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 - 주 52시간 일하던 시절의 추억

까칠부 2025. 3. 17. 00:38

오늘 그동안 잘 쓰던 시판소스들을 죄다 내다버렸다. 더이상 쓸 일이 없더라. 요즘 주 40시간만 일하다 보니 그만큼 요리에 쓸 시간도 많아졌고, 더욱 시판소스 없이 요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에서 채소 다듬고 양념 만들어서 무언가를 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이라는 애니를 넷플릭스에서 보게 되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고양이 유키치가 집안일을 도맡기 이전 후쿠자와 사쿠의 집안 꼬라지를 보니 진짜 옛날 생각 나더라. 지난 정부에서 주 52시간근로를 강제하기 전까지 주 60시간도 우습게 넘겨가며 일했었거든. 그 뒤로도 불과 재작년까지도 주 52시간은 기본으로 일했었고. 일마치고 돌아오면 그야말로 파김치라 뭘 해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안일도 대충, 당연히 청소도 적당히, 그러고 들어와 운동하고 씻고 밥먹고 자고 다시 일어나서 밥먹고 일하러 가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주 40시간 일하게 되니 왜 이리 시간이 남는가.

 

한동안 안하던 게임도 다시 하고, 넷플릭스로 애니도 조금 더 보게 되고, 누워서 무협지도 읽다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마치고 찜질과 마사지도 한다. 고양이놈들 심심하지 않게 가끔씩 놀아주는 건 필수일과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 내가 참 그동안 너무 일만 하면서 살았구나... 최저임금 올라서 좋아진 점 가운데 하나다. 그전까지는 주 40시간 하라고 해도 그러면 생활이 안되어서 못했었다. 주 60시간은 쉬지 않고 일해야 겨우 먹고 살 만큼 벌었었다. 한 마디로 애니속 후쿠자와 사쿠 같은, 아니 다른 애니속 월급쟁이들 같은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와서 여유도 즐기고 나만의 삶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다. 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 줄이려던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 줄어들어서 문제라며 반발하는 젊은층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를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첫손으로 꼽는 것이 일본을 자극해서 무역보복을 하게 만든 것과 더불어 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 줄이고 중대재해법 만든 것을 말하는 젊은 층들이 지금도 상당하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젊은 세대들에서는 후쿠자와 사쿠 같은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일까? 집에 들어와서 청소할 여유조차 없이, 냉장고 안을 정리할 정신조차 없이, 자기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 시간마저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그렇게 부럽고 보기 좋았던 것일까?

 

아무튼 일본사회가 얼마나 정체되어 있는가와 한국사회가 얼마나 발전해 왔는가를 단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한국도 저랬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서야 퇴근하고 허구헌날 잔업에 야근에 철야에 회식까지 자기 시간이라고는 없었다. 그러고도 받는 돈은 진짜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예전에는 결혼이라도 일찍해서 집안일을 대신 책임져 줄 사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닌데 과연 어떻게 사람들은 살아갔던 것일까? 하긴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가는 일해서 받는 월급으로는 군식구 하나 부양하는 것도 빠듯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직장에 다니는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그래서 이같은 일본 애니속 장면들이 꽤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어딘가는 저런 직장이 우리 사회에도 꽤 적잖이 남아있을 테지만.

 

진짜 하루 11시간, 그러니까 주 52시간 일하려면 매일 휴게시간 1시간 포함 하루 11시간을 회사에 붙잡혀 있다가 하루는 13시간까지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퇴근시간 최소한으로 잡아서 1시간이라 하면 하루 12시간에서 최대 14시간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그냥 놀고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하면서 쌓인 피로까지 생각하면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최대 12시간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 나만 해도 최소 한 시간은 숨을 돌리고 난 다음에 운동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까지 마친 뒤 깔끔하게 잠자리에 드는 것도 어지간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이라도 극적으로 줄이지 않는 이상 집안일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직장에서도 대부분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 밖에서 밥은 사먹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때는 한국의 근로환경과 일본의 그것을 비교하며 따라가야 한다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니 지금도 비슷한 주장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기는 하다. 일본도 저렇게 하는데 한국 노동자들은 너무 적은 시간만 일하면서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2, 30대로 젊다는 것도 닮은 부분일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다시 그렇게 일하라면 못할 것 같다. 그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고양이라도 집안일을 대신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