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는 착한 웃음과 나쁜 웃음이 있다. 간단히 나를 향한 웃음과 타인을 향한 웃음이다.
예를 들어 이제 갓 돌이 넘은 조카녀석이 넘어졌다. 안쓰러운 마음에 달려갈 것이다. 그런데 한껏 치장을 한 귀부인께서 느닷없이 꽈당 넘어지며 모양을 구겼다면? 웃고 만다. 왜? 조카니까. 그리고 남이니까.
조카녀석이 다가와 말한다.
"삼촌 아파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웃음이 나는가? 그러나 다 큰 어른이 - 그것도 새카만 남자가 그러면 화가 난다. 조카기 때문이다. 내 인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연장인 때문이다.
양주가 그랬지. 천하가 기뻐하면 그로써 기뻐하고, 천하가 슬퍼하면 그로써 슬퍼하고... 그렇게까지 대인은 아니더라도 동생의 딸네미 정도는 내 품 안에, 내 안에 넣을 도량은 되는 탓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오히려 당황스럽고 안쓰럽고, 그저 웃으며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원래 웃음이란 그렇게 이기적인 것이다. 내 일이면 좋아서 웃음이 나고 잘되어서 웃음이 나고 기뻐서 웃음이 나고, 그러나 남의 일이라면 싫어서 웃음이 나고 못되어서 웃음이 나고 불행해서 웃음이 나고...
개그라는 게 기본적으로 후자에 가깝다. 자기를 망가뜨리거나 타인을 망가뜨리거나, 자기를 내몰거나 혹은 타인을 내몰거나... 그래서 사람의 내면의 본연의 악의를 자극한다.
"뭐 저런 멍청한 게 다 있어?"
비뚤어진 우월감과 타인의 불행이나 모자름을 기쁨으로 삼는 왜곡된 이기와... 육식성 웃음이다. 어떻게 바꾸어도 그것은 상대를 포식하고자 하는 육식성 웃음이다. 그리고 당연히 육식성 웃음이니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달려들듯이,
"이래도 안 웃어?"
아마 강호동이 이 유형일 것이다. 내가 강호동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그의 프로그램을 보면 왠지 안 웃으면 안되는 듯 분위기를 몰아가는 게 있어서...
물론 대부분의 코미디프로그램이 그렇다. 예능도 그렇다.
"웃어!"
"웃으란 말야!"
그러면 또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것이 내가 코미디든 예능이든 잘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재미있다는 사람도 많겠지만.
반대로 - 역시 반대니까 초식성 웃음을 말하자면 그냥 가만히 있는데 웃기는 것이다. 웃기려 하지 않는데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웃긴다. 내 이야기 같아서 웃기고, 그에 대한 동질감에서 웃기고, 즐거워서 웃기고, 기뻐서 웃기고, 또 어이가 없어서 웃기고... 여기서 어이가 없다는 건 상대를 바보취급하는 어이없음이 아니라 자기도 그런 경험을 했기에 느끼는 유쾌한 어이없음이다.
남자의 자격의 미덕이 그것이다. 지지난주 이성친구편이 그랬다. 남자들 한 것? 김성민 말고는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성민이 제일 재미없었다. 왜? 다른 멤버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거의 대부분의 방송분량은 여자들이 만들어냈다. 이정진과 짝을 이룬 정주리와 이경규와 짝을 이룬 최란, 김태원과 김국진과 짝을 이룬 견미리, 단지 남자들은 무기력한 리액션을 보여줬을 뿐. 그런데 웃겼다.
수줍음? 어색함? 당황? 난감? 대부분의 남자들이 느끼는 것이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대놓고 들이댈 수 있는 남자는 드물다. 오히려 여성보다 더 섬세하고 더 민감한 게 남자다. 도저히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 난데없이 생겨난 이성친구에 대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들... 그래서 또 가장 웃겼던 것이 이윤석이었다. 특별히 웃긴 건 없는데 지나치게 나대는 듯한 여자파트너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앞서 말한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었다.
