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새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던 때문인지 전혀 의식을 찾지 못하던 녀석이 잠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의 모습이다. 전에 쓴대로 동공반사조차 없이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인 녀석의 모습에 이제는 더이상 약도 수액도 필요없다고 동물병원에 가서 이야기한 뒤 가만히 끌어안고 있었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는 내 품에 안긴 채 잠도 자고 깨어나서는 수액까지 맞았었다. 영상은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피부아래에 수액을 놔주고 그대로 다리를 베고 누운 녀석을 토닥여주며 쓰다듬어주던 때의 모습이다. 정말 운좋게도 녀석이 떠나기 전날 아직 예쁘고 사랑스럽던 녀석의 모습을 아주 짧은 영상으로나마 남겨 놓을 수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 그나마 유동식이라 할 수 있는 츄르 정도만, 그것도 주사기로 입안에 밀어 넣어 주어야 겨우 절반이나 삼키던 무렵이라 입 주위가 츄르 찌꺼기로 온통 뒤엉켜 있다. 체온도 조절 못해서 이불은 너무 무겁고 내 옷을 덮어주고 나서야 겨우 몸을 떨지 않고 의식도 유지되고 있었다. 가끔 정신을 잃으면 역시 전에 쓴 그대로 내가 츄르와 물을 주사기로 넣어주면 받아먹던 동작들을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데 어쩌면 쭈꾸미놈이 나를 배려하느라 그런 것인지 핸드폰을 가져오는 사이 정신을 차려서 마지막으로 녀석의 멀쩡한 모습을 겨우 영상으로 찍을 수 있었다. 이렇게 거의 20분 가까이 허벅지를 베고 누워 내 손길을 느끼고 나서도 수액 놔줬다고 오줌을 시원하게 갈긴 뒤 츄르도 하나나 받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주말 동안 먹을 츄르가 부족할까봐 바로 쿠팡으로 주문까지 해 놓았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금요일도 컨디션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었다. 여전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나를 찾으라 그런 것인지 움직이지도 않는 몸으로 이불삼아 덮어준 내 옷들을 뒤에 남겨둔 채 침대 가장자리까지 이동해 있었다. 츄르를 한 절반 먹었을까? 물은 겨우 입술만 적시는 정도였다. 그래도 수액을 맞았고 내가 팔베개를 해주니 겨드랑이에 고개를 묻은 채 눈을 감고 곤히 잠도 잤었다. 그래서 그래도 주말까지는 버텨주겠거니 지레 기대하고 동물병원에 가서 주말동안 맞힐 수액도 사 온 터였다. 자고 일어났을 때도 내가 깨어나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모습이 여전히 괜찮아 보였었다. 녀석의 아래에 깔아 놓은 배변패드가 오줌으로 젖을 것을 보고 갈아주고, 덮어주었던 옷들 가운데 오줌으로 젖은 것들을 다른 곳들로 갈아주고, 잠시 품에 안고 있다가 고양이도 욕창이 생길지 모르겠다 싶어 반대로 뉘여 준 뒤 잠시 밥도 먹고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시며 출근전의 여유를 즐겼었다. 그리고 다시 수액을 놔주기 전에 한동안 안아주어야겠다고 녀석의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 주니 녀석이 또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혀를 빼 문 채 컥컥거리기에 목과 가슴을 주무르고 쓰다듬어주는데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약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미 8년 전 쭈그리 놈이 내 앞에서 심근경색으로 죽은 적이 있기에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스럽게 혀를 빼물고 숨이 막혀하는 모습이야 말로 녀석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라고. 한참을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느끼고도 녀석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가슴을 주무르고 문질러 주었었다. 체온이 또 금방 식지 않아서 그렇게 한참을 의식이 없는 녀석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순간 다시 기적이 일어나서 녀석의 의식을 되찾고 나를 돌아봐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방광이 열려서 녀석의 아래에 깔아 놓은 배변패드들은 흥건히 젖은 채였다. 