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게임을 위해 구매하는 그래픽카드 가운데 시장에서 가장 주류를 차지하는 이른바 메인스트림의 가격이 대략 50만원 이하다. 사실 이것도 코로나를 거치면서 너무 비싸진 것이고 이전까지 대부분 30만원 이하에서 팔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50만원 이하라지만 가성비로 팔리는 대부분 제품들은 40만원 이하일 때가 많다. 한 마디로 더 많은 돈을 쓰면 더 높은 해상도에서 더 높은 옵션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여기까지가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적당한 해상도에서 적당한 옵션으로 문제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작년까지 채굴장에서 풀려나온 RX6600을 문제없이 게임용으로 쓰고 있었다. 모니터만 43인치 4K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랬을 것이다.
원래 게임기라는 것은 PC의 가성비 버전이었었다. 아무나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흔한 물건이 아니었던 시절 PC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사치였었고, 따라서 PC에서 불필요한 기능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게임만을 위한 최소한의 성능만을 남겨서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내놓은 제품이 바로 게임기였고 여기에 게임기만의 독점타이틀이라는 것이 더해지면서 지금까지 게임기 시장이라는 것이 발전해 온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이미 닌텐도의 패미컴 시절부터 게임기는 그래픽과 사운드 모두에서 PC보다 우위에 있었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다만 당시에도 이미 PC는 확장카드를 쓰면 패미컴 이상의 그래픽과 사운드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너무 비쌌을 뿐이다. 당장 그래픽만 해도 이미 1970년대에 출시된 애플이 280*192 해상도에서 4색까지 구현할 수 있었고 닌텐도의 패밀리보다 조금 늦은 1940년 나온 IBM의 EGA는 640*350 해상도에서 최대 16색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패밀리의 후속작인 슈퍼패밀리조차 게임기는 여전히 256*240 해상도에서 최대 16색을 구현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애플이든 PC든 그만한 사양을 갖추려면 너무 많은 돈이 들었고 컴퓨터의 크기도 너무 컸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용 모니터를 써야 했던 PC에 비해 게임기는 그냥 TV에 연결만 하면 되었었다.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 아닌 오로지 게임을 위해서는 게임기를 사는 쪽이 훨씬 더 이익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게임기를 산다는 것은 오로지 게임만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PC를 사는 것과는 차별점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30만원 넘게 주고 게임기를 사 본 적이 없는 이유다.
PC는 일단 사 놓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인터넷도 할 수 있고, 문서작업도 할 수 있고, 영상이나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게임기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실제 플레이스테이션2의 경우 처음 출시되었을 때 저렴하고 성능 좋은 DVD플레이어로서도 수요가 꽤 많았었다. 멀티미디어로 한정했을 때 분명 이후의 게임기들은 PC보다 오히려 나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PC가 가지는 범용성을 넘어설 수 있는가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기의 가격이란 곧 개인이 게임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의 상한에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게 될 텐데 과연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바로 여기서 갈리는 것이 하드코어한 게이머와 라이트한 유저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픽카드에만 500만원 넘는 돈을 일시불이든 할부든 과감하게 지르기도 한다. 130만원 넘는 게임기를 보다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경험을 즐기기 위해 주저없이 투자할 수 있다. 게임가격이 얼마든 DLC로 몇 개가 나오든 아무렇지 않게 사들일 수도 있다. 당연하게 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최고의 해상도와 최고의 그래픽과 최고의 게임경험일 것이다. 그에 반해 적당히 게임이 돌아가고 문제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면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채굴장에서 나온 470과 6600을 10만원 안쪽에서 구입해 쓰면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몇 년 지난 게임을 이제야 사서 즐기면서도 오히려 공략 찾아보기 좋다며 대단히 만족하고 있기도 하다. 닌텐도에서도 동물의 숲이나 포켓몬 같은 몇몇 게임들만을 위해 게임기를 구매하려 하는 라이트한 여성과 아동들을 위해서 라이트버전을 발매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더 나은 사양을 요구하지 않으니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최저한의 가격으로 그들을 위헤 제품을 제공하려 한다. 그러니까 문제인 것이다. 과연 한국가격 65만원이라는 돈은 과연 어떤 게임유저들을 위한 것인가.
지금 대충 구입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 수준으로 65만원 정도면 4K에서도 꽤나 인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치마크야 성능테스트를 위해 모든 옵션을 켜고 하는 것이고 적당히 옵션 좀 타협하면 그 가격대에서 굳이 다른 기능을 통하지 않더라도 꽤나 괜찮은 게임경험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미 출시된 지 오래된 지금 세대의 다른 거치형 게임기의 경우도 더 낮은 비용으로 그보다 더 나은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낮은 성능의 그래픽과 옵션으로 단지 독점작을 즐기기 위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가격이 65만원이면 살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스위치까지만 해도 내가 조카를 위해 선물할 수 있었지만 65만원 넘어가면 차라리 그 돈으로 노트북을 한 대 사 주거나, 아니면 게임도 즐길 수 있는 미니PC를 선물해 줄 것이다. 노트북은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미니PC 역시 성능이 아쉽기는 해도 최소한의 게임구동은 되니까 꽤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다. 스위치2를 사고 싶으면 자기가 아르바이트해서 사거나 아니면 동생이 사주어야 하는데 글쎄 스위치도 나더러 사달라 했는데 과연 65만원을 태우고 싶을까? 하물며 다른 옵션까지 고려하면 스위치2의 경우 65만원이 끝이 아니기도 하다.
게임 가격이 더 올라야 한다는 주장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한때 게임개발에도 종사했던 입장에서 지금 게임가격이 너무 싸기는 하다. 그래서 DLC를 죽어라 내놓는 것이다. 엄밀히 지금 게임가격은 DLC를 모두 포함한 가격일 것이다. 더구나 재미있는 게임이라면 그것 하나만 사서도 최대 몇 년 이상도 즐길 수 있을 테니 그다지 비싸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역시나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한 가지 게임을 몇 년이나 즐기기 위해서 과연 그만한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는가. PC는 그 동안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진짜 어마무지하게 많은데 게임기는 오로지 게임만 해야 한다. 솔직히 RX7800 사고서 그동안 플레이한 게임이 대락 서너 가지라 조금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그 가운데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실제 체감할 수 있었던 경우는 토탈워와 어쌔신크리드 두 개가 전부였었다.
스위치2의 스펙을 듣고 가격까지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과연 그 정도 성능에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가. 굳이 독점작이 아니어도 다른 할 게임이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같은 게임이라도 PC나 다른 게임기로 즐길 때 더 높은 해상도에서 더 높은 옵션으로 즐길 수 있을 텐데 그 비용까지 비교하게 된다. 이미 다른 게임을 위한 수단을 보유한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지출할 여력이 되거나, 아니만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닌텐도에서도 스위치를 완전히 단종시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 여전히 스위치용 게임도 함께 출시하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스위치2가 스위치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두 제품이 타겟할 수 있는 수요층이 너무 다르다. 스위치가 게임을 위한 말 그대로 장난감이라면 스위치2는 사치재다. PC유저 입장에서 바라보는 스팀덱 같은 위치다. 하긴 스팀덱도 꽤 많이 팔리기는 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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