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도 백두산의 해체에 얽힌 사연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히 백두산이 재결성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던 도중 어디선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내가 터무니없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 소문이 그랬다. 이지연은 원래 백두산의 팬이었다. 아직 여고생으로 백두산의 공연을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을 유현상이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를 데뷔시키고자 백두산을 해체하고 이지연의 매니저가 되었다. 가수데뷔에 반대하는 이지연의 부모를 설득하고자 백두산 시절 길었던 머리까지 짧게 잘랐다는 이야기는 그 절정이었다. 심지어는 바로 얼마전에도 지인으로부터 원래는 유현상이 이지연을 이성으로서 짝사랑하고 있었더라는 이야기를 마치 사실처럼 전해듣고 있었다. 사실여부야 당사자만 알겠지만...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모두가 아직 백두산이 건재하다 알고 있었다. 단지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 백두산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고. 그런데 느닷없이 유현상이 짧은 머리에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샐러리맨의 모습이 되어 나타나 이지연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있었으니. 그 사이의 공백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거다. 백두산은 어떻게 되고 유현상은 저리 이지연의 매니저가 되어 있는 것일까.
무럭무럭 상상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백두산의 해체과정과 이지연의 데뷔과정, 그리고 유현상의 변신의 이유에 대해서까지 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김도균마저 영국으로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하는 바람에 그가 영국으로 떠났더라는 사실마저 거의 전해지지 않았으니.
즉 당시 누구도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용의 보도가 나간 적도 없었다. 어떻다더라 실제 드러나거나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그 "개연성"과 "상식"에 기초해서. 어떻게 백두산은 해체되고, 유현상은 이지연의 매니저가 되었는가.
그러나 실상은 백두산 2집이 영어가사를 이유로 방송 및 공연금지 처분을 받으면서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자, 더구나 김태원이 잡혀들어간 대마초 파문으로 락씬이 들쑤셔지면서 여러가지로 고초를 겪기도 하면서 아직어렸던 김도균이 견디지 못하고 영국으로 훌쩍 떠나간 것이 발단이었다. 그렇게 김도균이 떠나고, 그렇지 않아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백두산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던 김도균마저 떠나자 유현상 이하 다른 멤버들도 어쩔 수 없이 백두산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여기서 숨은 이야기가 백두산이 해체되고 유현상이 일본으로 건너갔더라는 것이었다.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쇼비즈니스 산업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일본의 아이돌 산업에 영향을 받아 데뷔킨 것이 최초의 남성아이돌 그룹인 야차와 최초의 여성아이돌 이지연이었다. 야차는 당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꽤나 획기적인 팀이었는데 그러나 당연히 망했고, 이지연이 대박을 치면서 강수지에서 하수빈으로 이어지는 청순가련형 아이돌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가 나가지 않은 터라.
김도균이 떠나고, 백두산이 해체되고, 다시 유현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둘러보고 돌아오고...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 언론이 따로 다루거나 혹은 당사자들이 직접 입을 열어 이야기하거나 하지 않았기에 그저 사람들의 상상력만으로 재구성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지연이 데뷔하고 그 매니저가 유현상이었으니 유현상이 아마도 이지연을 데뷔시키고자 백두산을 해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지연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지 않을까. 이지연을 데뷔시키고자 머리까지 싹둑 자르고 그 부모 앞에 무릎을 꿇었을 정도라면.
그러나 유현상 자신도 말했듯 유현상은 음악인인 동시에 비즈니스맨이다. 아주 탁월한 음반기획자이기도 했었다. 백두산 자체도 유현상의 기획아세 출발한 프로젝트 맨드였고, 이지연도 말할 것 없고, 유현상 자신의 트로트가수 데뷔도... 그리고 당시는 백두산도 해체되고 아마 음반회사 실장으로서 새로운 가수를 발굴 데뷔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참고로 예전 가수 가운데는 그렇게 음반회사에 아예 들어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시나 그쪽 바닥이다 보니. 또 유현상은 곡쓰는 능력도 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상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좋은 머리를 꼭 그런 쪽으로만 쓴다는 말이다. 좋은 말인 이성이네 상식이네 논리네 하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짜증부터 부르는 단어가 되어 버렸고. 누구도 실제 확인한 바 없는 일들로 그저 머릿속으로만... 세상에는 참 쓸데없이 똑똑한 놈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에라도 놀러와를 통해 바로잡... 아니구나. 작년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유현상이 과거 백두산 팬클럽 회장이었던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한 번 다루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워낙 그쪽과 이쪽은 주시청층 자체가 달라서. 지금에라도 사실이 밝혀졌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참 속도 많이 끓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현상에게 쏟아지던 비난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었으니.
모르는 건 모른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인 것이다. 모르는 걸 모른 채 두지 않고 굳이 아는 체 하려니 사단이 난다. 알량한 논리, 상식, 개연성... 그러나 그 어느것도 직접 부딪혀 알아낸 것은 없는 것을. 어설프게 똑똑한 것들이 그래서 항상 문제다. 지금도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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