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말로 이런 게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성공하는 것이다.
그 다음 좋은 것은 실패하는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성공하면 좋은 것이다. 다른 말이 필요한가? 그런데 성공할 수 없다면 어쩌란 것일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면 도대체 어찌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차라리 실패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차라리 실패하라. 실패로부터는 아무거라도 배우는 것은 있을 테니.
그렇지 않은가? 문제를 풀어 틀렸다면 최소한 그 답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게 된다. 무언가를 했을 때 실패했다면 최소한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한 가지 사실은 알게 된다. 다음에는 그 답만, 그 방식만 피해서 하면 성공의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실패로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끝내 고인 물처럼 썩어갈 뿐이다. 고여 썩기보다 차라리 실패하여 좌절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이 경우에도 좌절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고여 썩기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말이야 쉽지 실제 현실에서 그러기가 과연 쉬운가.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가만히 있으면 실패는 않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성공은 못하더라도 실패는 않으니까. 성공이야 못하더라도 실패는 않을 수 있으니까.
두려운 것이다. 실패가. 그보다는 실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그보다는 나락으로 떨어짐으로써 주위사람들에게서 쏟아질 비웃음과 경멸이.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로부터의 고립이.
결국은 뭐냐면 불신이다. 주위에 대한 불신이며 자기에 대한 불신이다.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자기에 대한 비하와 그러고 나면 모두가 떠나가 버릴 것이라는 주위에 대한 의심과.
그래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이다. 언젠가 말했을 것이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무언가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언제든 누구로부터든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바로 그 긍정과 낙관이 용기라고 하는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도 자신을 외면하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한 사람은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이 한 가지는 내 곁에 남아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때 사람은 용기라는 것을 갖게 된다.
사람이란 참 나약한 동물이다. 겁많고 의심많고 그런 주제에 항상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그래서 항상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주위에서 자신에 대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피고 잰다. 그건 나이가 따로없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행위이며, 노인이 죽는 그 순간에도 귀를 열어두고 있는 이유다.
어떤 때라도 나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어떤 때라도 그는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다. 그같은 믿음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된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되어 용기가 되어준다. 무엇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 설사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야단을 쳐도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주눅드는 법이 없다. 화를 내도 그 앞에서는 조심하다가도 뒤에 돌아서면 바로 쾌활하게 바뀐다. 싸우고 나서도 먼저 웃으며 화해를 청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기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크나큰 실패를 겪고서도 여전히 웃으며 낙천적인 앞날을 꿈꿀 수 있다.
"다 잘 될 거야!"
진심으로 저 말을 내뱉기가 과연 쉬운가. 그러나 말에는 힘이 있어서 저 한 마디를 진심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진다.
김국진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어머니를 지키겠다 약속했다던가.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 울지 않겠다, 약해지지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 "남자, 그리고 눈물"편에서도 김국진은 끝까지 울음을 참고 있었다.
사랑을 받았는가는 모르겠다. 그러나 김국진이 얼마나 어머니를 의지하고 있는가는 알겠다. 남자가 누군가에 의지하는 방법은 그 사람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다. 아니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최악의 슬럼프에서도 김국진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사랑하고 있구나. 참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구나. 아마 그만큼 사랑받고 자랐겠지. 김국진이 저리 의젓한 남자로 자라난 것은 어머니의 힘이 컸을 것이다. 사업의 실패와 결혼의 실패와 방송으로부터 소외된 그 시간동안 그를 버티게 한 것은 바로 그 어머니를 지키겠다는 그 다짐 -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보았던 것이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안전바를. 남들은 쉽게 놓치고 지나치는 튼튼한 안전바의 존재를. 그래서 그렇게 두려워하며 오르기를 꺼려하는 롤러코스터에 당당히 오를 수 있었고 떨어지고 올라가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말했듯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사람과 그 한 걸음을 주저하는 사람과. 결국은 안전바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과 그 존재를 미처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믿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 그가 김국진인가. 클래스는 영원하다던가? 바로 클래스였다. 김국진이라고 하는. 어찌되었거나 그는 김국진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를 위한 자기증명이었다.
