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시험이라는 설렘과 두려움...

까칠부 2010. 5. 17. 22:14

예전 메종이코쿠라는 만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있었다. 메종이코쿠의 관리인 쿄코를 짝사랑하는 재수생 고다이가 어느날 시험을 치르러 가는데, 같은 집에 사는 요츠야가 그것을 놀려 괴롭힌다.

 

"미끄러진다!"

 

실제 복도에서 미끄러진다.

 

"떨어진다!"

 

실제 계단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당연히 고다이는 그날의 시험에서 다시 한 번 미끄러져 떨어지게 된다. 분노하는 고다이...

 

아마 요즘은 란마 - 아니 이누야사로 더 유명하겠지만 다카하시 루미코라면 역시 우르세이 야츠라와 이 메종이코쿠다. 어려서 황재가 무단리메이크한 "계절풍"을 보며 어찌나 설레었던지.

 

어제도 말했지만 만일 어제 남자의 자격에서 연출가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면 그는 멍청이 아니면 미친 놈이다. 시험을 보는데 물감이 떨어져 깨지고, 밥을 먹으려는데 미역국이 나와 엎어지고... 요즘은 개그만화에서도 그런 뻔한 복선은 쓰지 않는다.

 

참 사람 심리가 그런 게 있는 거다. 아무나 치르면 붙는다는 운전면허시험. 그리 떨리고 긴장되었었다. 심지어 필기마저 그리 쉽게 치러지지 않았었다. 떨어지면 어쩌나...

 

그런 때는 하여튼 아무거든 시험에 관계되어 조짐으로 여겨진다. 무언가 떨어지거나, 무언가 깨지거나, 꿈자리가 어떻다거나, 신발끈이 풀리거나... 물론 붙고 나면야 별 상관이 없겠지만 떨어지면 빌미가 된다.

 

"그게 그래서 그런 거야!"

 

시험이라는 게 결국 남에게 자기의 실력을 내보이는 것이다. 내보이고 인정받는 것이다. 혼자 하는 것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그러나 그것을 남들에 인정받자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아마 가수가 음반을 내고 영화감독이 영화를 개봉하는 것도 같을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 혼자서 쓰고 놀 때는 상관없다. 나 혼자 구상하고 곡을 쓰고 부르고 시나리오를 쓰고 편집하는 동안에는 상관없다. 그러나 대중 앞에 그것이 노출되는 순간 그 평가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음악이며 영화며 결국 상업적인 성공과 무관할 수 없다. 그만큼 더 설레이고 두근거리며 불안하다.

 

설레는 것은 그 뒤에 있을 달콤한 보상 때문이다. 리플이라든가, 추천이라든가, 내가 아무리 까칠한 척 해도 애써 쓴 글이 좋다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다. 음악인이라면 무대에서, 영화인이라면 극장에서, 각각 자신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페이를 통해서도. 그러나 실패하면 그 모든 것은 무위로 - 심지어 패가망신할 수도 있기에.

 

더구나 고독한 거다. 시험이란. 누가 대신하는가. 김태원은 말한다.

 

"쟤(국진이) 합격하든 말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그는 기다리기 지루하다고 윤형빈을 꼬드겨 2만원빵 당구를 치러 가고 있었다.

 

시험을 보는 앞까지는 누군가 같이 가 줄 수 있다. 시험을 보고 나서는 함께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시험을 보는 순간 그는 혼자다. 오로지 혼자서 그 모든 부담과 마주해야 한다. 오로지 자기로 인해 성공하고 실패하고, 오로지 자기로 인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좌절하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이윤석의 눈물은 그런 의미다. 열심히 했다. 모두가 인정할 만큼 이윤석은 무척이나 열심히 했다. 일주일 스케줄이 남자의 자격 말고 드럼학원과 도배학원과 대학 강의... 세 시간 시험시간을 버틸 체력도 없이, 손목은 사고로 불편한 상태로 누구나 한 눈에 알 만큼 그는 최선을 다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돌발사고였다. 누가 뭐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불의의 사고였다. 그러나 이윤석은 눈물을 흘렸다. 자기 탓이라며. 자기로 인해 모두에게 피해를 끼쳤다며.

 

그 고독이. 그 외로움이. 그러나 그럼에도 이겨내야 한다는 당위가. 차라리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시작한 이상에는 이겨내야 한다는 그 당연함이. 부담이 되고 압박이 되고 덜덜 손이 떨리게 된다.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고 그러면서 후회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그것이 두려워 불안해 하고...