그렇게 녀석은 내가 밥먹고 커피 마시고 인터넷하며 여유를 마음껏 즐기고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내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수의는 이미 한 달 전에 사 놓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차마 바로 입히지 못하고 그냥 배변패드만 갈아주고 침대에 뉘여 놓은 채 그동안 신세졌던 동물병원에 그 사실을 알렸다. 장례를 위해 화장장을 소개받기로 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당장 그 순간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두 달 반, 아니 지금은 세상에 없는 다른 녀석들 때문에도 벌써 10년 동안 교류해 온 병원이었기에 그 순간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줄 것이라 무의식중에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그래도 그동안 츄르 먹인 것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듯 겨우 소화시킨 얼마간의 츄르가 거뭇한 얼룩으로 녀석의 아래에 남은 오줌들과 함께 보이고 있었다. 차게 식은 몸과 여전히 열려 있는 동공을 보면서 이제 이 녀석이 진짜 나를 떠났구나. 그러고도 수의를 입히기까지는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녀석 맞추려고 사 온 수액은 그냥 따서 녀석의 몸을 닦아주는데 썼다. 마지막에 모로 누운 채 오줌을 흘린 탓에 털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어서 그것은 당장 수액을 묻힌 수건으로도 어떻게 안되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목 아래와 아랫배와 등을 말끔히 돌아뉘여가며 씻겨주고 겨우 수의를 입혀 주었다. 입었다기에는 그냥 삼베로 만든 상자 형태였다. 다만 차마 녀석의 팔다리를 힘으로 꺾거나 할 수 없어서 겨우 다리만 모아서 수의 안에 넣어 리본으로 묶어 주었다. 그러고보니 관절의 석회화와 협착으로 등은 물론 다리의 관절도 굽히지 못하게 된 지 꽤 되었다. 원래는 식빵도 잘 굽던 녀석이 옆으로 누워서만 자기 시작한 것이 벌써 2년 가까이 된다. 그렇게 수의까지 다 입혀 놓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녀석이 쓰던 이동장 안에 아이스팩과 함께 넣어 숨숨집 위에 올려놓고 향부터 피워 주었다. 서울을 떠날 때는 쭈그리와 꼬맹이까지 넷이었는데 이제 쭈꾸미마저 떠나며 진짜 이 집에 나 혼자만 남았다.
일할 정신도 아닌데다 토요일에 화장이 예약되어 있어 출근하자마자 조퇴하고 돌아왔더니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반겨주는 이도 없는 텅 빈 집이 너무도 휑하다. 그저 의식없이 누워만 있어도 돌아오자 마자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더이상 없다는 사실에 스산한 바람마저 불어오는 듯하다. 술안주로 사다놓은 냉동식품을 데워 독한 놈으로 두 잔 마시고 자고 일어나니 새벽 네 시, 일단 녀석이 남겨놓은 배변패드부터 치우는데 역시나 내가 무얼 해도 반응하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사무칠 듯한 적막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게임하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침대쪽을 돌아보는데 그때마다 아무도 없이 화장하고 돌아온 녀석의 유골항아리만이 보이는 풍경에 잠시 넋을 놓는다. 이렇게나 익숙한데 더이상 그 익숙함은 갈 곳을 잃었다.
그래서 반려동물 화장장에 지불한 장례비용 35만원이, 그리고 그곳까지 찾아가느라 쓴 택시비 3만원이 전혀 아쉽거나 하지 않다. 워낙 그런 일을 자주 겪고 또한 일인 사람들이라서인지 위로해주는 법을 알더라. 들어주는 법을 알았다. 밤새 녀석과 이야기하고 가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나는 무신론자라 영혼의 존재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죽으면 끝이다. 다만 아직 남아있는 이가 있기에 그 의식 속에서 그는 여전히 죽지 않고 현실에 존재한다. 아주 잘 관리된 반려동물 봉안당을 보고서도 굳이 녀석을 다시 데려온 이유였다. 쭈그리와 꼬맹이가 그랬던 것처럼 49재만 지내고 집앞 개천에 흘려보낼 예정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수도 없이 집을 나가 떠돌고 돌아오던 녀석인 만큼 죽어서는 누군가에 구애되거나 어딘가에 구속되는 일 없이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죽어서까지 서로를 구속하며 얽매는 것은 또 얼마나 슬픈 일일 것인가.
