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된 술을 증류하면 차례로 메탄올과 에탄올이 분리되어 나온다. 그 말인 즉 원래 증류하기 전의 발효주 안에는 메탄올과 에탄올이 섞여 있었단 뜻이다. 발효주를 먹으면 - 특히 과일주인 와인을 먹고 나면 숙취가 심한 이유다. 메탄올은 주로 과일에 포함된 펙틴이나 섬유소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식, 그 가운데서도 거의 순수한 전분으로 만드는 막걸리나 청주의 경우는 증류를 해도 메탄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메탄올 좀 먹는다고 사람이 바로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류주 가운데 하나인 데낄라의 경우 현지법에서 메탄올을 반드시 일정 이상 함유하도록 강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 함유량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 정도를 상시 섭취한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정도 양을 먹고 죽으려면 그 전에 먼저 알콜중독으로 세상을 뜨는 게 먼저일 것이다. 더구나 과연 초류를 먼저 받아서 버린다고 메탄올이 완전히 분리될 것인가면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순수한 주정을 얻고자 할 경우 원주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증류하는 연식증류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소주에 들어가는 주정이 그렇게 타피오카 등 값싼 전분을 사용해서 연속증류로 만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순수한 주정을 만들고 다시 자작나무숯에 걸러서 불순물을 최대한 거른 것이 바로 보드카인 것이고. 그런 이유로 보드카의 경우 위스키나 다른 증류주와 달리 숙성기간보다는 증류횟수로 그 가치를 매기고 있기도 하다. 더 많이 증류를 반복해서 순수한 에탄올만 남긴 보드카가 더 좋은 보드카다.
그렇다고 보드카처럼 연속증류를 하지 않으면 데킬라와 같이 메탄올을 함유한 채로 만들어지게 되는가? 그래서 증류주 하면 당연하게 거치는 과정 중 하나인 숙성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을 지 모르겠다. 증류를 마친 술을 숙성한다고 할 때 당연하게 그 안에서 증발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아예 공기가 통하지 않는 용기에서는 숙성이라고 현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유리병 안에 일단 병입을 마치고 나면 더이상 술은 나이를 먹지 않게 되는데, 그 역시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밀폐된 용기 안에서는 더 이상 어떤 화학적 물리적 변화도 없이 처음 주입한 상태 그대로 유지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오크통이나 항아리 속에서 술들은 미세한 구멍을 통해 술의 증기와 공기가 교환되며 술이 증발되는 것과 동시에 물리적 화학적 변화로 술맛 또한 좋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술통에서 증발되어 사라지는 성분 가운데는 당연히 메탄올도 포함된다. 그래서 일단 술을 증류하면 일정한 숙성기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항아리나 오크통이 아니더라도 밀폐된 용기에 한 절반만 채워 술을 보관하면 그 안에서도 일정한 숙성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게 되기도 한다. 술통을 거의 4분의 1만 채워서 내버려 뒀더니만 알콜도수가 낮아지면서 부드러워지는 실제 경험에 기반해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술속에 남아 있던 에탄올이나 곡주의 경우 황화합물이 많이 빠져나가 술을 마셨을 때 느끼는 불쾌함으로부터도 상당히 자유로워지게 된다. 어찌되었거나 시중에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술들은 일단 어느 정도 메탄올이 있어도 그렇게 위험하다 할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메탄올이 상당량 함유된 포도주만 하더라도 먹고 죽었다는 사람이 아직 그리 많지 않다. 있어도 메탄올 때문이 아니라 포도주 그 자체 때문이다.
어느 유튜버가 오크통에 숙성한 위스키를 증류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아니 이미 숙성한 위스키를 다시 오크통에 숙성해서는 그것을 증류하면서 메탄올이 위험하다고 초류를 한가득 받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메탄올 먹고 큰일날까봐 그랬다. 사실 담금주 갖다가 다시 증류해서 주정으로 만드는 유튜버의 경우도 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 희석식 소주들의 원료가 되는 주정 자체가 연속증류로 거의 순수한 에탄올에 가깝게 정제한 것이라 에탄올 이외의 성분은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적다. 소주든 담금주든 거기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서 도수와 단맛은 맞춘 것이다. 아마추어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기는 하는데 너무 오류가 심해서.
자가양조를 하고 증류까지 하는 경우 메탄올이 그리 걱정된다 싶으면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술통에 절반 이하만 채워서 따뜻한 곳에 내놓는 것이다. 원래 럼이나 데킬라 같은 따뜻한 지방에서 나는 술에 숙성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주위 온도가 따뜻하며 그만큼 증발하는 주증기도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성분도 빠르게 빠지게 된다. 그런 것들이 통 안의 공기와 섞였다가 뚜껑을 열 때 흩어지면 비슷하게 숙성이 이루어진다. 솔직히 그냥 보리로는 술이 너무 안 나와서 대충 받아서 여름이라 더운 곳에 내버려두었을 뿐인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 뿐이다. 한 마디로 메탄올은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메탄올보다는 그냥 알콜 자체를 걱정해라.
게임하느라 초류 버리는 걸 놓쳐서 걍 섞어서 과하주 만든 걸 변명하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증류주 만들어 놓은 게 부족해서 담금주 증류해서 주정으로 만들던 것이었다. 다른 재료도 섞기는 했지만 어차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더구나 과하주 거르고 나서도 다시 한 동안 숙성시켜야 해서. 메탄올 걱정되면 그냥 술을 먹지 마라. 그게 가장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좀 답답해서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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