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예능인 김태원...

까칠부 2010. 4. 4. 23:11

아무래도 일요일은 남자의 자격을 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모아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돌려 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나 많이 했었구나... 그러면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멤버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들어왔다. 시간과 함께 변화해 온 모습들이다. 특히 김태원.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른 많은 예능에 도전했던 연예인들처럼 김태원도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면 그대로 사라지겠거니.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야기거리가 많으니 그래도 작년 한 해는 버티며 새로운 앨범을 내고 부활을 알리기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초반 보면서도 위태위태했다. 김태원이라는 사람이 과연 리얼버라이어티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 국민시체라든가 IQ81이라든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괜찮겠는가. 그런 점에서 제작진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편에서 김태원의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해 보여준 것은 무척 고마웠다. 어쩌면 이로써 단지 웃기는 예능인으로서 소모되지는 않겠구나.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게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김태원의 적응력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아니 적응한다기보다는 그냥 즐긴달까? 초반 치고 나간 것이 김성민이었는데, 그러나 김태원이 보여준 적응력이란 그 이상이었다. 김성민이 단지 특유의 캐릭터로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었다면 이미 김태원은 리얼버라이어티의 기본인 팀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이경규하고만이었다. 이경규에게만 찰싹 달라 붙어 그와만 관계를 맺는 것이 조금은 위태하게도 불안하게도 보였었다. 사실 당시까지도 이경규의 역할이 거의 8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경규의 존재가 절대적이었기에 김국진과 이윤석, 김성민에 이어 김태원까지 이경규와 붙어 지내는 것은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프로그램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런데 웬걸?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김태원의 팔이 옆으로 앞뒤로 뻗치기 시작했다. 이경규에게서 김국진으로, 슬금 당시 병풍이던 이정진과 윤형빈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이경규와 더불어 김성민과도 대립관계를 만들었다. 윤형빈을 노골적으로 꼴찌라 한 것도, 이정진의 어정쩡함을 디스한 것도, 김성민이 뭐만 하면 가장 먼저 이경규와 함께 싫은 표정을 짓는 것도 모두 김태원이었다. 물론 공격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국민시체 캐릭터와 국민바보 캐릭터를 가지도 다른 멤버들이 공격해 오면 받아줄 줄도 알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경규와 자연스럽게 상황극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었다. 이경규가 주도하기도 했지만 때로 김태원이 그것을 받아 이어가기도 했다.

 

남자의 자격의 강점이라면 역시 상황을 부여할 줄 아는 멤버가 무려 넷이나 된다는 것이다. 의외로 이윤석도 상황을 만드는 능력이 된다. 개그맨 짬밥이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OB 셋이 없으면 나머지 YB 넷 가운데 MC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윤석이다. 김국진이야 이경규와 더불어 MC로서의 역할을 - 특히 진행을 나누어 하고 있고. 그런데 진짜 의외가 김태원이었다.

 

확실히 김태원은 밴드의 리더라는 것이다. 밴드의 리더란 밴드를 관조하는 사람이다. 라디오스타에서도 나와 말한 바 있지만, 일단 리더인 이상 다른 파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드럼이 어떻고, 베이스가 어떻고, 키보드가 어떻고, 실제 김태원은 곡을 쓸 때 드럼과 베이스, 키보드 등 다른 파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곡을 쓴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에 채제민, 서재혁 등이 이것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것이고.

 

즉 리더라는 자체가 배려라는 거다. 아마추어밴드 편에서도 나왔듯 실력이 되면 실력이 되는대로, 실력이 되지 않으면 실력이 되지 않는대로, 멤버들의 실력과 상태를 파악해 팀을 이끌고 유지하는 것이 리더인 것이다. 김태원은 그것을 무려 26년간이나 해 왔었다. 과연 그 내공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래서 이미 초반부터도 김태원의 예능은 다른 멤버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멤버들이 카메라를 보거나, 혹은 이경규만 보고 있을 때, 김태원은 이경규 옆에서 다른 멤버들을 디스하거나 친목질하며 관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국민시체, 국민할매라는 캐릭터에 가려진 이면에는 멤버들이 모이면 끊이지 않는 수다라고 하는 그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보면 멤버들이 모여 토크를 할 때 그 중심은 이경규 아니면 김태원이다. 김국진은 원래 남을 디스하며 웃기는 타입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며 그것을 받거나 혹은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이고, 김성민은 원래 주위 상관않고 혼자서 내달리는 타입이고. 이야기를 던지고, 혹은 이야기를 받고, 상황을 만들고 상황을 받고 하는 중심에는 이경규가 아니면 김태원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경규의 존재가 너무 크다 보니 그게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 더구나 국민할매라는 캐릭터란 너무 큰 것이라서.

