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많다. 과연 이경규가 몰래카메라에 속았는가?
물론 모른다. 속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눈치챘는데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고...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훈수를 둘 때는 뻔히 보이는 수지만 정작 바둑두는 사람은 그 수를 못 본다. 손에 든 찐빵을 한 시간을 찾을 수 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그게 참 우습다.
당시 상황도 그렇다. 남자의 자격은 몰래카메라가 아니다. 지금까지 몰래카메라 비슷한 미션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미리 주의해서 보지 않는다면 그같은 사소한 부분들이야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추리소설에서야 아주 작은 조짐으로도 사건을 완벽히 재현해내고 그러지.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런가? 사람의 머리는 그렇게 분주하지 않다. 대개 띄엄띄엄 상황을 인식하며 단기기억에서도 그 대부분이 걸러진다. 아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 이상 인지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몰래카메라 한창 할 때야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으니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지. 그러나 남자의 자격도 그럴까?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든다. 더구나 보아하니 남자의 자격 멤버들 사이에는 그동안 쌓인 신뢰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김국진도 마치 가족같다 말하고, 이경규도 멤버들을 대하는 것이 친형제같고. 과연 그같은 신뢰가 없이 혼자 숨겨두고 냄새만 맡던 빵을 미션이 끝나자 바로 멤버들에게 쪼개어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듯 숭고하기까지 한 - 그러나 무척 흐뭇하게 웃었던 장면이었다.
이정진의 천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혼자서만 커피 한 모금 마신 것으로 미안해 하고, 그런 사이라면 아마 다른 멤버들이 몰래카메라로 속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런 전제 자체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같은 조짐들이란 과연 그렇게 눈에 들어올 것인가.
소설을 보더라도 항상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자기가 보기에는 뻔히 보이는 음모인데 정작 주인공은 왜 그리 쉽게 넘어가는가? 그러라고 있는 음모니까. 전지적 작가시점과 1인칭 시점은 다른 거다. 화면으로 보인다고 과연 당사자도 보았을까. 너무 가는 것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경규가 완전히 당했다는 증거로 몰래카메라임이 밝혀졌을 때 이경규가 보인 표정을 들려 한다. 만일 그것이 이경규가 의도적으로 당해준 것이었다면 그 장면에서 이경규는 무척 오버해 액션을 취했을 것이다. 그는 천생이 예능인이니까.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당해준 것이라면 이경규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더욱 오버해서 놀라고 당황하고 화내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몰래카메라임을 알았을 때 보인 표정은 허탈함이었다. 전혀 조금도 의짐하지 않았을 때 - 그러나 돌이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떠오르는 표정이. 그는 진심으로 허탈해 하고 허무해하고 있었다. 공복이 갑작스레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몰래카메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타고난 예능인이다. 아니 이경규란 자체가 예능이다. 그가 예능을 하지 않았다는 자체가 증거가 된다. 예능을 할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이. 예능이 예능을 하지 않는 상황이란 어떤 상황일까.
너무 멀리 가도 보기 안 좋다. 하여튼 가만 보면 내가 그리 생각 많이 하며 예능 보는 편은 아니라는 거다. 뭔놈의 생각들이 이리 많은지. 그냥 이런 건 아무렇게든 속아 넘어가주어도 좋지 않을까. 설사 이것이 이경규의 고도의 기믹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재미있게 보고 재미있는 반응들에 또 재미있어 한다. 이래서 이경규라. 전설이 무너지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경규가 몰래카메라에 그리 허무하게 당했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래서 이경규구나 하면서...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이번 남자의 자격 1주년 특집은 이경규 특집이었다.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의 프로그램이기에. 이경규야 말로 남자의 자격의 중심이다. 그를 위한 한 바탕 짖궂은 생일빵이라 여기고. 심각해질 것 없이 순수하게 짓궂은 장난에 당황스러워하는 이경규를 보고 웃어주면 되겠다. 천생이 예능인에 대한 예우로서. 충분히 재미있지 않았던가.
한 마디로 최고의 1주년 생일파티였다. 주인공 이경규에, 모두가 동참한. 시청자까지도. 지금도 남은 웃음이 슬금슬금 새어 나온다. 바로 이것이 예능이구나. 이경규의 예능이구나.
그런데 이렇게 써 놓으니 마치 이경규를 속여먹은 나머지 여섯이 세상에 둘도 없는 패륜들로 보인다. 어찌 이런 좋은 형을... 그러나 예능이니까. 그리고 이경규니까.
너무들 생각이 많다. 아깝지 않은가? 이 좋은 웃음이? 웃자. 하. 하. 하. 웃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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