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과 토크 - 프롤로그...

까칠부 2010. 5. 1. 21:28

예전 스타워즈를 보고 있으면 시작하고 한참을 텍스트가 스크롤되며 무어라무어라 떠들곤 했었다. 이른바 프롤로그라는 것이다.

 

"과거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지금 이러이러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프롤로그를 통해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전해받고 영화의 내용에 비로소 동의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원래 이 영화가 이러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지금 저런 장면이 나오고 있구나...

 

어차피 모든 대중문화의 창작물이란 구라다. 아무리 넌픽션이네 뭐네 해도 결국은 창작자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 단지 어떤 사실에 근거했을 뿐인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적벽대전이 있었고 관도대전이 있었어도 그러나 삼국지에 묘사된 적벽대전과 관도대전은 그저 소설적 상상의 결과물에 불과하듯.

 

그러면 어떻게 그같은 거짓말들은 마치 실제 있었던 사실처럼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게 되는가. 어떻게 사람들은 그같은 거짓말에 대해 마치 실재하는 사실마냥 울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며 공감하는가.

 

바로 동의다. 자발적 동의. 그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 최소한 그것을 접하는 순간 만큼은 믿어 버리는 것. 가끔 심각한 경우 작품으로부터 벗어나고서도 여전히 그같은 동의상태가 - 싱크로가 이어지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대충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코스프레하거나, 소설속의 주인공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떠나거나 하는 것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실재하는 사실마냥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거야 말로 리얼이다."

 

남자의 자격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마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이건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물론 남자의 자격도 버라이어티다.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다. 버라이어티와 다큐멘터리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장르다. 버라이어티와 리얼리티도 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래서 나오는 말이 있다. 진정성. 남자의 자격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에서도 역시 출연자들은 진심으로 프로그램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문득 예능도 결방하고 해서 남자의 자격을 다시 돌려보며 깨닫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남자의 자격의 힘이로구나. 남자의 자격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토크에 대해서였다.

 

사실 이것은 남자의 자격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평균나이 40.6세. 이경규는 50대이고, 김국진과 김태원도 40대에서 꺾였다. 어린 축에 든다는 이윤석과 김성민도 40대를 바라보고 있고, 막내인 이정진과 윤형빈도 서른이 넘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고,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 다른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다르다. 그 나이대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그 나이대에서도 공감하기 힘든 강한 개성이거나,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이 바로 그곳에는 있다.

 

하나의 주제가 던져진다. 그러면 멤버들은 맏형 이경규를 중심으로 열심히 자기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만의 어떤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그들만의 경험과 그들만의 생각과 그들만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 그러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 누군가 던지면 또 누군가는 받고, 누군가는 방향을 잡고, 누군가는 그것을 키우며, 누군가는 그것을 정리한다. 동의하거나 반발하거나 혹은 웃음으로 마무리하거나.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들만의 어떤 특별한 이야기는 우리네의 지극히 보편적인 일반적인 이야기로 바뀐다.

 

"아, 맞아! 그랬어!"

 

그렇게 어느샌가 그들의 이야기는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되고, 그로부터 남자의 자격은 멤버들만의 -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TV화면을 사이에 두고 나까지 함께 동참하는 공감이 되고 체험이 된다. 마라톤을 하고, 전투기를 타고, 금연을 하고, 밴드를 하고, 아이돌 춤을 따라하고, 웨이크보드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하는 모든 것들이 TV화면을 넘어 그들과 내가 함께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앞서 말한 동의다.

 

물론 버라이어티다. TV프로그램이다. 어느 정도는 연출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의도적인 꾸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리얼리티라고 그것이 곧 리얼이지는 않은 것이다. 분명 그들과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사는 일상이 다르고 사는 시간이 다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가족처럼 느낀다. 그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놀라고 감탄하며 즐긴다. 동의라는 거다. 바로 저들인 이 앞에 있다. 내 바로 앞에 있다. 나와 함께.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과 일상 속에. 저들은 나와 같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바로 토크라는 거다. 그냥 토크가 아니다. 웃기기 위한 꾸며진 멘트따위 진심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이야기들에 공감할 사람이란 그리 없다. 시간이 가르쳐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엇이 진심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그런 진심이 있다. 때로 어눌하고 때로 서툴고 때로 우스꽝스럽지만 그 안에는 바로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 아마 그것을 두고 진정성이라 하는 것일 게다.

 

보면서 다시 감탄한다. 이것이 경륜이구나. 이것이 지혜구나. 이것이 삶이구나. 이것이 성장한다는 것이구나.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아왔구나. 특별한 사람들의 보통의 이야기...

 

물론 체험이 없는 말이란 공허하다. 토크가 있고 바로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이 있기에 토크는 더욱 진정성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있기에 체험 역시 그들만의 우스꽝스러운 예능이 아닌 어떤 보편의 일반적인 일상이 되어 다가온다. 바로 그것이 남자의 자격이라.

 

새삼 감탄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실제 연출하고 있는 작가와 PD와, 그러한 구상을 이렇게까지 살려낼 수 있는 출연자들에 대해서. 아마 역량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들의 삶과 경험과 그리고 그 삶과 경험이 가르쳐 준 지혜에 대해서까지. 아직은 미숙하고 불안한 모습들에 대해서까지도 모두.

 

아무튼 드디어 긴 결방 끝에 남자의 자격이 다시 시작된다. 긴 기다림이었다. 도대체 얼마의 기다림이던가. 바로 다음주면 볼 수 있으리라던 것들을 벌써 한 달을 넘겨서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더구나 그리 기다려마지 않던 밴드편은 아예 대회 자체가 미뤄지고 있다. 금단증상에 머리마저 이상해질 것 같다.

 

그러나 새삼 다시금 살피며 깨달은 것들이 남자의 자격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확실히 이래서 남자의 자격이다. 내게 있어 최고는 항상 남자의 자격이다. 그 시간들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