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밴드란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까칠부 2010. 5. 23. 21:09

솔직히 초반 보기에 조금 민망했다. 김성민은 여전히 가사도 안 외우고 있고, 김국진이며 이정진이며 제대로 연습이 안 되어 있다. 과연 할 생각들은 있는가. 그저 프로그램이라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연습 중간 테이프를 가는 사이 김성민과 이윤석이 보여준 모습이란 그렇게 힘이 넘치고 활기찰 수 없었다. 스텝 가운데 기타의 속주가 들려오자 즉성에서 맞춰보는 김성민과 이윤석의 메탈이란...

 

물론 서툴다. 어색하다. 앞뒤도 없고 좌우도 없고 맥락도 없다. 이런 게 음악인가... 그러나 흥이 나지 않던가. 서툴더라도 마음껏 치고 두드리는 모습이, 어색하더라도 후련하게 질러대는 그 소리라는 게...

 

"이런 게 아마추어리즘..."

 

아니다. 바로 이런 게 밴드다. 60년대 차고에 모여 서툰 솜씨로 악기를 두드리던 동네꼬마녀석들처럼, 어딘가 모여 서툰 솜씨로 악기를 두드리며 어색한 소리를 즐기던 그 순수함처럼...

 

80년대 인디문화가 일어나면서 많은 밴드들이 60년대 개라지 사운드를 다시 찾아 나서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프로페셔널의 능숙함에 현혹되어 아마추어의 그 거친 순수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음악은 잘 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과연 잘 못한다고, 계속 실수한다고, 고개를 따에 묻고 주눅들어 눈치만 보는 음악이란 음악인가. 그렇게 잘한들 그것이 제대로 밴드라 할 수 있는가. 정작 밴드가 자기 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또 그것도 아니었다. 반전이 있었다. 바로 부활 콘서트의 무대에 서는 그 순간에.

 

그렇게 서툴고 어색하던 멤버들이었다. 그렇게 자신없어하며 주눅들어 있던 멤버들이었다. 그러나 무대에 선 순간 그들은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고 실수투성이였지만 관객과 호흡하는 사이 그들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물론 여전히 능숙하지는 않다. 서툴고 거칠다. 그러나 흥이 있다. 한결 자연스러워졌고 한결 신나졌다. 무엇보다 멤버들 자신이 즐기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런 게 음악이다. 이런 게 밴드다. 밴드음악을 듣게 되면서 항상 느끼던 것이다. 무대에서 직접 보는 밴드와 음반으로 듣는 밴드란 이렇게나 다른가. 밴드란 무대 위에서 관객과 호흡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악보에 따라 정확하게 연주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밴드는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밴드의 가치란 그래서 무대에 있다.

 

주눅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자신없어 늘어지던 연주에 생기가 돌고, 음악을 쫓아가기에 급급하던 멤버들이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표정도 좋아지고 당연히 음악도 좋아졌다. 심지어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던 김성민마저도 분위기에 취한 듯 자연스레 힘껏 불러제끼고 있었다. 얼핏 발라드로 들렸던 노래가 김성민이 방방 뛰고 멤버들이 호응하는 사이 흥겨운 락사운드가 되어 관객을 들썩이게 하고 있었다.

 

관객이 호응하니 밴드도 흥이 나고, 밴드가 흥이 나니 관객도 흥이 난다. 그렇게 무대를 통해 밴드도 하나가 되고, 관객도 밴드와 하나가 된다. 그저 밴드는 음악을 하고, 관객은 듣고... 그래서 라이브는 소극장에서 들어야 제맛이다. 너무 크면 아티스트의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의 표정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관객의 함성에 들뜬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연주에 도취된 것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나 모든 것을 무대 위에 쏟아부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기된 얼굴에 떠오른 것은 성취감과 자신감, 긍지였다. 자기와 밴드에 놀라고 감탄하고 그리고 감동하고 즐기는... 바로 밴드의 얼굴이었다. 비로소 밴드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과연 이런 것이 밴드로구나... 지난 2월 28일 방송분은 분명 할마에 김태원의 원맨쇼였다. 오로지 김태원의 김태원에 의한 김태원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오늘 남자의 자격 밴드는 멤버 모두의 것이었다. 처음 악기를 잡고 실패와 좌절과 굴욕 속에 어느새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밴드를 좋아하게 되는 그런 모습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야말로 리얼한 드라마라...

 

문제라면 이 이후 더 나올 이야기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성장하고 나면, 사실 이제 더 이상 김태원이 관여할 부분은 없다. 이제 스스로 자기의 파트에 대해, 전체의 조화에 대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 뿐이다. 그것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을 어찌 살리려는가.

 

가장 감탄한 것이 바로 이윤석. 스스로 음악마니아이고, 또 밴드를 꿈꾸었다더니, 드럼 사운드가 한 귀에도 달라진 것이 들린다. 손을 다치고도 테이프로 감아가며 스틱을 놓지 않은 열정이라는 것이... 과연 밴드를 하고 싶기는 한 것인가 싶었던 김국진과 김성민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밴드의 사운드에 있어 그 뼈대가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드럼이라는 점에서 이윤석에게 드럼을 맡긴 것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곡도 좋았다.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후렴만이 아닌 완곡을 들어보았는데, 멤버들의 실력에 맞춘 단순함이 간결함으로, 서툴고 거칠지만 원초적인 어떤 느낌을 준다. 발라드임에도 김성민이 금새 방방 뛰며 부를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듯. 제대로 연주한 버전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아닌 남자의 자격 밴드에 의해. 그들을 위한 음악이므로. 음악까지 제대로 마무리가 훌륭했다.

 

다만 아쉽다면  HD라는데 나는 정작 DMB로 보고 있어야 했다는 것. 컴퓨터 메인보드가 나간 터라. 내일은 메인보드부터 사러 나가야 한다. 경규옹 그리 HD라고 공들여 준비도 했다더만... 아쉽다.

 

기다린 보람이 있던 회차였다. 단순히 김태원이라고 하는 스타플레이어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하기보다는 멤버들의 - 밴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 더욱. 만족스러웠던. 좋았다.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