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아티스트와 프로페셔널...

까칠부 2010. 7. 31. 07:13

라디오스타를 다시 보다 문득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호랑나비로 돈 많이 벌었지. 그런데 10년동안 술 마시고 나니까 없더라구."

 

이하늘만 해도 그동안 팔아치운 앨범이 600만 장이라던가. 그러나 지금 나와 항상 하는 말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이번 앨범도 하마트면 나오지 못할 뻔했고, 아마 마지막 앨범이 될 지도 모른다던가.

 

한국 최고의 소울 가수라 일컬어지던 박인수가 행려병자로 주민등록조차 없이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한때 스타로 떠받들려지던 이들 가운데 정작 대중적인 인기와 성공에도 불구하고 말년이 불우한 사람들이 그리 많다. 아니 많았다. 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너무 상업적이다."

"돈을 벌려고 한다."

"상업적 의도가 보인다."

 

좋은 뜻이 아니다. 그만큼 불순하다. 순수하지 못하다.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것이다. 아티스트는 돈을 밝히면 안 된다. 아티스트가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

 

실제 그랬다. 이순재도 여러 예능프로에 나와 그리 과거를 회상한 바 있었다. 연기가 좋아서 연기를 하는데 그게 돈이 안 되어 아내가 만두집을 했었다고. 정보석도 연극무대에서 배고프던 시절 그리 아내를 고생시켰다 미안해 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돈을 벌 생각이 없었을까? 이순재가 그러지 않던가. 그런 건 아예 생각도 않았다고. 신중현도 회고한다. 당시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하지 않았었다고.

 

말하자면 당시 연기자나 음악인에게 연기나 음악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직업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체성? 그냥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고 싶다 이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당위였다.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돈은 따라올 뿐.

 

그래서 프로페셔널로서의 엄밀함이 부족했다. 돈을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그냥 하는가보다 해서 했다. 받는가보다 해서 받았다. 90년대까지도 이어지던 음반사나 기획사의 횡포는 그런 아티스트들의 순진함에 기댄 바 컸다. 아티스트들은 그다지 돈에 관심이 없고, 음반사나 기획사는 돈에 그리 관심이 많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음반사나 기획사의 일방적인 착취구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벌면 버는대로 써버리기 일쑤고, 어차피 평생을 음악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굳이 돈에 미련을 갖지도 않았다. 음악을 하다 보면 돈은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그것으로 쓰면 된다. 언제까지 하고 은퇴하고... 시간이 흘러 후배들에 떠밀릴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노후대책조차 없이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살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돈의 중요성을 알았던 아티스트들도 많았다. 특히 조용필의 경우 음악적인 엄밀함을 추구하면서도 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되어있어야 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조용필이 하고 싶은 음악과 그리고 음반사에서 요구하는 대중적인 음악, 조용필이 트로트 가수로 여겨지는 이유이고, 그러면서도 거의 모든 장르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낸 아티스트로 기억되는 이유다.

 

생계의 이유로 돈이 되는 음악을 선택하는 이들도 또 분명 있었다. 아니면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대중음악은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 믿고 상업적인 성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당시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런 낭만적인 - 자본주의의 때가 타지 않은 순진한 아티스트들도 있었던 것이니.

 

김흥국 역시 무명시절이 길었다. 호랑나비로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밤무대를 전전하며 고생도 많이 했었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어쩌면 그러한 어려움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그런 무명시절동안 선배들로부터 배웠을 테지.

 

아, 놀러와에서 김종서도 신해철이 TV쪽은 아예 돌아보지도 말라고 선배들에게 배웠다고 하자 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TV나 돈벌이가 되는 주류무대는 자신들이 설 곳이 아니라며. 신대철과 김태원 모두 시나위와 부활의 리더로서 당시 너무나 당연하던 밤무대를 거절한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팀이 깨지는 빌미를 만들기도 했었다. 행사비를 받으면 돈을 세는 것이 아니라 대충 나눠서 두께로 맞춰 나누어 가졌다던 DJ DOC의 이야기가 그리 신기할 것 없던 이야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 돈이 들어왔어도 그것을 잘 굴려 더 크게 불릴 생각보다는 돈이 들어왔으니 가까운 사람들에 쓰자. 가까운 사람들에 베풀자. 아무때고 무대에 설 수 있을 테고, 무대에 설 수 있는 한 돈은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은 언제까지고 무대에 서고 있을 테니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낭만적이던 시대였는데, 그런 점에서 당시 아티스트들을 프로페셔널이라 부르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다. 프로페셔널이란 직업적인 전문가다. 가진 바 능력을 계량하여 파는 이들이다. 하지만 아예 그러한 계량 자체를 않던 이들이라. 아티스트이기는 하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프로는 못 되었달까. 자기관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프로답지 못한 모습이 적지 않았었고.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디씬에서 오로지 음악이 좋아 별로 돈도 되지 않은 음악에 열중인 이들도 아마 그런 예이겠지. 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연극쪽도 그리 돈은 되지 않는다. 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돈만 생각한다면 어찌 그런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재즈, 블루스, 뉴에이지, 모두 돈이 되지 않는 음악들이다. 그런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우리의 문화는 그리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일 테지만.

 

아무튼 덕분에 아직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음악인이며 연기자며 돈 버는 것에 예민해 있다는 것이다. 돈을 밝히는 게 무슨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무슨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처럼. 아마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이들을 기억조차 못할 텐데도.

 

아주 옛날옛적의 이야기다. 지금도 화석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첨예한 자본주의의 빌딩 사이로 마치 시간을 잊은 듯 오도카니 서 있는 원두막처럼. 그렇게 한가하게 곰방대를 빨며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한다. 그 웃음을 그리 순박할 것이다.

 

참 그리운 사람들이다. 호랑나비로 번 돈을 모두 술로 날리고 전세를 전전했다는 김흥국이나, 25000원 있으면 2만원은 후배들 밥 먹으라 주고 자기는 5천원만 가졌다는 이하늘이나, 가끔 비호감이더라도 그런 점이 나를 잡아끄는 것일 테지만. 그런 어수룩함이. 그런 서툰 모습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돈에 구애됨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서태지와 아이들로 기반을 만들고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진짜 음악을 마음껏 즐기며 하고 있는 서태지처럼. 돈이 있어야 자유도 있다. 자기 재능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사치를 하든 낭비를 하든 아예 뻐려버리든 그것도 역시 돈을 벌고 난 뒤의 일이다.

 

재미있었다. 그런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가 좋다.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잊혀져버린 이야기가. 계산이란 모르는 그런 순진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뭇잎 태우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정겨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