 

그런 때 시험장까지라도 함께 해주는 누군가란 얼마나 고마운가.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자신을 맞아주는 누군가란 얼마나 반가운다.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누군가란. 그래서 보면 시험을 보고 합격여부를 확인할 때는 항상 누군가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리고 설레여서.

 

남자의 자격은 그런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며 긴장하고 있는 김국진과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냉정하기만 한 김태원의 모습과... 이윤석이 시험을 치르는데는 김성민과 윤형빈이 나와 사고를 친다. 설마 대본일까? 이런 섣부른 연출을 할 것이면 PD는 바보다. 그러나 그조차 계산을 한 것이면 PD는 미친 것이다. 엿과 미역.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미역국. 마치 어떤 미장센처럼.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시험에 실패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윤석.

 

그러고 보면 남자의 격려법이라는 것이 그렇다. 대놓고 걱정해주고 격려해주고 그런 것 없다. 오히려 놀리고 괴롭힌다. 떨어져라 망쳐라 악담을 한다. 그러나 긴당을 풀어주고자 하는 배려다.

 

잘 보라 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부담을 갖기 쉽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별 것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김장을 풀어주는 것이다. 장난스런 선물이나 애교스런 장난이나 무뚝뚝한 한 마디나, 오히려 드러나지 않기에 진심이라는 남자만의 대화법인 것이다. 굳이 시험장까지 따라가고, 시험보는 동안 당구를 치고는 또 시간 맞춰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김국진을 기다리는 바로 그런 것들이. 끝내 시험에 불합격한 이경규에 대해 짓궂게 놀리며 어색함을 풀어주는 이번에는 김국진의 모습과 같은 것들이.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하고, 시험을 치르고서는 너무 못 봤다 불안해 하고, 시험지를 가채점하며 일희일비하며 때로 자기의 정답에 대한 확신으로 출제자를 비난하며, 그리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여지를 남겨둔다. 이 얼마나 일상스런 모습인가. 남들 다 합격한다는 시험에서도 일단 합격하고 나면 여기저기 다니며 내가 몇 점을 맞았고 어떻게 합격했는가를 떠들고 싶어하는 것이 그런 일상의 모습일 것이다.

 

왜 남자의 자격인가. 아니 왜 리얼버라이어티인가. 모든 것이 출연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서? 모든 것이 어떤 각본이나 연출 없이 출연자의 재량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아니다. 그 안에 우리네 - 시청자 일반의 리얼한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사소한 조짐들에 예민해하고, 지나고 나서는 괜히 그것을 한 번 더 곱씹고, 결과에 안타까워하고, 결과에 불만스러워하며, 때로는 짓궂고, 때로는 세심하며, 때로는 무심하게, 그리고 천진하게...

 

남자의 자격에는 그런 모든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시험을 치르며, 시험을 치르고 나서의 그런 일상의 모습들이 모두 담겨 드러나 있었다. 나도 저랬겠거니.

 

그러고 보면 나도 시험을 하나 앞두고 있다. 앞날을 위해 자격증을 따 두려고. 아마 나 또한 저럴 것이다. 시험에 불안해하고, 시험을 두려워하며, 시험에 안달하고, 시험에 괴로워하다가, 때로는 불만도 품고, 때로는 의문도 자기며, 아마 합격하고 나서는 마음껏 자랑하리라. 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서.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확실히 간만의 예능이다. 지난주까지의 강연은 예능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강연이었다. 지지난주 도입부에서 이경규의 짧은 기자회견이 있은 이래, 그리고 그 전의 몇 주에 걸친 결방에... 간만에 제대로 된 예능을 보았다. 버라이어티를 보았다. 그래서 반갑고 생각도 많다. 그래서 반갑고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또한 나의 이야기이기에. 나의 일상이기에.

 

하여튼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웃긴다. 시험을 앞두고 물감병이 떨어져 깨지고,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이 메뉴로 나오더니만 그것이 식탁 위로 떨어지고, 그리고 나란히 시험에 떨어진 김국진과 이윤석...

 

여느 드라마나 콩트였다면 뭐 이리 뻔하냐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꾸밈없는 진심임을 알기에 이렇게 공교로울수가. PD가 바보이거나 미치지는 않았을 테니 그것을 저리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편집해낸 것에 대해 그저 감탄할 뿐. 보고 또 보아도 그래서 우습다.

 

일주일에 챙겨보는 유일한 프로그램. 그러나 이외의 다른 예능을 굳이 챙겨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최고는 하나로 족하다. 이 이상의 만족을 달리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최고다. 단연 내게 있어 남자의 자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