 견딜 수 없는 답답함으로 여겨진다. 왜 저기로는 못 갈까? 왜 길이 있는데 이 길로는 못 갈까? 그래서 더 레벨을 올리든 파밍을 하든 사냥을 할 때도 반복해서 치러야 하는 전투들이 지겹고 지루한 말 그대로 노가다로 바뀌고 만다. 여러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전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정해진 길을 왕복하면서 그냥 사냥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SFC시절 파이널판타지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덕분에 노가다 없이 그냥 스토리만 진행해서 엔딩을 보고야 말았다. 더 이상 뭐 어쩔 의욕도 안 생겨서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냥 스토리만 보고 엔딩만 끝내자. 

 

그런 와중에 이게 뭐 게임인지 인터렉티브 무비인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손놓고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 왜 이리 많은가? 길이도 짧지 않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전투보다 스토리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더 긴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기껏 개고생해서 보스를 잡아놨더니만 내 노력과 상관없이 그놈이 멀쩡히 살아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장면들이다. 7번가를 추락시키던 그 장면에서 얼마나 어이없고 허탈하던지. 아니 그럴 거면 보스는 왜 잡느냐고. 차라리 그 놈들 때려잡으니까 다른 놈 나와서 우하하하 했으면 그쪽이 더 이해도 되고 납득도 되었을 것이다. 의욕도 덜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순간 회의가 찾아왔다. 그냥 나는 제작진이 만들어 놓은 스토리 안에서 싸움만 대신하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게임플레이로 정작 게임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진짜 힘빠지는 일이다. 역시 그런 종류의 게임들을 너무 많이 한 것일까.

 

더불어 아마도 게임에서 노가다가 사라진 - 정확히 노가다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을 텐데, 전투가 너무 복잡하다. 물론 발전일 수 있다. 전투가 보다 더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 보니 너무 잦은 전투는 더 큰 피로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 게임들 노가다하던 기분으로 노가다하다 보면 진짜 금세 지쳐 버리고 만다. 그래서 맵상에 몹들도 그리 많지 않다. 하나의 전장에서 동시에 상대하는 몹이라고 해봐야 최대 대여섯, 그런데 하나의 전장이니 다음 전장으로 이동할 때까지는 전투가 아예 없다. 그래서 무려 석 달 만에 엔딩을 봤는데 게임을 했다는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은 게임플레이와 상관없는 스토리 감상이었다. 전투를 자주 하기에는 게임시스템이 너무 피곤하고 그것을 알기에 전투할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 아마 페르소나5 일주일 하면서 치른 전투가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엔딩 볼 때까지 치른 전투보다 더 많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보다 가장 최악을 꼽으라면 단연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서브퀘스트들일 것이다. 이게 진짜 노가다였다. 힌트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거의 지도 전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그나마 숨겨진 길 같은 건 없어서 어떻게든 깨기는 깨는데, 그 이동거리부터가 그냥 한 번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정해놓은 게임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거의 전투도 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뛰어다녀야 서브퀘스트 대부분을 깰 수 있다. 왔던 길 또 가고, 갔던 길 또 가고, 그렇다 보니 아무것도 않고 그저 뛰어다니기만 하다가 일주일 훌쩍 지나는 경우도 허다했었다. 아우 지겨워. 처음 7번가 서브퀘스트에서 현자타임 느끼고 단지 돈이 아까워서 엔딩만 보자고 버틴 게 그래서 석 달이란 시간이었던 것이다. 모드라도 성인용을 깔아놓지 않았으면 과연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내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원래 싫어했던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내 또래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일본식 롤플레잉으로 롤플레잉이라는 게임장르를 처음 접했었다. 원래 롤플레잉이란 이런 것이라는 선입견 같은 것도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디아블로같은 핵 앤 슬래쉬가 한 동안 롤플레잉의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할 게다. 너무 지겹다. 너무 지루하다. 롤플레잉도 결국은 전투가 가장 중요하다. 아니 최소한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나 자신이 게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체가 롤플레잉의 근본일 수 있다. 진화는 진화인데 안좋은 방향으로 퇴화하는, 아마도 그조차 진화일 수 있는 파이널판타지 나름의 선택일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다른 시리즈는 아예 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지만. 찜목록에서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한 번에 다 지워 버렸다.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덧붙여 사실 게임에서 내가 가장 실망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 클라우드의 모델링이었다. 아 뭐 이런 게이새끼가 다 있나? 일본 드라마나 만화에서 보던 호스트의 모습 그대로였다. 잘생겼다는 느낌보다는 어디 되다 마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클라우드 뿐만 아니라 바레트를 제외한 등장인물 거의가 그랬다. 마지막 엔딩에서 세피로스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고 진짜 뜬금없었다. 그냥 나온 것이다. 역시 오리지날을 해봐야 했을까? 이래저래 돈과 시간이 아까웠던 시간이었다. 그냥 돈 4만원 포기했어야 했는데. 디아블로나 할 걸.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