그것이 벌써 그저께다. 5월 24일 오후 17시 50분 무렵이었다. 그리고 이제 녀석은 한 줌 뼛가루가 되어 지금 자기가 놀던 캣하우스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너무 작더라. 머리는 너무 작고 팔다리는 너무 야위어 있었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뼛조각 하나까지 느껴질 만큼 살도 전혀 엇이 뼈만 느껴졌었다. 녀석을 닦아줄 때 느꼈던 그대로 화장을 마치고 나서는 등이 굽고 팔다리가 굳어 있는 모습으로 내 앞에 돌아와 있었다. 어제 11시 반에 출발해서 짐에 돌아오니 오후 7시, 거리도 멀지만 거쳐야 하는 절차도 많았다. 그리고 다시 술 한 잔 하고 자고 일어나서 녀석이 남긴 흔적들을 치우며 이제서야 녀석의 죽음에 대해 쓸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쯤 썼으면 녀석이 내 다리 사이이든 옆이든 다가와서 몸을 기대고 있어야 하는데 역시 이 좁은 집에는 이제 나 혼자다.
물론 그리 길지는 않다. 혹시 기억하는가 모르겠는데 벌써 201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금 다니는 동물병원 원장에게 크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집 앞에서 죽어가던 새끼고양이를 무작정 데리고 갔는데 돈도 받지 않고 어렵게 살려서 돌려준 것이었다. 죽은 줄 알았다가 살아난 것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리고 내 동생네 가서 그 후로 7년을 더 살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었다. 그 선생님이 유기고양이들을 구조해서 보호하며 입양할 곳을 찾는데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겠더라. 꼬맹이 녀석 아프고부터 혹시라도 내가 없는 동안 녀석들 어떻게 될까봐, 심지어 쭈꾸미 놈은 밥을 주고 30분 지나면 아예 입도 대지 않는 놈이라 매일 밥과 물을 챙겨주어야 했었다. 그래서 쭈그리랑 꼬맹이부터 20년 가까이 어디 먼 곳에 여행도 못가고 집에만 붙어 있어야 했었는데 그럼에도 차마 그런 경험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못하고 입양처를 구하기 힘든 성묘들만 받아오기로 했다. 암놈들인데 새끼를 낳아서 새끼들 젖은 떼어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 다행히 쭈꾸미 49제는 지내고 나야 할 듯하다. 솔직히 더 빨랐으면 싶기도 하다. 녀석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너무 시리다. 그래서 더욱 녀석이 쓰던 물건들을 남김없이 버릴 수 있던 것이겠지만. 그래도 녀석 쓰던 물건으로 새 고양이를 맡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그러고 벌써 이틀이다. 딱 이틀 지났다. 아주 오래 지난 것 같은데 아직 이틀이 되려면 1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남았다. 녀석이 오줌싸느라 냄새가 밴 침대도 버리고, 녀석이 남기고 간 수많은 흔적들도 내버리고, 이불도 빨고, 옷도 빨고, 방청소도 하고, 괜하게 게임에 10만원이나 현질도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로또 사기 시작한 게 1년도 안 되어 쭈그리랑 꼬맹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였다. 그때는 그래도 쭈꾸미가 남아 있었는데... 쭈꾸미 처음 만났을 때다 떠오른다. 그리고 녀석의 마지막 모습도. 아직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탓이다.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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