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너보다 못한 사람도 많아... 과연 위로인가?

까칠부 2010. 4. 2. 16:58

내가 살다가 가장 어이없을 때가 위로랍시고 그런 소리 들을 때다.

 

그런다.

 

"세상에는 너보다 못한 사람도 많아..."

 

이 뭔?

 

이게 얼마나 오만한 소리냐면, 누구나 다 사연이 있어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거다. 누구나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 분노하고 원망하는 거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말하는거다.

 

"그렇게 화낼만한 일이 아니거든?"

"그렇게 슬퍼할 게 아니거든?"

 

더 나아가,

 

"도대체 왜 아프다고 엄살인데?"

"뭐한다고 원망하고 그러는 거야?"

 

뭐냐면 그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눈물을 흘리거나 힘들어하는 기사가 나온다. 그러면 아주 잘나신 착하고 현명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이신 분들께서는 그런다.

 

"왜 우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네."

"이건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네."

 

한 마디로 상상의 결여다. 배려란 결국 상상인데, 즉 상대의 입장이 어떠할까 진심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는 것일 텐데,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보니 뭐든지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사정과 입장이 있을 터임에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만.

 

그래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별 것 아닌데 너는 왜 그래?"

 

그러나 어차피 너와 나는 다른 존재라는 거다. 너는 괜찮아도 나는 안 괜찮을 수 있는 것이다. 괜찮은 건 자기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나보다 못하다는 사람들은 그러면 지금 만족해 하는가? 지금 그들은 아무 어려움이나 걱정 없이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건 또 누가 담보하는가.

 

하여튼 교육이라고 죄다 주입식이더니만 이제는 배려조차도 주입으로 하게 만들고 있다. 위로를 한다는 놈이 오히려 상대를 깔아뭉개고 조롱하고 있고. 위로한다면서 오히려 속이나 긁고 있고.

 

말하지만 위로란 상대 입장에서 해주는 것이다. 내가 괜찮으니까가 아니라 상대가 괜찮은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상대가 괜찮을까. 거기에는 상대가 지금 괴로워하는 이유에 대한 동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만 하니까 그런다. 상대의 입장에서.

 

아무튼 참 같잖다. 아예 말을 말던가. 말을 할 거면 생각을 하고 하던가. 그래 놓고도 뭐라 한 소리 하면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어쩌구저쩌구... 세상에 착한 놈들이 제일 싫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현명하신 분들이... 이건 처치도 곤란하고.

 

세상이 나를 악당으로 만든다고나 할까? 뭐 악당이 더 편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