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에도 쓴 것 같은데, 웃음에는 일상의 웃음이 있고 비일상의 웃음이 있다.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일상의 파괴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일상의 파괴로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비일상인 채로 남는가. 한 마디로 또라이다. 기괴하고 짓궂고 독하고 이상하고...
반면 일상의 웃음이란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아니 그 자체가 일상의 연장이다. 일상에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 일상으로부터 연상되는 어떤 것이 바로 일상의 웃음이다. 예를 들어 작은 새끼고양이의 재롱을 보며 웃는 웃음이 그런 것이다. 누구나 새끼고양이가 그런 재롱을 부릴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몇 번이고 본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느새 흐뭇한 웃음을 짓는 것... 친숙함이며 정겨움이며 반가움이다.
어제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구하라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란 한 가지로 수렴된다.
"귀엽다."
우스운데 귀엽다. 웃기는데 귀엽다. 망가지는데 귀엽다. 무슨 뜻일까?
귀엽다는 말은 한 마디로 친숙함의 표현이다. 가깝게 느껴진다. 더욱 가깝게 여겨진다. 왜?
해피투게더에서 보인 구하라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답은 나온다. 이효리가 아무로 나미에보다 예쁘다고 하자 바로 일어나 90도로 인사한다. 상당히 비일상적인 모습이지만 그러나 이효리가 구하라보다 선배이고 보면 그것은 또한 일상의 연장이 된다. 일상인데도 과장된 것이 우습고 귀엽다.
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그렇다. 연예인이라기보다 그런 때는 꼭 그 또래의 아가씨 같다. 비라는 대스타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구하라에게서 연예인의 냄새를 지우고 또래의 평범한 아가씨로 있게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친숙함이며 아이러니로서 웃음으로 다가온다.
"밥 김치" 랩이 빵 터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기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구하라가 웃기려 애쓰는 작위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밥 김치"는 별 재미없는 오버액션 정도로 여겨지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까지 구하라는 자신에게서 연예인의 모습을 지웠다. 그 대신 또래 아가씨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그런 때 한창 잘들 맞춰가고 있는데 혼자서 음정도 못 맞추고 "밥 김치"로 오버하는 모습은 그래서 귀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능인이 아닌 단지 예쁘장한 또래 아가씨의 서툰 오버에 불과할 테니까. 실제 그 장면에서도 구하라는 그닥 능숙하지 못해 서툰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같은 일상의 친숙함을 강화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구하라에게서 기대하는 이른바 "애교"라는 것일 게다. 애교란 기괴한 것이 아니다.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 약간의 반전을 주는 것이다. 일상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것이다. 그로써 작게 긴장케 하고, 작게 이완케하며, 작게 친근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오빠의 웃음이 되기도 하고, 누이의 웃음이 되기도 하고, 아빠의 웃음이나, 엄마의 웃음이나, 삼촌의 웃음이나, 이모의 웃음이나... 가족처럼. 사람의 경계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원래는 웃기는 연기를 잘해서 코미디언이었다. 웃기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개그맨이었다. 사람이 웃겨서 예능인이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언가? 어쩐지 친근해서. 어쩐지 아는 누군가와 같아서. 어쩐지 가족과 같아서. 나와 다르지 않은 그런 익숙함이. 친숙함이. 그래서 자연스레 지어지는 웃음과 같은 것들...
웃음이 나니 사람이 좋아지고, 사람이 좋아지니 또 웃음이 나고... 억지로 쥐어짜듯 웃기는 웃음이란 유효기간이 있다. 시효가 있다. 그러나 그런 웃음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 한 시효가 없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내가 구하라의 예능출연에 대해 이미지소모를 걱정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구하라의 예능감은 그런 예능감이다.
아무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제는 예능에서도 여유를 찾은 듯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적절한 표정과 리액션이라는 것이. 자기 분량이 아니어도 구하라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표정들로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구하라는 그것이 되었다.
구하라의 장래에 대해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예능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에도 연기자 개인의 매력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가. 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그같은 애교스러움이 더욱 맛을 더하는 것이다. 물론 일단 연기를 시작하고 봐야겠지만.
재미있었다. 물론 나는 구하라 때문에 봤다. 비나 이준은 남자는 내 수비범위가 아니었고, 이효리는 핑클 시절부터 내 관심 밖이었다. 해피투게더는 딱 게스트 보고서 관심이 있을 때만 본다. 어제가 그랬다. 당연히 구하라 편향이고 구하라에 대해서만 쓴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그만한 힘이 구하라에게는 있었다. 비록 대선배들 앞이라 조심하고는 있었을지언정 내게는 느껴지는 어떤 그런 것들이.
역시나 느끼는 거지만 구하라의 장점은 그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들, 그리고 연예인답지 않은 순수함과 소탈함, 더불어 그런 것들을 반전으로 만들 수 있는 돋보이는 외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그림이 되고 가만히만 있어도 이야기가 된다. 그런 것을 두고 스타라 하는 것일 게다. 그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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