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가장 눈속임이 불가능한 파트가 어디냐면 바로 드럼이다. 기타도, 키보드도, 베이스도, 어떻게 어물쩡 넘어갈 수 있지만, 보컬조차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드럼은 안 된다. 드럼이 무너지면 밴드 자체가 무너져버린다. 가장 안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귀의 중심을 잡는 것도 드럼이고.
기타와 베이스... 확실히 연습부족이다. 키보드도 그리 제대로 연습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보컬은 더더욱.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제대로 연습이 되어 김태원의 요구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드럼이었다. 그리고 드럼이 안정되니 그나마 사운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피하고 있다.
다른 파트와는 달리 김태원이 드럼에 대해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 매우 구체적이다. 실수를 하고 안 하고, 문제가 무엇이고 하는 부분들에 집중한 다른 파트에 비해, 드럼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구체적으로 사운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 이윤석이니까.
물론 그런다. 스케줄이 없어서 그렇다고. 일주일에 스케줄이라고는 대학강의 빼고, 남자의 자격 빼고 나면 도배학원 사흘에, 드럼학원 사흘. 그러나 그렇더라도 몇 달을 꾸준히 학원에 다니면서 한 가지를 배운다는 게 쉬운가. 그리고 그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도.
한 눈에 들어온다. 처음 드럼스틱을 잡았을 때와 지금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사운드 가운데 그나마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과, 다만 천성이 소심한 탓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잘 주위에 휘둘려 자기 페이스를 잃는다는 것은 이윤석답다 할 것이다.
하긴 그래서 김태원도 이윤석더러 메트로놈을 양 귀에 다 꽂고 있으라 한 것일 게다. 다른 소리 듣지 말고 자기 드럼에만 집중하라고. 이윤석이 들어야 할 것은 다른 파트가 아닌 자기의 드럼일 테니까.
참 성실하달까... 그런 성실함이 또한 이윤석 특유의 폼 안 나는 어색함과 어우러져 제대로 슬랩스틱을 완성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뭘 해도 폼이 안 난다 하지만, 그래서 뭘 해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국민약골이란 단지 체력이 저질이라서가 아니라 그같은 폼 안 나는 우스꽝스러움에 애정을 담아 부르는 것일 게다. 과연 그렇게 못짓 하나하나마다 허술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언이 또 있을까? 슬랩스틱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아쉬울 뿐.
그나저나 다시보기를 하면서 또 한 가지 느낀 것이, 이래서 이승철이 김태원을 다시 안 보려 하는구나. 박완규가 이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밴드를 나간 거로구나.
평소에는 그리 헐랭하던 김태원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가차없다. 대놓고 독설을 퍼붓는데 내가 다 민망할 정도다. 김국진은 거의 밟히다 못해 걸레가 되고 있었고. 동갑네기 친구라도 사정없이 짓이겨버리는 그 단호함에 김종서가 말한 그 "엣지"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나마 이것도 많이 나아진 것이라니.
부활이 그냥 26년을 버텨온 것은 아니라는 것일 게다. 이런 완고함이 있었기에. 또 그렇기 때문에 정준교가 87년부터 13년을 함께 했던 것일 게고, 서재혁이 그로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것일 게고, 부활의 음악이 아직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 게다. 다만 인간적인 관계에서는 조금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일 터이니.
원래 밴드란 그래서 음악을 하면서도 서로 주먹다짐도 하고 하는 것 아니던가. 김태원 스스로 기타스승이라 말했던 이지웅과도 결국 음악적인 견해차이로 싸우다 갈라서고 있었다. 코드 하나 가지고 치고받고 하다가 끝내 찢어지는 팀도 있고. 음악에 대한 엄밀함이야 말로 음악인이 존재하는 이유라.
그리고 여기에 더해 지난주 무심코 지나친 부분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김태원이 콘서트 한다고 떠난 뒤 남은 나머지 멤버들이 서로 어떻게 연주하고 공연할 것인가를 상의하는 부분. 아, 이런 게 밴드로구나... 내가 남자의 자격 이번회차를 보며 할마에가 아닌 멤버들이 주인공인 회차라 말한 바로 그것이었다. 모여서 서로 상의해가며 보다 나은 사운드를, 음악을 만들어간다. 아마 앞으로 멤버들의 실력이 더욱 안정되면 멤버들 스스로도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김태원과 함께 사운드를 만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음악이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테니까.
누군가 그러더라.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편에 대해,
"그동안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궁금함이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음악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나 역시 십분 공감하는 바다. 악보도 못 보는데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가? 과연 음악인들은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밴드음악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들은 것이 있어 어렴풋이는 알아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가까이 지켜 본 적은 없었다. 작년 무한도전도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새롭고, 더 신기하고, 더 친근하고, 더 감동적이다. 음악을 - 특히 밴드음악을 좋아하기에.
아마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남자의 자격 아마추어 밴드편은 대단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남자의 자격 출연자 전원에게, 제작진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듣고 감동을 받고 하던 음악이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좋았다. 다시 보아도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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