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음악의 힘...

까칠부 2010. 5. 11. 20:19

며칠전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부활의 이번 노래... 뭐지?"

"어떤?"

"뭐뭐 하고, 뭐뭐 하고 하는..."

"아아, 사랑이란 건?"

"사랑하는 건인가?"

"응"

"오늘 길가다 문득 그 노래가 들리는데 울컥 눈물이 흐르더라."

"음?"

"드디어 나도 부활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나이도 어리지 않은 녀석이.

 

원래 그 녀석은 부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능에 출연하는 김태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호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부활의 음악을 듣거나 하지는 않았다.

 

녀석을 감탄케 만든 최초의 부활의 음악이 11집의 "사랑"

 

그때까지도 특히나 정동하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내가 처음 정동하를 보고 한 그대로,

 

"쟤 뭐야?"

"저게 노래야?"

 

그러나 사랑을 들으며 정동하는 물론 부활에 대한 인상마저 바뀌었다. 나와 참 음악적으로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녀석이다. 이런 음악도 만들 수 있구나. 이렇게도 부를 수 있구나. 끊임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라던가? 내가 그것을 유장함이라 정정해주었다.

 

그리고는 길가다 "사랑이란 건"을 듣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었다. 대화를 가만 보면 알겠지만 녀석은 노래 제목도 가사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냥 들은 그것이었다. 듣다 문득 가슴이 움직인 것이었다. 아니 그 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녀석도 요즘 꽤 힘든 일이 있었거든.

 

원래 음악이라는 게 그렇다. 가사를 들을 정도면 꽤 머리로 듣는 것이다. 가사가 어떻고, 멜로디가 어떻고, 연주가 어떻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왈칵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그랬고,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이 그랬다.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도 그랬었다. 참 많았다. 어느 순간 귀를 넘어 뇌를 관통하는 그런 느낌이란. 나는 그것을 공명이라 부른다.

 

파장이 맞았던 것이다. 원래 그건 그의 노래였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탈수로 지쳐 쓰러져 있던 사람이 한 모듬 달디단 물을 들이키는 것과도 같다. 원래 몸이 물을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주 작은 물에도 온몸은 기쁨으로 환희로 차 오르며 활력이 돌아오게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 원래 그가 바라던 음악이기에 그 순간 파장이 맞아 바로 반응이 오게 되는 것이다.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맞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것이 자기 음악이기에. 만든 것은 작곡가이고, 연주한 것은 연주자이고, 노래한 것은 가수여도, 그 순간 그 노래는 자기 노래가 된다. 참 드문 경우지만 참 행복한 경우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나면...

 

참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서러운게 최근도 비슷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것을 머리로 계량하려 든다. 멜로디가 어떻고, 사운드가 어떻고, 보컬이 어떻고... 아니 그 전에 아, 이게 이래서 감동이로구나 이해를 하려 한다. 그에 비하면 녀석은 나보다 한참 순수한 편이다. 그런 생각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보면. 나로서는 너무 먼 이야기다. 과거의 기억으로 울 수는 있어도 순수하게 음악에 공명해 울기란 너무 나이를 먹었다.

 

아무튼 참 부러운 경험이었다. 김태원도 말했지.

 

"설레임이 없다는 건 죽은 것이다."

 

나도 말했다.

 

"설레일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말 뿐 오래전부터 설레임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메말라버린 가슴은 음악마저도 머리로 계량하며 들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녀석은 지금도 "사랑이란 건"의 가사를 모른다. 아마 제목도 지금은 까먹었을 것이다. 정동하의 이름 하나는 기억해 두었겠지. 그랬었거든.

 

"전에 한 말이 맞았어. 정동하의 목소리에는 어떤 그리움... 아련함 같은 게 있어. 그런 경험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그런. 좋은 보컬이더라."

 

확실히 정동하는 좋은 보컬이다. 부활의 음악도 어디 가지는 않는다. 볼륨을 크게 하고, 아주 싸구려가 아닌 헤드폰으로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많은 것들이 들린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면 어쩌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음악이란 마음으로 만들고 마음으로 듣는 거니까. 소통인 것이다.

 

문득 떠오른 이야기였다. 그냥 지나치듯 나눈 이야기였는데 문득 생각났다.

 

과연 나는 지금 감동하고 있는가. 머리를 조금 쉬어둘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하긴 내가 언제부터 머리로 블로그질했다고? 그냥 가슴이 메마른 거다. 머리는 나쁘고.

 

머리를 잠시 쉬어볼까 한다. 보다 솔직하게. 순수로서. 설레임으로. 아직은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