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부활&백두산편을 보다가 또다시 문득 당겨서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밴드편을 봤다.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해 보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이번에 다시 눈여겨 보게 된 것이 바로 김태원의 리더십... 아마 그동안 지나가듯 몇 번 다루었을 것이다. 김태원의 리더십은 정말 놀랍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첫째 명확한 비전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만의 비전이 아니다. 그런 것을 두고 흔히 망상이라 부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비전따위 그냥 망상이고 자위일 뿐이다.
먼저 멤버들의 실력을 파악한다. 참가하기로 한 대회까지의 시간을 고려한다. 더불어 과연 멤버들이 그 기간 동안 음악에만 매진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 대회의 성격과 무대에 섰을 때의 상황까지.
말하자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의 현재를 알고, 출전할 대회를 알고, 그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둘째 그런 현재상황에 맞는 주도면밀한 계획과 실천이다.
얼마전 월드컵 응원가를 작곡에서 녹음까지 마치는데 모두 열흘도 채 안 걸렸다고 한다. 12집 파트2 작업으로 한창 바쁘던 와중에 그래서 스케줄에 큰 차질이 없었다고. 작년 "반갑습니다 선배님"에서도 김태원은 즉석에서 작곡을 마치고 멤버들에게 연주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에서 "사랑해서 사랑해서"는 무려 한 달 만에야 완성되었다. 멜로디는 8분만에 나왔지만 나머지 연주를 위해서. 편곡에 걸린 시간이었다.
초짜들이다. 악기라고는 잡아본 적 없는 멤버들이다. 그렇다고 하루 몇 시간씩 모여서 연습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케줄에 쫓겨 그다지 연습도 많이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멤버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방향을 설정하고 그를 위한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단지 멤버들은 그에 따르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멤버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 그러도록 계획을 세우고 멤버들을 이끄는 것.
오히려 모두가 초보이고 미숙하기에 더 많은 고민과 배려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멤버들을 자기에 맞추려는 오만과 독선은 없었다. 실제 연주하는 것은 멤버들 자신이라. 그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그들이 연주할 수 있게끔. 리더란 바로 그를 위해 존재한다.
셋째 그렇다고 물렁하게 멤버들 하자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필요한 때 다그치는 엄격함도 있다.
매 단계에서 항상 하는 말,
"지금 하는 걸 또 할 수는 없어!"
"연습해야 해!"
"각자 알아서 연습해 와야 돼!"
"연습 안했지?"
"그러려면 하지 마!"
오죽하면 박완규가 김태원 무서워서 부활 그만두었다고 하겠는가. 물론 들은 이야기다. 정동하더러도 어떻게 아직까지 부활에 붙어 있느냐고 때때로 말하고 했었다고.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되 그 대신 그 안에서는 철저하게 스스로 노력하여 이루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가 있다. 그래서 항상 강조하고, 설사 친구더라도 엄격함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하나하나 차근차근 현재를 알도록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해 간다. 바로 이런 것이 카리스마라.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 전체를 지배하는, 마치 또 하나의 이경규를 보는 듯한 절대적인 존재감이었다. 할마에. 그가 왜 락의 전설인가.
넷째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내가 가장 감탄했던 부분이다. 처음부터 이경규에게는 별 기대가 없었다. 일단 악기를 처음부터 배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래서 방치하다시피 퍼커션을 맡겨두었던 것이었는데, 이내 김태원은 생각을 달리 한다.
"혼자서 뻘쭘하게 있는 게 너무 허접해. 그래서 세컨드 기타라도 맡으라고..."
과연 세컨드 기타가 필요하겠는가 싶을 정도로 단순한 코드며 주법이다. 아마 실제 연주에서도 잘 들리지는 않으리라. 김태원 자신도 기타 볼륨을 낮추고 퍼포먼스를 위주로 하라고 한다.
아니 이경규가 느닷없이 무대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퍼포먼스를 벌이자 김태원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를 격려한다. 연주 이외에도 그에게 강점이 있다. 연주가 아니더라도 이경규에게는 이경규만의 장점이 있다. 밴드 가운데 가장 뒤쳐지는 멤버가 바로 이경규였지만 그렇게 이경규는 밴드의 훌륭한 일원이 된다.
하긴 김성민은 어떨까. 어쩌면 스포일 테지만 보컬은 계속 김성민으로 가려는 모양이다. 그를 위해 가사마저도 고쳐쓴 듯 하고. 보컬 바꾸는 거야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그러나 그런 쉬운 길로 가기보다는 김성민까지 함께 - 보컬로서 끌어안고 그의 문제까지 함께 해결해가며 나아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의 자격의 대사,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모두 똑같이 한 바퀴씩 나아갑니다."
전체주의와는 다르다. 전체주의란 개인을 집단에 끌어맞추는 것이다. 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채 집단에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것이다.
그러나 김태원식 리더십은 다르다. 개인의 개성을 존중한다. 개인의 역량도 존중한다. 그 안에서. 그러나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너무 큰 목표도, 너무 거창한 목표도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지금에 너무나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이상만을 강요하고, 자기가 구상한 어떤 계획만을 고집하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는 그저 버리고 가려는 어떤 리더십보다는. 결과만을 생각하고 더 크고 대단한 결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그런 리더십과 비교해서는.
물론 그 전의 누군가 알아주겠거니 관심법 정치를 하던 사람과 그 후계자와도 비교가 된다. 동의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동의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비난하던.
하긴 이상론이다. 고작 작은 밴드 하나와 한 사회 한 집단 한 나라를 이끄는 리더십과 어찌 비교가 가능할까. 그러나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이라...
더 대단하다는 것은 원래 김태원의 성격이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대철도 마찬가지지만 김태원도 성격 더럽기로 무척 유명했었다. 아주 괴팍해서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고. 부활 멤버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 데에도 그같은 이유가 큰 몫을 차지했다. 앞서도 말했듯 박완규가 부활을 뛰쳐나간 데에도 그같은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삶을 통해서 많은 일들을 고민하고 깨달은 결과 지금처럼 바뀌게 된 것이었다. 인간이란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동물이라. 앨범 망한 것조차 음악인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로 여기는 사람이었으니.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무리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다.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몇 번을 다시 보면서도 매번 김태원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였다. 아마 지금까지 본 만큼 더 보고서야 겨우 질려서 보지 않게 될 듯. 왜 김태원인가. 그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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