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세바퀴 - 현아의 춤이 민망했던 이유...

까칠부 2010. 7. 25. 15:46

누드는 예술이다. 그러나 누드는 욕망이다.

 

예술사진에서 누드란 참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런데 정작 그런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면 그것도 난감하다.

 

차라리 솔직해질 수 있으면 모른다. 그러나 솔직해지기에는 욕망이란 일방적인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이기에는 인간이란 어느샌가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더 그런 상황이 어쩔 줄 모르게 당황스러운 것이다.

 

체인지의 무대에서 분명 현아의 골반춤은 멋졌다. 선정적이기도 했지만 음악과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며 상당히 멋스런 무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세바퀴에서의 골반춤은 예술누드사진에서 튀어나온 누드모델이나 같다. 무대가 아닌 공간에서 따로 떼어져 추어지는 춤이란 어떤 작가의 의도도 없이 덩그라니 놓여 있는 누드모델과 다르지 않다. 굉장히 난감하다.

 

보면서도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물론 현아는 아티스트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이다. 춤은 그녀가 부른 노래의 안무였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아티스트 현아가 아닌 그냥 아이돌, 연예인 현아였다. 개인으로서의 현아였다. 춤이란 음악이나 무대와는 상관없이 보여지고 있었고. 이 춤이 이렇게나 민망할 정도로 선정적인 춤이었구나.

 

참 싸구려로 넘긴다는 생각을 했다. 골반춤이란 단지 춤 자체로서 선정적으로 어필하고자 하는 것이었던가. 체인지라는 노래와 어우러져 무대를 만드는 한 부분이었던가. 그것을 단지 자신의 섹스어필을 보이고자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소비하고 있었으니. 멋지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조금 더 아티스트로서의 자각이 필요하겠다. 하긴 요즘 무슨 아티스트로서의 자각이 필요하겠는가. 단지 예능을 통해 대중을 위해 그저 일방적으로 떨이로 소모될 뿐.

 

퍼포머의 춤이란 그렇게 값싸게 소모될 수도 있구나. 선정적이거나 난감한 것을 넘어 그것이 내내 불편했다. 고작 이런 정도에 불과한 것인가.

 

현아라고 하는 한 가능성이 정말 아깝고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