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

까칠부 2010. 3. 25. 15:15

언더그라운드를 말하자면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악극단부터 시작해야 할까? 송해나 구봉서, 김영하 같은 옛 코미디언들을 보면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곧잘 했다. 악기도 다룰 둘 알았다. 악극단 출신이라 그랬다.

 

악극단이란 한 마디로 버라이어티쇼그룹이라 할 수 있다. 음악과 연기, 코미디, 춤 다 했었다. 입담이 있으면 공연 전이나 사이사이 분위기를 띄우고, 연극도 보여주고, 음악도 연주하고. 악극단 출신으로 음반을 내고 데뷔한 가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언더그라운드라면 50년대 이후 미 8군 무대부터 이야기해야 옳으리라. 당시 용산에 미 8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주둔중인 미군을 위한 클럽무대도 생겼는데, 여기에 한국에서도 난다긴다는 연주자와 가수, 댄서 등이 모여 그 가운데 선발된 사람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당연히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만큼 페이도 셌고, 또 미 본토의 음악에 길들여진 수준높은 관객을 상대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당시까지도 아직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는 트로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 8군무대를 중심으로 데뷔하여 주류무대로 올라온 음악인으로 대표적으로 신중현이 있었다. 신중현은 미군들마저 열광케했던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다. 현미, 이봉조, 윤항기, 윤수일, 조용필도 바로 이 미8군 무대 기타리스트 출신이었다. 라스트찬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유현상이라던가, 다 그쪽이었다.

 

50년대 60년대가 미 8군 시절이라면 70년대 이후로는 다운타운 시대였다. 어느 정도 경제도 성장하고 하면서 미군이 아닌 내국인을 상대로 한 클럽이나 음악다방, 카페 등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주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70년대 포크가수들은 대개 여기 출신이라 보면 된다. 어디 음악다방에서 DJ도 보고 통기타 치며 노래도 부르고 하다가 데뷔하고... 개그맨이라는 말도 여기서 먼저 시작되었다. 전유성과 고유성을 필두로 대학가에서 입담으로 웃기던 새로운 유형의 코미디언들을 개그맨이라 불렀고, 이들이 공중파로 대거 진출하면서 코미디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국인을 상대로 한 클럽무대를 통해서 민혜경이나 최성수 같은 음악인들이 데뷔하고 했었다. 아마 민혜경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다고 하는데,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찾아가 당돌하게도 오디션을 보고 데뷔한 경우였다. 벗님들도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이후 어려운 시절을 클럽무대를 전전하며 버텨내고 있었고, 송골매도 클럽무대에 서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곤 했었다. 이은하, 김현식, 한영애 등도 이같은 클럽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했었다. 물론 그 정점은 당시까지도 외국인을  위한 클럽이 있던 이태원이었다.

 

들국화 이후 그런 클럽무대 중심의 언더그라운드는 공연중심의 언더그라운드 - 지금 말하는 인디문화로 크게 바뀌게 된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 블랙신드롬, H2O, 블랙홀, 작은하늘, 스트레인저, 사하라 기타등등등... 그리고 또 한 편으로 나이트클럽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던 이들이 있었으니, 현진영, 이주노, 양현석, 도건우, 유영진, 이현우, 역시 기타등등이 그들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바로 그같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문화와 춤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결정판이었던 셈. 밴드출신으로는 임재범, 김종서, 이승철, 신성우, 윤상, 손무현, 이현석 등이 있었다. 아, 조금 늦었지만 박완규 또한 송탄의 미군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부활의 보컬로 발탁된 경우였다.

 

말하자면 90년대까지도 한국의 대중음악이란 이같은 언더그라운드와의 끝없는 소통을 통해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 8군무대를 통해 받아들인 구미의 선진적인 팝음악을 한국의 대중음악에 이식한 이들도 바로 이들 언더그라운드 출신 음악인들이었고,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포크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를 주류로 밀어올린 것도 역시, 80년대 락그룹의 붐이나, 90년대 랩댄스의 유행도 바로 이들에 의해 선도되었다. 과연 언더그라운드 없이 80년대 90년대 팝을 완전히 대체해버린 한국 대중음악의 혁명은 가능했을까. 특히나 미 8군무대가 배출한 신중현과 조용필, 언더그라운드 밴드문화가 배출한 서태지와 이승철, 임재범, 클럽문화가 배출한 이주노, 양현석, 유영진, 이현도, 김성재...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같은 언더그라운드와의 소통이 완전히 막혀버린 느낌이다. 인디는 어디까지나 인디. 인디는 그냥 인디다. 원래는 자우림도 인디씬에서 주류무대로 올라온 경우였는데, YB도, 노브레인도, 크라잉넛도, 그런데 이들 밴드들조차 공중파를 통해 보기란 힘들어졌다. 주류음악은 그냥 주류음악, 그것도 기획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공된 상품이랄 아이돌이 지배하게 되었고.

 

아니 아이돌이란 자체가 그러한 소통의 단절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음악이 순환해야 하는데,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차단되었으니 그 안에서 근친교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괴해지고 이상해진다. 더구나 그런 과정에서 당연하다는 듯 표절도 일상화되고. 새로운 흐름의 유입 없이 기존의 시장만으로 계속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니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떻게 인위적으로 하자... 그것도 우스운 것이다. 과거 저들이 주류음악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인위적으로 누가 그렇게 하자 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있었고, 그런 음악을 알아보고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는 대중도 있었다. 그런 대중의 요구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반응하던 자본이란 것도 있었다. 이제는 자본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되었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작은 클럽무대에 먼저 서기보다는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먼저 들어가고, 무대에 서서 무대에서 자기 음악을 찾고 만들어가기보다는 기획사에서 짜준 스케줄대로 기획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를 맞추어가고, 그렇게 자기 음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획사의 컨셉을 위해 데뷔하는 아이돌들... 분명 지금의 아이돌이 예전 가수들보다는 더 노래를 잘 할 텐데도 전혀 정이 가지 않는 이유랄까?

 

나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아이돌 중심의 대중음악이란 정상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카라더러도 티아라와 같은 음악을 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요구가 있음이 바로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표준화 계량화 보편화. 인디씬의 음악이란 저리 방대하고 다양함에도.

 

음악적인 정체다. 그러나 산업적인 팽창이다. 분명 대중음악의 산업적인 규모는 전보다 커졌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도 커진 만큼 발전이 이루어졌는가. 물론 지금의 아이돌 음악들도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충분히 다양하고 풍요로운가. 90년대와 비교해서도. 과연...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문득 떠올려 보았다. 언더그라운드와 주류의 메인스트림이 끊임없이 소통하던, 누군가 하나 데뷔하면 그 옛이야기가 주루룩 흘러나오던 그 시절들을. 어디서 뭘 했고, 어디서 어떤 활동을 했고, 신인이지만 신인이 아니었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과연...

 

늙은이의 때늦은 한탄이었다. 별로 늙은 것 같지는 않은데 요즘 부쩍 늙은 것 같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한탄하는 적이 늘면 그것이 늙은 증거라던데. 그렇다는 거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더라.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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