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월드컵 당시 굴건을 쓴 상주가 골이 터지자 슬픔마저 잊고 환호하던 것을.
원래 우리의 전통에서 초상은 곧 잔치였다. 초상을 치르면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또 왁자하게 떠들고 했었다. 그것은 상주가 슬픔에 치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었다.
슬프다고 그저 슬퍼만 하고 있으면 결국 마음이 지친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 지치고. 슬픔을 이겨내기가 더 힘들어진다. 죽은 이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란 그리 서럽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은 슬픔을 가슴에묻는 법을 배우게 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과연 웃고 떠드는 것이 불경인가. 글쎄... 슬퍼하는 사람들은 슬퍼 하더라도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일상을 사는 것이다. 어디선가는 술도 마시고, 어디선가는 헌팅도 하고, 어디선가는 즐겁게 아이만드는 일도 하고... 나도 최근 즐겁고 경쾌한 음악들을 듣고 있었다. 슬픔은 슬픔이더라도 일상은 또한 일상이라.
그래서 생각이 미친 것이 얼마전 김태현의 폭행사건. 김태현의 경우는 어떤가 모르겠는데 연예인들이 한결같이 토로하는 어려움이라는 게 있다. 연예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술자리에서 괜히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오고 탓을 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인터넷 악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이니까. 오죽함면 연예인 돈 버는 것 가지고도 시비걸고 하겠는가. 다른 직업이 억대를 번다고 함면 부러워는 할지언정 그것을 원망하지는 않겠지만 연예인은 그게 아니라는 거다. 놀고 먹는 직업이라. 쉽게 돈을 버는 직업이라. 그러니 더 조심하라. 더 삼가라. 그리고 모든 것을 감수하라. 욕이든 비난이든 조롱이든. 설사 여자친구에게 해꼬지를 하더라도.
천역이라는 거다. 천직이라는 거다. 하늘천 천직이 아니라 천할 천 천직이다. 원래 연예인이란 광대였으니까. 오죽하면 영화를 찍으려는데 배우 할 사람이 없어서 기생 데려다 배우를 시켰다고 한다. 아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연예인이라면 기생 비슷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딴따라라. 광대라. 한 마디로 하등 쓰잘데 없는 잉여들이라. 도움이 되는 건 의젓한 먹물이나 군인이나 기술자지 놀고 먹는 연예인은 아닌 거다.
지금도 그런다. 부국강병이 중요하지 연예인이라는 게 뭐 대단한가. 과학기술 발전하고 경제 발전하고 그게 중요하지 대중문화 예술 그런 게 뭔 대수인가. 딱 조선시대 사고방식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그래서 잡기라 해서 바둑이나 장기조차 손대지 못하게 하던 것이 우리 사회였다.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연예인은 천하다. 예능이란 천하다.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때 그런 하잘 것 없는 예능이란... 혹은 음악이란. 이런 중요하고 엄숙해야 할 때 그런 천하고 가치없는 것을 즐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아닐까?
예능을 하더라도 애도를 표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시작하면서 경건하게 애도를 표하고 그리고서 내용을 진행하면. 슬픔을 애도하고 슬픔을 위로하고 그러나 그런 한 편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 수 있도록. 그 또한 슬픔으로 엄숙해진 사회를 위로하는 방법일 터이니. 그러나 왜 하필 그것이 결방이어야겠는가.
더구나 예능이며 음악프로 결방하고서 내보내는 프로그램들은 그러면 그에 걸맞는 엄숙하고 경건한 것들인가. 엄숙해야 할 때라서 예능프로그램을 결방하는 것이라면 대체 프로그램도 그에 어울려야 할 텐데 그것도 또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한 편에서 여전히 웃고 떠드는 방송을 내보내는 케이블과 방송국은.
차라리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모든 술집 및 위락시설의 영업을 중단하고, 길을 걸을 때마다 애도방송 나와서 묵념을 하도록 하던가. 그도 아니면 고작 예능 하나 결방하는 것이 뭐 대수라고. 오히려 그런 예능을 통해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꼭 굳이 예능을 결방해야 하는 것은.
하여튼 그래서 생각나는 말들이다.
"이런 중요한 때 예능이나 보고..."
"예능이나 보고 있으면 시간이 아깝지 않아?"
"시시껍절한 내용에 남는 것도 없이..."
사실 나도 예능은 거의 보지 않는다. 일주일에 세 시간? 아직도 TV수신카드를 바꿀 생각을 않는 것도 요즘 음악프로를 보게 되면서 도합 일주일 6시간 보는게 고작인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같은 예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마저 모두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이것도 어쩌면 또다른 형태의 전체주의가 아닐까. 국가적인 사건이 있으니 모두가 슬퍼하라. 모두가 엄숙하라. 모두가 경건하라. 그러나 그것은 국가적인 사건일 뿐 국민 모두의 사건은 아닌 것이다. 동참할 것인가의 여부도 개인이 선택할 것이고. 언제까지 국가라는 이름 아래 개인은 숨죽여야 하는가. 그리고 예능은 - 연예인은 그같은 국가적인 엄숙함에 자기를 포기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지금도 장례식장 가면 한쪽 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고스톱을 치는 검은 양복들이 있다.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고 그러나 결국에는 일상으로 돌아올 이들이라. 그래서 죽음이란 서러운 것이지만 산 사람은 또 산 사람의 삶이 있는 것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답답해서.
물론 그렇다고 불행한 사고로 생사를 알 수 없거나 이미 유명을 달리했거나 지금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자는 건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모두가 함께 슬퍼하는 것만이 그들을 위한 것은 아닐 테니. 산 사람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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