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무한도전 - 여행은 저렇게 떠다는 거다!

까칠부 2010. 7. 18. 07:42

오래되었다. 어느날이었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한 녀석이 그리 제안을 해 왔다.

 

"놀러가자!"

 

준비란 전혀 없었다. 맨몸으로 단지 지갑에 들어 있는 만 원 짜리 몇 장이 전부. 그리고 그대로 청량리로 향했다. 마침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곳이 강릉이었다.

 

강릉은 우리 친가가 있다. 그러나 가서도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만 때늦은 바닷가를 거닐며 그냥 마냥 돌아다니며 놀았다. 거의 여름이 다 지나던 때라 바닷가에는 사람도 거의 없었던 관계로 밤 늦게서야 사람이 없을 때 알몸으로 물에 뛰어들어 으스스 살갗에 소름도 돋아 보았고. 그리고는 가까운 여인숙에 들러 대충 씻고는 대충 잠들고 다음날도 강릉 시내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 그대로 서울로 올라왔다.

 

참 한심한 여행이었다. 진짜 뭐하러 강릉까지 갔던가 지금도 전혀 기억이 없다. 모기가 무지 많았다는 정도? 거의 안 물린 곳 없이 온몸이 온통 물린 자국 투성이였다. 8월 말의 밤바다는 정말 추웠고. 강릉을 떠나오기 전 기차역 앞에서 먹었던 건더기조차 없던 된장찌개는 정말 끔찍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회 한 번 먹자고 했다가 겨우 차비도 간당했는데.

 

그래도 즐거웠다. 두려움과 설렘은 같은 감정이라던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 생각없이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이 그야말로 무념무상으로 흘러갔다. 진짜 아무 생각없이, 다른 아무 고민도 걱정도 없이 보낸 1박 2일이었을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가끔 그런 짓을 했었다. 문득 지하철 타고 가다가 떠나고 싶으면 아무 기차나 잡아타고 떠나는 것이다. 정작 가서는 할 것도 없다. 어슬렁 기차역 주위를 서성이다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이제는 1박 2일조차도 아무 계획없이 보내기에는 지나치게 주위가 분주해진 까닭이다. 그래도 전혀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란 그리 두렵고 설렌다. 요즘은 그런 것조차 여유가 없어 못하지만.

 

정말 부러웠다. 전날까지 정해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도, 기차를 타고 갈 것인가도,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목적지를 정하는데 박명수가 제안한 전남 고흥이 걸리자 박명수가 난감해한다.

 

"나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하지만 한 번도 가 보지 않았으니 찾아보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기차여행. 기차 안에서의 군것질. 괜한 장난들. 그것도 해봤다. 잘 자는 녀석 깨워서는 도착했다고 내리게 하고서는 우리들끼리...

 

레슬링 특집으로 돌아가서 철이 덜 들었다 하더니만 바로 그대로다. 확실히 철든 어른이 할 여행은 아니다.

 

물론 준비는 철저하다. 돈도 충분히 갖고 있다. 경비 아끼려고 군것질도 삼가던 당시 우리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문득 그리운 느낌이 드는 것은... 나 역시 순간 아무 기차나 타고 떠나고 싶어졌다. 아무 기차나 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려 아무도 모르는 시간을...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확실히 지금은 그러기에는 주위가 너무 분주해서. 간만에 한 번 날 잡아... 라기에는 그러면 또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제 전처럼은 놀 수 없겠구나.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자연스럽던 것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과연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명수의 신발은 또 어떻게? 다음주가 정말 기대되었다. 그리웠던 만큼. 설레었던 만큼.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기에.

 

정형돈은 확실히 귀엽다.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였던가 새삼 깨달았다. 길도 역시. 바나나맛 우유 좀 그만 챙기라며 소리지를 때는... 그리고 재미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속장소에서 텐트 치고 누워 잘 때도. 박명수야 뭐 늘 그런 캐릭터고. 이 귀여운 아저씨를 어찌할까.

 

무한도전이 롱런할 수 있는 이유는 전혀 미운 구석이 없는 개성강한 캐릭터가 아닐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함이. 소소함이. 그리고 빵빵 터지는 웃음이.

 

게임을 하더라도 하나하나 조각난 파편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로 이어진다. 서로 연관없이 이루어지는 게임이지만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왁자함 속에 그것을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어 간다. 크게 웃으며, 그리고 사이사이 소소하게 웃으며,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래서 리얼버라이어티로구나.

 

그 정겨움이 좋았던 회차였다. 역시 사람은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거다. 친한 사이일수록.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