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한국인들이 가난해서 나물을 즐겼다? 문득 다른 생각

까칠부 2025. 2. 28. 18:0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식사라 하면 딱딱한 빵과 삶은 감자, 그리고 물이 고작일 것이다. 조금 먹고 살 만하면 스프 정도를 곁들일 수 있을 테지만 그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추가되는 경우란 아무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똑같이 쌀로 밥을 지어 먹는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 비타민B1이 발견된 이유부터가 어설프게 쌀밥을 형편이 되는 이들이 다른 반찬 없이 쌀밥만 먹어대서 그런 것이었다. 그보다 더 가난한 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된장국과 야채절임, 거기에 형편이 조금 괜찮으면 해산물 정도가 식탁에 올랐었다. 그러면 조선은 어떠했었는가?

 

너무 가난해서 먹을 쌀도 없어서 풀죽이라도 쑤어 먹겠다고 산이며 들에서 캐낸 먹을 수 있는 풀들을 때로는 아예 쌀도 없이 그냥 물에 끓여서 먹는 경우는 예외일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당연히 유럽 등에도 그런 문화가 있었다. 아주 먹을 것이 없으면 산이며 들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심지어 흙까지 파서 어떻게는 배를 채우려 했었다. 그런데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어떻게든 주식을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경우에도 그랬었는가?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산과 들에서 캐고 뜯어온 풀들과 나뭇잎들을 하나로 섞지 않고 굳이 따로 나누어 별개의 조리법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서 더구나 동시에 여러 개를 식탁에 함께 올리고 있었다. 단지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을까?

 

조선시대 기록을 보더라도 그래도 먹고 살만한 양반들조차도 이같은 산과 들에서 캔 나물들을 철마다 즐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부러 맛있다는 나물을 찾아서 미식으로 즐기는 내용도 심심찮게 나온다. 물론 시작은 가난해서였겠지만 이미 조선시대에 이르면 굳이 나물을 먹지 않아도 되는 신분의 사람들조차도 나물의 맛과 향을 좋아해서 즐기는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지 부족한 식량을 대신해서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아 먹는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하도 쌀을 수탈해가서 나름대로 소작도 주고 하던 지주였음에도 먹을 쌀의 양을 늘리기 위해 현미로 먹다 보니 지금도 현미라면 질색을 하시는 어머니도 나물만큼은 아주 맛있게 드시더라는 것이다. 가난할 때 먹던 음식이라 수제비나 칼국수같은 건 질색을 하고, 죽은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도 나물만큼은 상관없이 어떤 때는 어떤 나물이 맛있고, 어떤 나물은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맛있다며 아주 적극적인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그냥 맛이 있으니까.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한국인의 기질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먹고 살 것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캐 먹고 뜯어 먹던 산과 들의 식물들에 대해 원래 못먹는 것이라며 외면했던 것에 반해 한국인들은 그 안에서도 맛을 찾고 향을 찾고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것이다. 더 힘드니까 오히려 노래하고, 더 슬프고 고통스러우니까 오히려 춤을 추고, 더 화나고 원망스러우니까 함께 어울려 놀던 한국인만의 낙천적인 기질이라고나 할까? 양반들이 물마시고 이를 쑤시던 것도 반드시 체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신명이다. 그것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고전소설이 바로 흥부전일 것이고. 소설속에서 흥부네 가족들 하는 짓거리 보고 있으면 진짜 저렇게 가난한데도 어떻게 저리 해맑을 수 있는가 싶을 정도일 때가 많다. 그러니까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서 풀을 뜯어다 쑤어 먹다가도 누군가 생각했을 것이다.

 

"어, 이거 맛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는 어떤 기시감같은 것이 든다. 그래봐야 똑같은 풀과 나뭇잎들인데, 혹은 풀뿌리거나 나무껍질이었을 텐데도, 그 가운데서 맛있는 것을 찾아 굳이 골라서 그것을 즐기려 한다. 억척스럽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즐길 것을 찾는 낙천이 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어떤 것은 간장에, 어떤 것은 된장에, 어떤 것들은 참기름에 무치고, 어떤 것들은 들기름에 무치고, 어떤 것들은 그냥 데쳐서 회로 즐긴다. 나물을 회라 부르는 것도 세계에서 한국인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마저 아주 종류까지 세분화해서 못먹는 것이 없다시피 알아서 조리법을 만들어 먹는다. 요리는 중국이 발달했을지 몰라도 먹는 것은 한국인들이 더 무섭다. 중국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나물도 한국인들은 죄다 찾아 먹는다. 문득 드는 생각이다.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