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이경규를 위한 트리뷰트 미션...

까칠부 2010. 3. 29. 08:13

처음 히든미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건 참 이경규스럽구나. 괜히 1주년이라고 무게잡지 않고 오히려 예능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것이. 하필이면 그것이 또 몰래카메라다.

 

그래서 다시보기로 다시 보다가 어떤 확신을 얻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하게 떠들며 논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주동으로 한 사람을 온통 음식물로 범벅을 만들더니 가까운 개울이나 연못에 던져 빠뜨린다. 과연 그날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주동하여 물에 빠뜨린 사람? 아니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

 

나오느니 이경규다. 확실히 이경규만 보인다. 하기는 워낙 이경규가 눈에 뜨이지 않으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기는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미션에서도, 일단 이경규가 보여야 뭐가 나와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분량을 뽑아내는 것이 바로 이경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어제따라 그렇게 이경규가 자꾸 눈에 뜨일 수 없었다. 금식미션을 이경규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더구나 히든미션이 공개되고부터는 더욱.

 

확실히 이제 몰래카메라가 제대로 가동되면 모든 시선은 이경규에게로 집중될 것이다. 과연 이경규가 몰래카메라에 속아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몰래카메라인 것을 눈치채고 알아낼 것인가. 몰래카메라 안에서 이경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나머지 멤버들이야 그를 지켜보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과거 몰래카메라에서 정작 주인공은 이경규에게 당하던 연예인들이었던 것처럼. 하물며 이번의 몰래카메라는 일회용이다.

 

한 마디로 이경규를 보자는 것이다. 이경규 관찰일기다. 이경규가 굶겨놓으니 어떻게 되더라. 난폭해지고, 신경질적이 되고, 그러나 귀엽다. 굶어서 신경이 날카로우니 히스테릭한데 그러나 하는 말이며 행동들이 한결 귀엽다. 마초적인 폭력성이 아닌 어린아이의 앙탈과 같다. 내내 그다지 잘 생기지도 못한 중늙은이가 그리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저리 나이를 먹고서도 저리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 그것을 지켜보라.

 

하긴 미션 자체가 그렇다. 몰래카메라 하면 이경규가 원조다. 몰래카메라류의 다른 프로그램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몰래카메라라는 이름을 쓴 것은 일밤과 이경규였다. 1주년 기념으로 이경규가 하던 몰래카메라를 그 이경규를 대상으로 시도한다? 그 의미란 무엇이겠는가.

 

과거 "남자의 자격,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편은 확실히 김태원을 위한 미션이었다. 김태원이라는 예능인이지만 음악인으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멤버를 위해 마련된 김태원의 미션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경규를 위한 이경규의 미션이 진행되려 한다. 이경규가 아닌 다른 출연자에 의해 스텝에 의해. 남자의 자격 1주년 기념으로. 1주년을 기념하는 미션으로서. 남자의 자격의 1주년과 이경규를 위한 미션, 바로 그대로.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창립 몇 주년 하면 그 축하를 대표해서 창업주가 받듯 남자의 자격 1주년을 축하받는 것도 단 한 사람이라.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이가. 남자의 자격에서 가장 중요한 이가. 남자의 자격의 주인공이자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그가.

 

기대하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과연 이경규란 어떤 사람인가. 이경규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가. 어느새 한 꺼풀 벗으며 더 노회해지고 더 교활해진 그의 모습을. 무서울 정도로 귀엽고 소름끼지치도록 사랑스러워진 그의 변신을. 이것이 이경규구나. 그리고 이것이 그 이경규가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구나. 그동안도 계속해 보아온 모습이지만 몰래카메라를 통해 집중해 보는 모습은 또 다를 것이다. 그를 위한 미션일 것이니. 그러자는 미션일 것이다. 바로 그러자고 남자의 자격은 1주년을 자축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래서 놀리고 괴롭히고 이제는 물에 풍덩... 그러나 과연 순순히 빠져줄 것인가 하는 게 문제일 테지만.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확실히 이경규란 천생이 예능인이다. 전설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어쩔 수 없는 예능인인 때문이다. 저 풍부한 표정과 저 다양한 액션과 리액션과 여전히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을 살리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본능이란. 또 그게 남자의 자격이라. 몰래카메라는 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축미션이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남자의 자격 1주년을 축하하며, 이경규와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 그 밖에 모든 제작진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지난 1년이 그리도 감사하고 좋았노라고. 최고였노라고. 나에게도.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는 모두에게도. 진정 최고였노라고.

 

아무튼 그래서 항상 이 시간이 좋다. 한 번 보고 난 것을 여유를 가지고 다시보기를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일요일만이 아닌 월요일까지도, 아니 일주일이 남자의 자격의 시간이라. 이른 아침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