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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월드와 낭비, 과시와도 같은 과도한 투자와 노력에 대해

까칠부 2025. 4. 29. 17:21

오픈월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하여튼 울티마 시절부터 많은 게임개발자들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 속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이상으로 여겨졌던 때문이다. 그래서 하드웨어 성능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많은 개발자들은 자기들만의 오픈월드를 게임 안에 구현하려 노력해 왔었고 그 결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명작게임들이 적잖이 나오기도 했었다. 다만 그럼에도 크게 체감이 안되는 이유는 그동안의 하드웨어 발전이 그야말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게 진짜 가능했던가 싶을 정도로 디테일까지 꽉꽉 채운 게임들이 그야말로 발에 채일 정도이니. 그래서 깨닫는다. 이래서 오픈월드가 한계를 맞았구나.

 

오래전 스카이림을 할 때도 그랬지만 오픈월드 게임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생기는 습관 같은 것이 있다. 그냥 일직선으로 달린다. 길이고 뭐고 상관없이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래도 된다. 오픈월드니까. 원래 선형 게임이었으면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었을 고정된 오브젝트들이었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구현되어 있는 탓에 굳이 길을 찾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연 게임플레이에 실제 역할을 하지도 않는 그런 배경들에 그렇게까지 투자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기게 된다. 물론 산을 따라 이동하는 도중 곰이 나오면 곰을 잡고 늑대가 나오면 늑대를 잡고 때로 오가는 행인을 죽여서 털어먹고 하는 재미가 없지는 않다. 그래봐야 그건 그냥 소소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옛날 게임들처럼 패턴 몇 개 만들어놓고 돌려쓰는 수준이 아니다. 지형이나 오브젝트와 관련한 패턴을 몇 개 만들어서 돌려서 그냥 지도의 크기만 키우는 수준이 아니라 지형도 매번 다르고, 나무도 품종에 따라 생김새가 다른 것들이 같은 종류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패턴을 갖는다. 그런 것을 방대한 세계 전체를 통해 구현하려 하고 있다. 그런 지형과 오브젝트들의 3D모델을 만들고 그 위에 입힐 텍스쳐를 만들고 다시 그를 게임에서 구동시킬 프로그램까지 짜려면 도대체 얼마의 인력과 시간과 비용이 들어야 하는 것일까. 오래전 게임들이 괜히 선형방식을 취했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픈월드라도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열린 세계를 구현하고 있었다. 하드웨어의 제약이 줄어든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굳이 실제 게임플레이와 상관도 없는 부분들에까지 그렇게까지 막대한 돈과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 것인가.

 

물론 실제 전투에 들어가면 오픈월드의 장점이 드러나기는 한다. 혼자서 레벨도 안 맞는 요새나 마을을 털려 할 경우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저격을 하거나 높은 곳에서 걷어차서 떨어뜨려 죽이거나 아니면 물속에 잠수해서 숨었다가 몰래 물밖으로 나와 화살로 짤짤이를 갈기거나 정해지지 않은 다양한 게임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 오픈월드만의 강점일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저 지나치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 오브젝트들에까지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 낭비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넓어지다 보니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선택이 획일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나같은 경우 그냥 직선으로 달린다. 절벽을 오르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앞에 뭐가 있든 무시하고 그냥 직선으로 내달리고 만다. 그게 뭔 재미야? 그게 재미일 수도 있을 테지만. 

 

원래 서구권 게임회사들이 예전부터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고는 했었다. 하여튼 하드웨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내려는 경향이 강했었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곧 게임의 완성도다. 하긴 최초의 개발자들 대부분이 스스로 프로그래머였을 것이다. 엔지니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그래픽도 게임시스템까지도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된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바로 최근의 오픈월드 게임들이 아닐까. 거의 10년 넘게 먹고 사느라 게임은 문명과 삼국지만 하다가 새삼 게임을 다시 시작하려니 더욱 느끼게 된다. 과유불급이다. 그것도 재미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성가시다. 일본 롤플레잉들은 그런 고민 없이 그냥 있는 길로만 따라가면 되니 요즘처럼 피곤할 때는 오히려 그게 편하기도 하다. 하나의 장르가 쇠퇴하는 것은 바로 그 최전성기부터일 것이다. 아마도 아닐까. 괜히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