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사건이 있기는 있다. 사건도 없이 어떻게 프로그램을 만드나? 외부게스트를 출연시키고, 혹은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모내기를 하고, 위문공연을 하고, 모두가 사건이다. 다만 문제라면 그런 사건이 얼마나 프로그램 안에서 재생산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가.
당장 남자의 자격만 해도 그렇다. 농사일을 할 때는 농사일 자체가 재미를 만든다. 밴드를 할 때는 밴드 자체로 재미를 만든다. 밴드를 함으로써 캐릭터가 드러나고 그런 가운데 관계가 작용하고. 무한도전의 경우는 그 관계가 남자의 자격보다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역시 그 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주어진 미션을 통해서다. 미션이 주제가 되어 각자 캐릭터와 관계를 가지고 그 안에 작은 사건을 만들고, 그로써 또 다른 멤버들이 참여할 여지를 만듦으로써 사건은 확대되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을 마침내 일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MC의 역할이고 연출의 역할일 테고.
즉 큰 줄기가 되는 주제가 있고, 그 안에 소소한 작은 사건들이 배치된다. 그런 가운데 멤버들은 자신이 개입할 여지를 찾고 그런 속에서 캐릭터가 드러나고 관계가 확장되고 일관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번 미션은 이런 것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내용이 이렇더라...
그런데 청춘불패의 경우는 그런 것들이 아주 제각각이다. 이번주 일본 가는 것도 그랬고, 지난주 위문공연도 그랬고. 군에서 대민지원을 나온 것은 좋은데, 그로부터 군부대방문과 위문공연까지가 하나로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냥 따로따로. 어떤 공연을 할 것인가 하는 기대가 프로그램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전혀 없이, 군부대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이전의 내용과 이어지는 것 없이 따로따로.
청춘불패에서 멤버들의 캐릭터잡기나 관계형성이 어려운 것이 그래서다. 만화를 보자. 처음에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자잘하게 이어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충의 그림이 그려지면 그때부터 큰 에피소드로 나간다. 헐리우드 영화의 작법도 마찬가지다. 작은 에피소드로 캐릭터를 설명하고 관계를 정의하고 그를 전제로 주제가 되는 큰 스토리로 나간다. 그런데 정작 멤버들이 자신을 드러낼 사건이란 자체가 없으니.
그래서 청춘불패에서의 캐릭터란 단순한 개인에 불과하다. 주위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단지 출연자 개인의 모습이 이러니까. 하긴 그런 것도 아이돌이기에 아이돌을 추종하는 개인팬 입장에서야 반갑기 그지없는 것일 테지만 그러나 프로그램 전체로 보았을 때 산만하고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각자 알아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의 에이스가 있을 때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까지 끌어들여 분량을 만들어내는 것은 청춘불패로서는 상상을 못한다. 누가 얼마나 어떤 개인기로 웃겼느냐. 그 이상은 없는 야외 스튜디오 버라이어티랄까? 과연 강심장과 청춘불패의 차이는 무엇인가.
안정된 재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기대를 배반하거나. 그것은 어떤 일관성에서 나온다. 이런 장면에서는 이럴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런 행동을 할 것이다. 단순히 서는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것은 그로부터 기대가 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청춘불패에 그런 기대가 있는가. 오늘은 누가... 가 아니라 청춘불패를 통해 어떤 재미를,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어제 일본 간 것만 하더라도 그저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어쩌고 하기보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미션을 정하고 그에 따른 일관된,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하긴 바로 그런 것이 MC의 역량이다. 미안하지만 김신영은 딱 두 세 명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감당이 안 된다. 7명의 멤버를 이끄는 MC로서는 함량미달이다. 딱 두세 명과 더불어 콩트를 하는 것은 잘해도 전체를 이끌고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내용을 채워가는 것은 미흡하다. 김태우가 그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지만 역시 크게 차이가 없고, 오히려 노주현에게 가능성이 있다면 있달까.
그래서 또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 제작진이다. MC가 아무래도 감당이 안 되면 제작진이라도 나서야 할 것 아닌가. 작가가 왜 있는가.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것이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감 없는 멤버들도 보다 쉽게 자기 역할을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다. 그러면 그만큼 재미도 나온다.
결국 하는 일 없이 꽃 몇 번 심고 별 내용없는 멘트만 몇 번 날리다가 호텔 들어가서 생얼공개. 그것도 한두번이지 이제는 성형 전 사진을 공개한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다. 차라리 화려함의 극을 달리는 메이크업을 보여주는 쪽이 관심을 끌 듯. 도대체 아무데서나 보여주는 생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텔에서 자기들끼리 수다떠는 것이야 그것도 잠시 보고 넘어가는 거다. 더구나 어제 주제가 호텔에서 노가리까기였던가.
그동안도 그랬다. 농사를 짓는다는데 농사로 분량이 나왔는가. 아니, 초반에는 이렇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분량은 일을 하면서 나왔다. 울타리를 치면서, 고추를 따면서, 은행을 주우면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개인기에 의존하기 시작하더니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물론 그럼에도 시청율은 잘 나온다. 광고도 잘 팔리는 것 같고 화제성도 있다. 여기저기 마니아층도 상당하다. 아마 그래서 지금 이대로 바뀌는 것 없이 계속 가고 싶겠지. 괜한 시도를 하기보다 지금 이 정도라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그래서 말해봐야 별 의미는 없으리라는 것을 - 어차피 읽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진심으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소한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처럼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도라도 해 보라."
단순히 목적없이 농촌에서 좌충우돌하는 아이돌의 망가지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웃음과 감동을 함께 줄 수 있는, 다음이 기대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라. 좋지 않은가. 충분히 망가져 줄 수 있는 새로운 멤버도 들어왔고. 그들은 얼마든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 소재는 충분하다.
하여튼 누구 하나 빠진다고 그 빈자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 더 들어온다고 그게 한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아쉬운 것도 기대되는 것도 없이 파편화된 부분부분들. 플짤로 쪼개서 보나 전체로 본방으로 보나. 도대체 왜 이게 리얼버라이어티인가.
농촌체험이라 했으면 그 체험을 가지고 분량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초반에는 가능했던 것이 왜 지금에는 안 되는 것일까. 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지 않는 것인가. 단지 지금의 시청율에 만족하고 있을 뿐인 것인가. 프로그램이 갖는 가능성이 너무 아까워서. 정말 아깝다. 출연자들이. 포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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