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디즈니와 PC, 그 구조적인 불협화음과 한계

까칠부 2025. 3. 28. 01:10

원래 디즈니의 강점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백인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그래서 쉽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정서에 기대서 그를 효율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이 디즈니의 원래 문법이었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비판도 많이 받았었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캐스팅하고서 정작 주인공의 피부색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듯한 흔적들이 바로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인어공주의 원작에는, 아니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기본적인 구조는 거의 건드리지 않은 채 주인공만 흑인으로 캐스팅한 채 그 피부색마저 감추려 애쓰면서 다양성을 위해서 노력했다 말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가. 실제 디즈니의 부활을 알렸던 애니메이션조차도 원작에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던 인어공주를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나중에는 왕자에게 그리고 작품 내내 세바스찬에게 기대기만 하는 피동적인 철부지 여자아이로 만든 것때문에 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기왕에 주인공도 흑인으로 캐스팅했으면서 원작의 배경이 원래는 지중해였다는데 당당하게 인어공주가 흑인이어야 하는 이유 정도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가. 외모가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이야기와 캐릭터가 재미있고 매력있다면 당연히 배우 역시 매력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백설공주 역시 다르지 않다. 백설공주가 처음 쓰여진 것이 아마 19세기일 것이다. 진짜 까마득한 옛날이다. 아직 여성에게 참정권도 주어지지 않던 시절, 아직 귀족이 남아 있고, 전근대적인 관습과 관행들이 관성적으로 남아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던 시대였다. 여성의 가치란 오로지 아름다운 하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만을 바라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아름다움 하나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하고 전쟁까지 일으키기도 한다. 한 마디로 지금 기준으로 미쳐 돌아가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처음 보는 여자가 아무리 예쁘다고 반해서 결혼도 하고 전쟁까지 일으키는가?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그런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을 마냥 좋게 보는 경우도 역사에서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하물며 그것을 지금 시대에 그대로 구성해서 보여준다고? 그런데 단지 주인공의 피부색만 백인이 아니면 다양성이고 정치적 올바름이 되는가?

 

당장 떠올려볼 수 있는 것이 백설공주의 이야기처럼 프랑스왕에 의해 갇혀 있던 부르고뉴의 여공작 마리를 사재까지 털어서 용병을 고용해 직접 구조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앙의 실제 이야기일 것이다. 부르고뉴의 대공 샤를의 딸로써 정당하게 영지를 상속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말 그대로 공주였지만 부르고뉴를 탐냈던 프랑스의 국왕 루이11세에 의해 유폐되어 있던 것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약혼했던 상대인 막시밀리앙이 전쟁까지 치르며 구해낸 것이었다. 실제 젊은 나이에 낙마사고로 죽기는 했지만 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었다 하니 이를 백설공주와 이어 붙여도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복잡한 정치이야기를 집어넣었다는 디즈니를 주로 소비하는 저연령대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그동안 디즈니가 추구해왔던 PC 그대로 외모만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꾸려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보았던 로맨스 만화였다. 주인공이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컴플렉스로 인해 단 것을 많이 먹어서 심지어 뚱뚱하기까지 한데 대신 책을 많이 읽어서 지식과 교양이 풍부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컴플렉스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것에 진심이어서 남다른 센스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다. 지적으로 뛰어나고 자기를 꾸밀 줄도 아는 못생긴 여자가 수많은 미인 경쟁자들을 이기고 사랑을 쟁취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살을 빼기는 한다. 그러니까 처음 왕비가 보기에 너무 못생겨서 안중에도 없었는데 머리도 좋고 교양도 풍부하고 성품도 다정하고 착한데다 행동도 품위있고 우아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더라. 더구나 자기를 꾸밀 줄도 알아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줄도 알더라.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진짜 미인은 백설공주더라. 왕자에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백설공주가 나라의 위기를 왕과 왕비를 대신해서 직접 해결하고 왕이 되었다더라. 진짜 PC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이야기 역시 디즈니를 원래 소비하던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뭐다? 그냥 하던 대로 피부색만 바꾸겠다. 그러니까 피부색만 히스패닉으로 바뀐 원작과 차이가 나지 않은 백설공주다. 그런데 그 원작은 어떻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차라리 바꾸려면 확 아주 뒤집어 엎을 각오로 바꿔야 하는데 애매하게 깔짝거리느라 정작 의미있는 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갔으니까. 어떻게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편하고 안전한 길을 가면서 그 안에서 혁신을 시도한 것이었다. 불협화음이다. 전혀 PC적이지 않은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서 PC를 관철해 보이겠다. 그러니까 중세를 배경으로 주인공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설정한다면 그에 따른 어려움 또한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 리얼리티도 높이면서 재미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기껏 주인공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설정했는데 내용은 그냥 평범한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으면 몰입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PC주의자들이 정작 문화산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타협을 너무 대충 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단지 몇몇 요소들로만 PC라는 면피를 하려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병신들이다.

 

그러면 과연 백설공주를 원작 그대로 만들었으면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것인가? 아이들은 좋아할지 모르겠다. 다만 나더러 보겠냐 묻는다면 고개부터 젓고 볼 것이다. 언제적 백설공주인데? 차라리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흑단처럼 새까만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이라면 흥미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냥 뻔한 홍길동보다는 어찌저찌 흘러들어온 흑인혈통의 노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 주인공인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니 아예 대놓고 아버지가 원래 흑인인데 홍길동 스승의 술법으로 아시아인처럼 꾸미고 살다가 하필 태어난 홍길동이 흑인이라 생겨나는 이야기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서자라서 서러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식상하다. 사실 그래서 디즈니가 굳이 되도 않는 PC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처럼 그냥 원작대로만 만들어서는 더이상 팔리지 않는다. 어쌔신크리드에서 전국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냥 평범한 사무라이면 재미없겠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삼국지 고인물들이 더이상 유비와 조조로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러니까 뭐든 어중간하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잡고 싶으면 결국 어느것도 잡지 못하고 만다. PC를 추구하는데 정작 전혀 PC적이지 않다. 그게 바로 디즈니라는 기업과 그들이 그동안 작품을 만들어 온 기존의 문법이 가지는 한계인 것이다. 그 불협화음이 결국 많은 실패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원래 새로운 시도라는 자체가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성공하는 헐리우드의 대작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서사와 구조, 캐릭터를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한 마디로 너무 게으르고 안이한데다 욕심까지 많았다.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