지난주 밥상편도 마찬가지였다. 밥상편의 핵심은 어느샌가 번져버린 김성민식 유머였을 것이다. 이경규의 베트콩에서 시작해서, 김국진의 고구마 시놉시스, 다시 이경규의 자식농사, 윤형빈의 계란'찜', 이윤석의 계란'탕'... 전혀 웃기지 않는 어이없는 멘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웃겼다. 뜬금멘트에 당황해하는 이경규나, 어이없는 멘트에 황당해하며 비난을 퍼붓는 멤버들이나, 그러면서도 그런 뜬금멘트를 반복하고 그것으로 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들... 만일 의도한 것이라면 정말 작가는 악마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나, 밭에서 고구마를 캘 때나, 벼를 베고 껍질을 벗길 때, 우유를 짤 때, 계란을 받을 때, 대단하게 웃긴 장면 있었나? 오히려 웃기려 애쓰면 어색했다. 초반 그리 웃기던 김성민의 오버가 지지난주 이어 계속 거슬리고 있었다. 그냥 자연스레 보이는 것...
조금은 모자르고,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어색하고...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어느새 동질감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 역시 고구마순을 구별할 줄 모르고, 쌀을 도정하는 것도 이론으로나 알 뿐이다. 우유를 짜고 계란을 받고...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열심히 하는 모습에도 나 역시 그런 듯 흐뭇한 웃음일 짓는다.
"찍었어?"
그게 뭐 그리 대단히 웃긴 멘트였을까? 그러나 여유가 있었다. 낚시를 하면서도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않고, 굳이 웃기려 발버둥치지 않고, 그저 낚시하는 상황을 즐기는 그런 여유다. 그리고 그런 여유에 감염된 탓에 나 역시 찍었어를 말하며 웃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만이 갖는 경쟁력이다. 내가 남자의 자격을 챙겨보는 이유다. 내가 남자의 자격에서 웃기지 않는 - 이른바 병풍역할을 하는 멤버들을 잘라내고 좀 더 웃기는 다른 멤버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는 웃기는 멤버란 육식성 웃음이다. 웃기려 애쓰는 사람이고, 웃기기 위해 때로 오버하며 윽박지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태원도 김성민도 그런 식으로 웃기려 들지는 않는다. 이경규도 초반 그런 것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한 데 어우러지며 여럿이 만드는 상황으로 웃기려 들고 있다. 윽박지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고 끌어당기는 웃음이다.
그렇다. 착한 웃음과 나쁜 웃음을 달리 정의하자면 강요하는 웃음과 끌어들이는 웃음으로 나눌 수 있겠다. 윽박지르며 웃으라 하는 웃음과 그냥 있어도 어느새 웃고 마는 웃음과... 사람들이 말하는 웃기는 사람이란 대개 전자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후자다. 과연 어울릴까?
웃기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웃기지 않음을 자학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로 상황극을 만들 수 있는 것, 6시 내고향을 흉내낸다고 하다가 어색해 웃고 마는 이정진의 모습을 또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얼마 안 있으면 제대한다는 그 연예인이?
아무튼 지지난주 지난주 정말 재미있었다. 신입사원편은 막판에 늘어져 실망이었는데 지지난주 지난주 각 멤버의 캐릭터를 드러내 보여주는 연출과 편집이 정말 좋았다. 이정진과 윤형빈이 어울리면서도 더 이상 편집당하지 않고 웃기지 않는 것으로 웃길 수 - 아니 전체 멤버들이 웃기지 않는 것으로도 웃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달까?
물론 그럼에도 빵빵 터진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김태원의 깔고앉는 의자라든가, 떡밥 넣은 추어탕... 이경규가 말을 하는 동안 우웩 구토를 하는 김태원의 모습이라니... 한 번 복불복쇼에도 나와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정민과 구토연기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도... 물론 케이블 예능까지 뛰기엔 역시 김태원이라는 이름값이 너무 아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참 재미있는 한 화였다. 재미있었고 감동도 있었고... 더구나 쌀값폭락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은 이때 시의적절하기도 했었고. 이렇게만 간다면...
한 가지 불만이라면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율이 12%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 30% 막 찍어도 좋을 듯 하련만. 그러나 또 너무 시청율이 높아도 재미없을 것 같은 이율배반은 무얼까? 죽기전에 해야 할 101가지 찍고서 하지 말아야 할 101가지까지 계속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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