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춘불패를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항상 말하던 "순수"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착하다. 순수하다. 해맑다. 여기에 초반에는 어색하지만 어색한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순수버라이어티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와 같은 처음의 장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자연스러움이야 애저녁에 이스칸달로 날아가 버렸다. 김신영이 멤버들 이끌고 억지예능이나 하면서 뭔 놈의 자연스러움? 언제부터인가 분량 신경쓰고 분량 가지고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를 살려주고 띄워주고 하는 부분도 거의 사라졌고. 혼자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며 보아주기를 바랄 뿐 다른 멤버를 먹이로 삼아 그와 함께 무언가를 하려는 게 없다. 기껏해야 커플? 그 이상 다수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런 예능은 최소한 청춘불패에는 없다.
그게 또 하나. 서로를 위해주고 걱정해주고 수다스럽던 처음에 비해 이제는 하는 말이 예능에 대한 것들 뿐이다. 조금 더 화면에 비치기 위해서, 무리한 컨셉에 뻔히 보이는 콩트에... 그나마 자리잡았던 캐릭터마저 그렇게 반복해 노출하며 어느새 지겨워지고. 어제 나르샤의 성인돌 캐릭터도 짜증나려 하더라. 그동안 나르샤 혼자 하며 겉돌 때는 그리 재미있더니만 김신영에 구하라까지 가세하면서 저게 뭔가... 뭐든 지나치면 안 좋은 법이다.
그리고 어제 기껏 게스트로 찾아온 - 그것도 구하라 이하에게는 거의 아빠뻘인 구준엽에 한 행동은 이제까지의 아이돌스러운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구준엽 자신도 그랬지?
"너희들 아이돌 아니지!"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여자아이들이 그래도 보기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아줌마들이 그래도 보기 흉하다. 만일 남자가 그랬다면? 방송사고다. 남자 출연자가 여성게스트 두고 그따위 짓거리 했다면 그들은 아마 다시는 - 최소한 한동안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살짝 드러난 속옷을 강조하며 그것을 훔쳐보고, 시시덕거리고, 마침내는 똥침까지... 내가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은 바로 그 장면에서였다. 이제 PD가 자신감을 얻었구나.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청춘불패는 잘 나가고 있으니 들을 필요 없겠다 확신을 가졌구나. 좋은 현상이다. 남이 하는 소리 일일이 신경써서는 PD짓도 못한다. 그 정도 뚝심은 있어야지. 그래서. 이게 PD가 추구하는 청춘불패구나.
하다못해 무한도전에서도 저같은 장면 나왔다면 문제가 되었다. 1박 2일도 마찬가지다. 속옷을 드러내고 그것을 가지고 희롱하고, 여성출연자가 남성게스트에게 똥침을... 아무리 예능이더라도 선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걸그룹이라면 - 여성이라면 그 허들이 상당히 낮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이 청춘불패가 추구하는 바라면... 그래서 청춘불패가 마침내 자기만의 자기식의 리얼버라이어티를 추구하게 되었다면 그 대신 내가 추구하던 청춘불패는 어제부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독하고 짖궂고 개구지고 무례한... 어쩌면 어지간한 성인 버라이어티보다 더 높은 수위의 버라이어티란.
물론 팬덤은 그래도 지켜볼 것이다. 아이돌이니까. 자기 아이돌이니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 그저 독하게만 웃음을 탐해서 과연 청춘불패에 남을... 아, 시청율 높지? 하긴 요즘은 예능도 독한 게 대세니까.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나간 것인지도.
인정한다. 그래서 나도 청춘불패에 대한 기대를 모두 지웠다. 아무 생각이 없다. 이건 원래 그런 프로그램이려니. 구하라가 이런 데 출연한다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걸그룹 얼굴 보는 재미에 보기는 하려고.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참 아쉽다. 같이 독하더라도 현아가 김태우에게 "뭐 어쩌라고 돼지야!" 했을 때는 친근함이 있었다. 유리가 "죽여버리겠어!"라고 했을 때는 그만큼 스스럼없는 관계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축적된 관계와 전혀 새로운 타인의 차이다. 같은 무리 안에서는 어느 정도 독해도 상관없지만 외부에 대해 독한 것은... 만일 그런 것이 반복되어도 청춘불패는 지금같은 시청율이 가능할 것인가.
어쨌거나 어제부로 나도 청춘불패에 동의해 버렸다. 이건 이런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청춘불패에 갖고 있던 기대와 호감도 한꺼번에 바이바이해버렸다. 이건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분명해진 회차였다. 이건 뭐라 할 거리가 아니다. 이건 원래 이런 프로그램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구하라는 그저 병풍인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병풍으로 있으면서 예쁜 모습이나 보였으면. 똥침 놓고 하는 거... 그리고 남자 속옷 가지고 시시덕거리는 거... 한 번은 괜찮지만 그런 식의 예능이라면... 참 저렴했다. 저렴한 것보다는 병풍이 낫다. 장래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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