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을 다시 보면서 새삼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비덩 이정진.
원래 이정진이 비주얼덩어리가 된 것은 신입사원편에서였다. 그러나 그 전에 그 단초가 있었으니 바로 웨이크브도 편이었다. 거기서 이윤석은 이정진을 두고 말한다.
"포장지였네!"
김성민도 단정하듯 말한다.
"근육 있는 태원이 형이야!"
그리고 나오는 말,
"이미지에 타격이 크겠는데?"
즉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정진이란 허우대만 멀쩡했지 의외로 허당인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갈 수도 있었다.
내가 남자의 자격 제작진에 새삼 감탄하게 된 부분이다. 말 그대로다. 만일 그대로 갔다면 남자의 자격은 더 웃길 수 있었을 것이다. 생긴 것만 멀쩡할 뿐 의외로 허당인 이정진의 캐릭터를 강조했다면 이정진 역시 적잖이 사람들을 웃기는 캐릭터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제작진인가. 웃기려고만 한다면야 출연자를 망가뜨리는 이상이 없다. 망가뜨리고 희화화시키고 우습게 만드는 것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그러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웃음을 뒤로 하고 오히려 이정진의 강점을 그의 캐릭터로 삼았다. 어찌되었거나 잘 생겼다...
잘 생겼는데 의외로 허당이더라는 게 아니라, 의외로 허당이지만 그래도 잘생겼다는 거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정반대다. 전자가 긍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대비로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면, 후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양념삼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이정진은 잘 생긴 미남배우라고.
그 선택은 물론 성공이었다. 일단 여성 시청자 가운데 이정진 보려고 본다는 사람들이 그리 많다는 것이다. 잘생긴 미남배우가 아닌 우스꽝스러운 허당 - 그나마 이승기처럼 귀여운 이미지조차 아닌 이정진을 그를 위해 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이정진의 이미지가 소모되면 프로그램에 있어 좋은 점이 무엇일 것이고. 멤버를 바꾸지 않을 거라면 이정진은 남자의 자격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그냥 비덩만이 아니었다. 자격증편에서, 그리고 지리산편에서, 다시 먼지덮인 밥 편에서, 제작진은 이정진에게 세심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덧씌워주었다. 실제의 모습이든 연출에 의한 것이든 웃기지 않는 것을 단점으로 삼아 웃음을 유도하기보다, 웃기지 않더라도 이렇게 잘생기고 좋은 사람이라...
웃음이 급한, 더구나 시청율마저 그리 높지 못한 상황에 그것은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다른 프로그램에서였다면 웃음포인트를 찾은 이상 그것을 계속해 밀어붙이려 했을 테지. 그러나 남자의 자격에서는 쉬운 웃음보다는 그러나 출연자를 살림으로써 프로그램을 살리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오히려 이정진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마저 그의 훈훈한 모습에 매료되어 남자의 자격을 보도록 만들고 있다.
이정진 뿐일까?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 김태원, 이윤석, 윤형빈, 모두 부정적인 부분이란 있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은 그것을 이용해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웃음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출연자를 살리고 띄움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프로그램과 출연자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멀리 돌아가지만, 그러나 일단 한 번 먹히고 나면 느리더라도 그 효과는 확실했을 터였다. 남자의 자격 제작진은 그것을 하고 있었다.
새삼 감탄하는 부분이다. 그냥 남자의 자격이 아니구나. 스스로 남자의 자격이 이렇게까지 대박을 치리라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던 터라 지금이 마냥 새롭고 신기하다. 결국 제작진의 멀리 보는 전략과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당장의 웃음보다는 프로그램에 대한 친근함과 익숙함으로.
리얼버라이어티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1세대 리얼버라이어티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가 이런 식으로 구현되는구나. 내가 생각하는 리얼버라이어티를 그대로 오려낸 듯한. 이정진은 이정진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본질에 대해서. 그것이 리얼버라이어티의 본질이라. 정말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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