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히 단골 중고매장을 찾았다가 아이언맨을 하나 주워왔다. 네 장에 만 원이라길래 세 장 채우고 한 장 고르다 만만해 보여서 고른 것이었는데...
이게 참 난감했다. 어차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어떤 대단한 시나리오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결국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란 인간의 말초적인 쾌락에 봉사하는 영화니까. 얼마나 말초적으로 흥분되고 쾌감을 느끼는가, 거기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건...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한 마디로 장르문법에 충실한 영화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클리셰 덩어리였다. 히어로물이란 이런 것이라. 아주 그린 듯 히어로물의 공식을 따라가는 영화였다. 오죽하면 시작하고 5분만에 이후의 스토리 전개를 모두 예상해 버렸다. 별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딱 그런 게 히어로물이니까.
그렇다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강점이자 그 존재의미인 시각적인 만족이 있었느냐? 그냥 만화였다. 아마 극장이 아닌 20인치 모니터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참 심심했다. 딱 특수효과구나 싶은 - 그래픽이구나 싶은 장면들이 어색하게 이어질 뿐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눈으로도 시원하지 않아... 귀로도 후련하지 않아... 머리로도 생각하는 게 없어... 그야말로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전형적인 장르영화다. 그나마 메이저자본으로 만들어 배우의 연기며 세트며 효과들이 그럴싸하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달까? 차라리 대놓고 B급영화로 만들었다면 장르영화로서 즐겁게 보아줄 수... 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수입도 되지 않았겠지.
참 뻔뻔하다. 아마도 아프간의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이라든가, 여전히 세계를 지키는 정의의 히어로 미국의 프로파간다라든가... 그나마 건질만한 대사라면,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더니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말았구나."
다시 돌려보기 귀찮아서...
아마 이야말로 정답이 아닐까.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미국이 하는 일이란 세계 곳곳에서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아프간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라크도 그렇다. 중동의 불안한 정세란 미국이 뿌린 씨앗이다. 아프리카며 남미며 아시아며,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저지른 일들이 지금에 불거지며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정의는 사라지고 혼란은 깊어지고...
아무튼 또 보는 내내 떠올린 영화가 아마 90년대에 나왔던 로보캅. 아니구나. 80년대구나. 어쩐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다. 역시 히어로물의 정석과 같은 영화라. 물론 영화의 완성도라든가 만족도, 몰입감 등에서 로보캅에 전혀 상대도 되지 않는 영화이지만 말이다.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는 또 슈퍼맨을 떠올렸었는데, 슈퍼맨에서 하늘을 나는 어떤 감동과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역시나 이 영화는 그냥 장르영화구나. 메이저 자본으로 만든 철저한 B급장르영화로구나.
다만 장르문법에 충실하기에 장르적인 기대만큼은 충실히 충족시켰겠다. 또한 히어로물 자체가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한 네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기에 상당히 쉽게 대중들에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흥행성적도 좋았지 않았나 싶은데... 하긴 그러니까 신작 시리즈도 나왔겠지만 말이다.
비평할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란... 아니 그보다는 비평할만한 의미가 없는 영화란...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사치스럽고, 아닌 사람에게는 조금 유치할 테고... 딱 2500원 가치는 되었다 하겠다. 그럭저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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