내용 자체도 훌륭했다. 김국진이 보통 경험을 한 사람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란 그 자체로 무척이나 진실했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절제된 감정과 정제된 어휘들. 굳이 어렵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보통의 평범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란 그래서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내가 감탄한 것은 그 사이사이를 찌르는 그의 죽지 않은 - 아니 시간과 더불어 한층 숙성된 듯한 놀라운 감각이었다. 단순히 웃기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감정과 감정 사이,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농익은 감성과 곰삭은 감정은 눈물마저도 웃음으로 머금도록 만들고 있었다. 감동마저 웃음으로 갈무리되고 있었다. 그는 천생이 예능인이었다. 아니 개그맨이었다. 사람들을 웃기도록 태어난.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무게잡고 주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들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단지 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이 겪어온 이야기들을.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지 모르는 작은 체험의 이야기들을. 무겁게 어떤 권위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웃으며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듯 그렇게 부담없이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함께 배워나가는 선배이기에. 자연인으로서.
힘든 시절도 있었다. 화려하던 나날도 있었지만 힘들고 비참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롤러코스터의 한 부분이었다. 올라가면 내려갈 것을 알고, 내려가면 올라갈 것을 알듯 그 모든 것은 한 가지였다. 하나였다. 여상한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연예인도 아닌, 스타도 아닌, 그저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뿐인 친절한 형의 모습으로.
이윤석의 강의도 물론 훌륭했다. 진지했고 열정이 있었으며 내용이 있었다. 충실하기도 했고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그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이... 이윤석은 왜 이윤석이고 김국진은 왜 김국진인가.
아쉽다. 이윤석이 강의를 못했는가. 그건 아니었다. 그것도 충분히 좋았다.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어 나온 김국진이 너무 셌다. 그 짧은 몇 십 분, 그러나 그 몇 십 분으로 인해 남자의 자격이 방송되는 그 시간은 온전히 김국진의 시간이 되었다. 마치 방송전파가 미치는 모든 곳이 김국진의 공간인 것처럼. 이래서 김국진이구나. 이경규가 이경규이고 김태원이 김태원인 것처럼 이래서 김국진이로구나.
진짜 보고 나서 김국진 한 사람만 남았다. 주름이 자글한 얼굴에 여전히 어린아이같은 천진한 미소를 머금은. 인생의 고난이 느껴지는 거친 얼굴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치와와같은 해맑은 눈빛이 어울리는. 그럼에도 사자후처럼 영혼을 후려치는 그 연륜의 울림이라는 것이.
"아이가 걷기 위해서는 2000번을 넘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2000번을 넘어졌다 일어난 사람들이에요. 앞으로도 여러분은 또 넘어지게 될 겁니다. 사람에 넘어지고 학업에 넘어지고 사랑에 넘어지고 일에 넘어지고. 롤러코스터의 특징이 뭐냐면 안전바가 있어요. 안전바가 확인이 안 되면 출발할 수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분에게는 이미 안전바가 채워져 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롤러코스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여러분들이 뛰고 날 수 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자신있고 만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롤러코스터를 타고 인생의 여행을 시작할텐데 정말 멋진 롤러코스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다른 말이 필요한가? 그는 김국진이었다. 왜 김국진인가? 바로 그가 김국진이니까.
아마 앞으로 한동안 롤러코스터를 보면 김국진이 떠오를 것이다. 롤러코스터의 안전바를 보면 그의 말이 떠오르고. 그가 들려준 인생의 이야기들이 다시 들려오리라.
내가 이래서 남자의 자격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긴 기다림의 보람이 있는 충만한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남자의 자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자격 - 과연 이것이 클래스다! (0) | 2010.05.09 |
---|---|
남자의 자격 - 롤러코스터라는 의미... (0) | 2010.05.03 |
남자의 자격과 토크 - 프롤로그... (0) | 2010.05.01 |
남자의 자격 - 문득 떠올려 보는 아이디어, 죽음에 대해서... (0) | 2010.04.26 |
비덩 이정진... (0) | 2010.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