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격증 학원 같은 데 가 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주 힘든 건 무리고 가능한 것이면 희끗한 머리를 염색으로 감춘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간단한 내용에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묻고, 필기시험을 위해 문제를 풀고서는 이미 푼 문제인데도 또 반복해 틀리고 하신다. 당연한 노화의 결과라 때로는 옆에서 지켜보기에 민망한 경우마저 적지 않다. 나라면 창피해서라도 중간에 포기할 텐데도 그러나 그분들의 학구열은 그침이 없다. 오히려 더 뜨겁고 더 능동적이고 더 적극적이다.
설마 이제 와 자격증을 따서 무언가 대단한 걸 해 보려고? 벌써 일흔이 넘은 분들도 계시다. 자식들 다 장성하고 손주까지 다 자라고, 그런데도 굳이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스스로 내가며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을 따려 공부하는 이유는... 그게 좋으니까.
배우는 게 좋은 거다. 공부하는 게 좋은 거다. 나아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도전하는 게 좋은 거다. 말했듯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들이다. 아직도 힘들고 각박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은 오히려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인생을 즐겨보자...
공자도 말했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인간이 원숭이와 구분되는 부분이다. 원래 원숭이도 새끼 때는 털이 없다고 한다. 자라면서 털이 생기는데, 또 인간의 어린시절은 유인원과 크게 차이가 없다. 차이는 유인원이 다 자라고 털이 날 때, 인간은 여전히 새끼원숭이인 채로 계속 성장한다는 것이다. 새끼원숭이들이 - 아니 모든 짐승의 새끼들이 지나친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치고 다니듯 인간도 그래서 평생을 호기심으로 사고를 치며 살아간다. 새끼원숭이들이 배울 것을 다 배우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인간은 그래서 새끼원숭이인 채로 끊임없은 지적 욕구 속에 사는 것이다.
더구나 자격증이란 도전이다. 그냥 배우는 것이라면 책을 읽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 간단히 물어 배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자격증이란 - 국가공인자격증이란 국가가 주관하여 시험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걸러내는 것이다. 호기심의 마지막은 도전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가.
당연히 두렵다. 그리고 떨인다. 운전면허시험을 볼 때도 당연히 붙는다 주위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법 떨렸었다. 이론을 배우고, 다시 그것을 실습하고, 실습하고 다시 시험을 치르고, 합격여부를 기다리는 그 순간이야 말로 두려움이면서 또한 기대다.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마치 시험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하긴 나이가 들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정년퇴직도 하고 자식도 다 장성하고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신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지만 아직까지 나는 건재하다 주위에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납득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평생을 배우고 도전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남자고 여자고 없다. 다만 남자의 경우는 태생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이기고 지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얻고 또 잃고, 성취하고 도태되고, 수평적인 세계가 아닌 수직적인 세계 안에 길들여지는 것이 남자다. 자격증 또한 그래서 그들에게는 도전이며 승부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도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POP와 도배와 제빵사와 포크레인... 사실 보기에 그리 대수로울 것 같지 않은 POP임에도 그 대범하던 김국진마저 긴장해서 무척이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 시험은 쉽지 않아서 김국진은 떨어지고 있었다. 이윤석은 애써 준비한 것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작은 실수 하나로 중간에 포기하며 눈물을 떨구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던 이경규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공부하더니 시험문제 하나에 울고웃으며 안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일하게 합격한 김성민의 기뻐하는 순수한 모습도...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다 나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다. 평소 하지 않던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래서 그만큼 어렵고 부담되는 일이다. 하물며 방송장비 가득 가져다 그것을 찍고 있다면. 아무리 방송에 익숙한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대충 하고 넘길 수 있음에도 그럴 수 없다는 것... 방송 때문이 아니라 어느새 진지해지며 긴장하고 있더라는 것...
어쩌면 이야 말로 남자의 - 아니 인간의 어떤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건드리는 미션이 아닐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니 인간은 무엇으로 인해 사는가. 사랑이기도 하고, 믿음이기도 하고, 소망이기도 하고... 그러나 역시 도전이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에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산에 오르듯 마지막까지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도전하지 않는 - 호기심이 없는 인간이란 죽은 인간이라. 살아있기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단순히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아닌 무어라도 배워간다는 것. 스스로 배우고 그것을 평가하고 그것을 평가받고 그로부터 자기를 증명한다는 것. 그것에 인간의 보람이라는 것은 있지 않겠는가.
요즘 지켜보고 있는 모습들이 있어 더욱 다가오던 회차였다. 희끗한 머리를 염색으로 숨기고 눈을 반짝이며 좁은 강의실에서 한참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열중하는 그분들. 결코 쉽지 않은 -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험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그런 열정들.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그 분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열정들이, 그같은 긍정과 낙천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그리고 살아가고 있기에. 50줄이 되어 제빵사 시험에 일희일비하는 이경규처럼. 사실 그도 아직은 젊다.
한 번의 좌절을 겪은 김국진과 이윤석과 이경규와, 한 번에 아슬아슬하지만 성공한 김성민과, 이제 도전을 앞둔 김태원, 이정진, 윤형빈과, 말했듯 이경규조차 아직 젊다. 시험이라는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다. 그깟 자격증시험따위 또한 흘러가리라. 설렘을 가지고. 건투를 빈다. 모두가 합격하기를.
배움이란, 그리고 도전이란 이렇게도 설레는 것이라는 것이다. 설레고 긴장되고 그리고 감동이고. 배움이란 단지 쓸모를 위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전이란 목적을 가지고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배움 그 자체를 위해서, 도전 그 자체를 위해서. 일상이 항상 즐거울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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