 

말하자면 김태원의 역할은 축구로 치자면 셰도우라 할 수 있다. 일단 미션을 맞아 가장 먼저 그 깊숙이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공간을 만드는 김성민이 타겟맨이라면 김태원은 이경규와 김성민의 사이를 움직이며 때로는 이경규를 대신해 상황을 만들고, 때로는 김성민을 대신해 최일선으로 뛰어들고, 김태원이 빠졌던 "하늘을 날다" 편에서도 그래서 토크가 잘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토크는 재미있었지만 이경규를 받아주고 주위에 던지고 다시 받는 김태원의 존재가 사라지니 토크에서 한 부분이 빠진 듯 휑하다. 하긴 지금에 와서는 김태원이 아니라 다른 멤버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항상 당하기만 하는 막내 윤형빈이나 가끔 뜬금포를 날려주는 이정진이 없으면 그것도 매우 서운하다. 아무튼 김국진, 이경규, 김태원, 김성민으로 이어지는 라인이야 말로 남자의 자격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더구나 그러면서도 김태원의 가장 큰 강점이라면 이경규가 말한대로 "생각이 없다"는 것일 텐데, 김태원 스스로도 인정한 부분이었다. 괜히 예능 나가서 웃기려 하지 않는다. 웃기려 꾸미고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어떤 진정성이라는 부분에서도 김태원이 차지하는 부분이 꽤 크다. "열광하라"편에서도 결국 김성민이 막판에 소시로 갈아타면서 열광이 아닌 단순한 유희가 되고 예능이 되어 버렸을 때, 혼자서 수애를 만나면서 진정한 열광이 무엇인가, 팬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으니.

 

힘이 들면 힘이 든다, 힘에 부치면 힘에 부친다, 못하면 못한다, 안 되면 안 된다, 참으로 멤버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것도 안 돼, 머리로 하는 것도 안 돼, 그러나 그렇다고 허세를 부리는 법 없이 솔직하고 당당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런 상황이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하련만,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천진하다 할 정도로 정직하게 그 안에 자신을 내보인다. 그것이 싫어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우스워 조롱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것이 내 본 모습이라. 그것이 김성민에서 김태원까지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남자의 자격만의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나머지 멤버들도 움직일 여지가 많아지고. 두 극단이 있다면 그 가운데 자기 역할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김태원의 역할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김국진과 김성민도 있었다. 이제까지의 이경규의 캐릭터를 나누고 짐을 덜고 더불어 여지를 넓혀줄 다양한 가능성들이 남자의 자격에는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특히 김태원과의 관계는 노부부 컨셉으로 이경규는 이제까지의 욱사마에서 귀엽기까지 한 이미지로 바뀌고 있었고, 굳이 이경규가 나서지 않고서도 다른 멤버들이 캐릭터를 잡는데 적잖이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이경규의 짐을 덜어주는 등 이경규에게 끼친 영향이 작지 않다. 아마 그것을 알기에 이경규도 김태원을 좋아하며 함께 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귀엽다. 김태원과 함께 하는 이경규란. 그리고 이경규와 함께 하는 김태원도. 굳이 이경규가 나서지 않아도 김태원이 나서고 있고, 김태원이 하지 않아도 이경규가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국진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 김성민은 여전히 봉창이다. 그리고 이제는 일곱 남자가 하나가 되어서. 이런 게 바로 팀웤이라는 것일 터나. 관계라는 것일 테고. 리얼버라이어티란 바로 그런 가운데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

 

원래는 아마추어밴드편 전에 쓰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뭔 일이 있었더라? 아마 정신이 분주해서 미뤄두었던 것인데, 아마추어밴드편으로 인해 할마에에 대해 이것저것 쓰느라 또 많은 말을 해버려서. 그리고 이번에는 새삼스러이 보게 된 것들도 있고. 김성민과 묶어 쓰려다가 김태원만 따로 쓴다.

 

어쨌거나 정말 놀라운 발견이나. 김태원이라는 존재는. 음악인으로서는 그를 알았어도 과연 예능인으로서도 이리 재능을 발휘하리라고는. 물론 90년대 초반까지의 - 아니 2000년대까지도 상상도 살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알음알음으로 듣기로 김태원의 성격이 당시까지도 장난 아니었다고. 지금은 사람이 좋아져서... 그렇게 세월과 함께 스스로를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도 항상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참 아름답고 멋진 일일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음악활동이 지지부진하여 예능에 나오게는 되었지만 이렇게 또다른 가능성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으니.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김태원이 예능을 단지 부활을 알리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일 게다. 출연자들을 단지 동료가 아닌 형제로 가족으로 여기고 일상에서까지 진심으로 즐기며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그것이 더욱 남자의 자격에서 김태원을 돋보이게 하는 것일 테지만.

 

물론 몸으로 때우는 것만이 리얼버라이어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글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런 사라들은 굳이 남자의 자격을 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모두가 한 바퀴씩... 그 당연한 것을 모른다면 과연 본다고 재미가 있을까. 뭐든 자기와 맞는 걸 봐야 재미가 있다.

 

아무튼 즐거웠다. 1화 두 번 결혼하다에서부터 바로 지난주... 아아, 결국 경규옹의 몰래카메라는 1주 뒤로 미뤄지게 되었구나. 몰래카메라 보고 나서 다시 3주는 더 기다려야 아마추어 밴드편이던가? 스포가 뜨기는 했지만. 희망고문도 이런 게 없다. 역시 보아도 즐겁다. 남자의 자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