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을까? 김국진은 그렇다 치자. 김국진은 그야말로 평이했으니까. 준비가 부족하고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딱 인트로다. 도입부.
그러나 벌써 이윤석부터가 드라마다. 이윤석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는 어느 예능에선가 들은 적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상태가 심각했으리라곤... 4급인가 5급인가 하지만 그만한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하다못해 발목만 잠깐 접질린 것 가지고도 그리 불편한데.
일단 손목을 제대로 못 쓰는 핸디캡을 안은데다, 시험을 앞두고 실기시험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세 시간의 제한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극단적인 저질체력의 약점마저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시험에 합격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또 보면 처음의 그 자체로 슬랩스틱이던 서툴던 몸짓이 어느샌가 능숙한 도배사의 모습으로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합격할 수 있겠다..."
방송이라고 남자의 자격 하나인데, 남자의 자격을 위해 도배학원이며 드럼학원이며 대학일이며 오히려 방송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소속사에 미안해 하는 모습은 역시나 소심하고 성실한 이윤석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소심한 만큼 누구보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남자의 자격 멤버 가운데 처음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확실히 시험보는 당일까지도 능숙하게 손을 놀리는 이윤석을 보며 모두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돌발적인 사고였다. 도배를 위해 벽지를 자르던 도중 그만 벽지를 자르기 위한 칼의 날을 손으로 잡으면서 손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로써 이윤석의 도배사 도전은 다시 다음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마치 스포츠만화에서 전국대회에 진출하게 된 주인공이 갑작스런 사고 혹은 부상으로 대회출전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마냥 이윤석의 눈물은 그리 진하고 뜨겁고 아팠다. 정말로 그 수많은 시간의 노력들로 그 성취를 눈앞에 둔 사고였기에 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더구나 그럼에도 오히려 프로그램에 피해를 주고 멤버들에 폐를 끼칠까 걱정하는 모습은 역시 이윤석이라... 그는 참 사람이 좋다.
이윤석이 스포츠드라마를 찍었다면, 이윤석을 이은 이경규와 김성민은 그야말로 예능을 - 시트콤을 찍었다.
거 왜 있잖은가? 등장인물 둘이 시험을 치른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한 문제 차이로 합격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지고... 보아하니 김성민은 두 문제 차이로 붙은 것 같지만.
과연 문제가 하나 더 맞았는가 틀렸는가. 채점을 해 보니 처음에는 36개 합격점이더라. 그런데 문득 보니 하나를 잘못 헤아려 한 문제가 모자르더라. 그런 상황에 과연 어떤 답을 썼는가 모르는 문제가 하나 있어 마지막 한 가닥 기대를 걸게 만든다. 그것만 제대로 풀었다면 합격할 수 있다. 김성민은 합격하고 - 그것도 2문제 차이로 - 드디어 합격여부를 살피는데...
그리 날방의 이미지가 강하던 이경규였다. 열심히 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경규였다. 대본조차 읽지 않는다며 과연 문제를 외울 수 있을까. 더구나 나이마저 그리 작지 않다. 이경규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런 걸 외워야 하느냐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역시 시험 바로 직전까지 열심히 문제를 보고 있는 이경규가 있었다. 성실한 악동. 아마 그 한 문제가 그리 크게 다가온 것은 그같은 이경규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합격한 김성민이 있었고.
만일 이것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그리 했다면 참 PD는 멍청한 사람이다. 어느 시트콤에나, 어느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진부한 이야기들이다. 누군가 한 번은 써먹었을 것 같은, 어디선가 한 번은 보았을 것만 같은 그런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장면들이 전혀 계산하지 않고 나오고 있다는 것이 남자의 자격이 갖는 힘이라는 것이다.
성실하다. 진지하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 물론 허세도 부린다. 그러나 진심으로 다가가기에 어디서나 흔히 보게 되는 그런 장면들조차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연출이었다면 진부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건만, 그것이 실제이기에 생각지 못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과연 이경규가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 것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점수였는가. 아니면 이경규 자신의 의지였는가. 그게 가능하다면 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겠지. 한 문제 차이로 틀리기란 100점 맞기보다 더 힘들다. 일부러 손을 베기란 더 힘들다. 아니면 특수효과였거나.
내가 항상 하는 말. 리얼버라이어티의 끝은 시트콤이다. 리얼버라이어티란 드라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드라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고,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감동도 하면서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드라마.
남자의 자격에는 그런 것이 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들이 새삼 더 크게 다가오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 웃고 울고 화내고 짜증내고 기뻐하며 어느샌가 함께 하고 있다는 그런 것이. 서로를 두고 형이라 동생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의미는 의미대로 예능으로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시험을 망치는 김국진의 모습은 리얼했고, 시험을 포기하며 눈물짓는 이윤석의 모습은 극적이었으며, 단 세 문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린 김성민과 이경규는 아이러니였다. 다시 보아도 좋은. 역시 강의보다는 이런 게 남자의 자격답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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