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딱 두 번인가 강의라는 걸 해 보았다. 진짜 떨리더라. 그리고 김태원 말마따나 시작한지 15분 막? 아니, 아니다. 거의 10분도 지나지 않아 할 이야기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이어지지 않는 거다.
글이라는 것도 그렇다.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그나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주눅이 들어 그게 잘 생각나지 않는다. 횡설수설... 글로는 아는 것 10을 20, 30도 만들 수 있다면, 말로는 아는 것 10을 -100까지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남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야기거리가 그렇게 끊이지 않게 많거나, 아니면 남다른 넉살로 뻔뻔스레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거나... 확실히 경륜이라는 것이 여기서도 작용한다.
딱 그대로였다. 윤형빈의 이야기는 매우 직설적이었다. 딱 내가 아는 만큼, 내가 생각한 만큼만 전달한다는 느낌? 김성민과 이정진도 매우 평이한 강의였다. 물론 내용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역시 연예인이다 보니 그 수많은 관객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만큼은 확실히 대단했었다.
그러나 이윤석... 그는 천상 대학교수였다. 개그맨이기도 했지만 대학교수였다. 어떻게 자기가 아는 바를 사람들에 전할 것인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아쉽다면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같은 진지한 강의를 기대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어떤 예능을 기대하는 자리에서 그의 강의는 너무 교과서적이었다. 그러나 지성과 경륜이 조화를 이룬 훌륭한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국진과 김태원과 이경규... 김국진은 이미 지난주 이야기했으니 제끼겠다. 과연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이라 할 만했다. 왜 그가 김국진인가. 답은 그의 강연 하나로 이미 충분하다.
전부터도 느낀 거지만 김태원은 아티스트다. 아티스트란 에고덩어리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무심하다.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그러나 무심하다. 그러니까 아티스트를 한다. 남의 눈을 신경쓰고 남의 눈치를 보고 있으면 아티스트같은 건 하지 못한다. 내가 좋으니 좋다.
"CAST AWAY정신 하나로 다 된 것 아닌가?"
장황하지만 그의 말에는 핵심이 있었다. 그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설레어라. 설레임이 없는 건 죽은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얼마전 남자의 자격에 대해 쓴 글 가운데, "설레임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다."라는 글이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40이 넘은 나이에도 순수를 지키며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일 테지만. 매순간이 놀랍고 매순간이 감동이기에 그런 아름다운 음악도 나오는 것일 게다. 그것을 영화를 예로 들어 풀어간다는 자체가 그가 또한 영화마니아라는 뜻일 테고.
다만 한 가지 오류를 바로잡자면, 그 유명한 가수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다면, 그 유명한 가수가 19살 때는 CAST AWAY라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었다. 아마 그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그것을 나중에 CAST AWAY라는 영화와 끼워맞춘 것일 테지. 괜히 억삼이겠는가.
안 되면 만다. 할 이야기를 다 했으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의외로 상당히 쿨한 아저씨다. 냉정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이것도 나도 경험한 바다. 왜 질문을 던지는가. 말이 막히니까. 글을 쓰다가도 무언가 막힐 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면 자연스레 답이 나오며 글이 이어진다. 때로 그렇게 나온 글은 원래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나기도 하는데 그게 어쩌면 숨겨진 본심일 것이다. 글로 거짓말을 하기란 말로 거짓말을 하기 만큼이나 힘들다.
마지막으로 이경규... 왜 이경규인가. 김국진이 지난주 강의로서 왜 김국진인가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이경규가 왜 자기 이름이 이경규인가를 모두에게 알렸다.
항상 말한다. 그는 전설조차 될 수 없는 예능인이라고. 그의 말처럼 앞으로 30년을 더 하고,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은퇴를 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예능인일 것이라고. 은퇴를 하고서도 다시 모습을 감추었을 때도 그는 영원히 예능인으로 남을 것이다. 전설이란 그가 죽고 난 다음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강의조차 예능으로 만들었다. 지난주 이번주 나온 모든 강사 가운데 가장 예능에 충실한 강연이었다. 당연하다. 그는 예능인이니까. 그리고 그 자리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모인 자리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안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의 강의를 자신의 캐릭터인 버럭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인 로비로서 말문을 열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개그와 개그들... 한 시도 쉬지 않았다.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웃음은 이어지고 박장대소와 함께 어느샌가 그의 이야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눈물이 나도록 웃고 있는 가운데 가슴 한 구석에서 찡하니 맺히는 눈물이 있었다. 진정과 웃음... 이경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지 않던가.
"웃음에는 페이소스가 있어야 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예능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가. 어디까지가 캐릭터이며 어디까지가 그의 본모습인가. 그의 예능인생이 그 강의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실패와 좌절과 분노와 그러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낙천과 긍정까지...
어쩌면 그의 이야기는 김국진과도 통한다. 지금의 어려움이란 지나고 나면 추억이다. 지금의 힘든 고민이란 지나고 나면 한낱 지난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고, 참는 자가 살아남는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다면 인생이라는 등산에는, 혹은 마라톤에는 인내라는 것이 있다.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짊어 지고 있던 짐을 내려 놓았을 때 기쁘게 그 짐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낙천과 긍정이다.
좋은 웃음은 좋은 심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경규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른 사람이 결국에 성공도 한다. 그 성공은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아닐 것이다. 남들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물론 그것은 나머지 여섯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태원이나 이윤석이나 김성민이나 이정진이나 윤형빈이나, 모두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충실함을 담보한 것은 바로 그 낙천과 긍정이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의 지금을 믿고, 그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그들 일곱 남자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던가.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연륜의 차이가 느껴졌달까. 윤형빈은 거칠고, 이정진은 어색하고, 김성민은 평이했으며, 이윤석은 고지식했다. 불혹이라 했던가. 김국진과 김태원에게서 흔들림없는 자아를 보았다면 이경규에게서는 지천명, 스스로를 관조하는 조화를 보았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두고 지혜라고 하는 것일 게다.
젊음에 고하는 강연이었지만 그래서 내게도 돌아오는 바가 적지 않았다. 나는 아직 젊으므로. 아직 어리고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 있고. 발달한 의학기술은 더 많은 시간을 내게 허용할 것이므로. 벌써부터 안주하여 멈춰서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가. 나도 지금을 나아가고 있다.
남자의 자격 서른여섯번째 미션 "청춘에게 고함",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낙천이고 긍정이며 관조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함과 당당함.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일게다. 경륜일 것이고 지혜일 것이고 경험일 것이고 지식일 것이고. 자신에 대한 돌아봄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건 이 번 한 번 정도로 족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을 찾는 것은 강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닐 터이므로. 예능이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쌍방향적인 소통일 것이다. 그같은 본질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다음주 마침내 자격증 국가고시에 도전하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예능으로서의 남자의 자격을 다시 볼 수 있겠구나.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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