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청춘불패, 남자의 자격 - 웃기지 않는 예능을 볼 권리에 대해서...

까칠부 2009. 10. 31. 19:04

큰일났다. 남자의 자격 덕분에 리얼에 대한 눈높이가 한참 높아졌다. 최소한 남자의 자격 만큼만 하라... 그러나 어떤 자칭 리얼버라이어티를 봐도 그런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 웃기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버라이어티인 만큼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비롯 나와서 웃기려는 인간들은 많다. 때로 그것은 매우 억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남자의 자격은 굳이 웃기려 하지 않아도 웃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포장지 이정진이나 만년꼴찌 윤형빈마저도.

 

원래 사람은 모두가 웃긴다. 일상에서 보면 진짜 안웃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어려운 것은 어색한 낯선 사람과의 사이에 웃음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게 되는 사람은 코미디언이나 진행자가 되는 거고, 안 되면 못하는 거고.

 

그런데 남자의 자격은 피디의 뚝심있는 일관된 신념 덕에 이런저런 말이 있어도 벌써 반 년을 한 멤버로 꾸려왔다. 김태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제는 서로가 가족 같다더라. 피디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평일에도 서로 시시때때로 전화를 하고 만나 어울리기도 한다더라. 바로 그것.

 

스스럼 없이 던지고, 스스럼 없이 받는다. 전혀 웃기지 않는 멘트인데도 어느샌가 그것을 서로 주고받고 하는 사이 함박 웃음이 된다. 빵빵 터지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서서히 고조되는 흐뭇한 웃음이다.

 

청춘불패에서도 그런 걸 느꼈다. 처음에는 김신영과 유리와 고추 먹기 내기였다. 그리고 은행을 줍고 찾아온 나르샤에게 김신영이 다시 고추를 먹인다. 고추를 먹은 나르샤는 매운 것을 참고 맛있는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써 김신영으로 하여금 스스로 고추를 먹도록 하고. 그리고 다시 일을 마치고 모였을 때 김신영, 나르샤, 유리, 구하라, 한선화, 효민 등이 모두 짜고서는 매운 것을 찾고서 김태우에게 맛있다며 먹으라 유혹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추를 먹고 고통스러워하하는 김태우...

 

만일 이것이 대본에 의한 것이면 정말 대단하다 할 것이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발단을 만들고 전개를 만들고 절정으로 고조시켜 한 번에 빵--!! 원래 극에서 이런 걸 많이 쓴다. 미장센이라고도 하고 복선이라고도 하고.

 

그러나 극에서는 그런 것들을 철저히 계산된 인위적인 장치들로써 해결한다. 버라이어티라고 다르지는 않다. 리얼이라고 해도 대본이 존재하고 계산된 장치와 흐름이 존재한다. 다만 리얼이란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극과는 달리 작위의 냄새가 덜 나도록 하는가가 생명일 것이다.

 

청춘불패의 저 장면에서도 바로 그런 것을 느꼈다. 대본이든 어쨌든 그 흐름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김신영이나 나르샤의 캐릭터와도 어울렸고, 김태우에게 고추를 먹일 때 구하라와 한선화의 매운 것을 참는 연기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실제 가족이 있고 오빠가 있고 누이가 있으면 저럴 수도 있겠다...

 

아마 이런 것이야 말로 청춘불패가 추구해야 할 바가 아닌가 싶다. 억지스런 게임이나 게스트를 통한 작위적인 관계가 아니라 출연자 사이에서의 끈끈한 정이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그런 장면들을 통해서 재미를 주는. 예를 들어 첫회 나르샤가 엎어지니까 그 위에 나머지 소녀들이 차례로 올라타는 그런 모습처럼.

 

솔직히 지금 청춘불패의 가장 큰 문제는 MC의 진행이나 게임과 같은 이벤트의 부재가 아니다. 아직까지 서로가 어색한 -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출연자들이다. 패밀리가 떴다에서처럼 인위적으로 관계를 부여하기에는 이미 아이돌로서의 그녀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유리와 김태우 사이의 러브라인부터도 상당한 무리수로 보이는데 여기서 더 이상 연출이라?

 

그보다는 시간을 두고 서로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주면 좋겠다. 지난회나 이번회에서처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함께 일을 하면서 대화도 하고 서로 알아가고. 현아의 경우 그런 점에서 지난회보다 한참 익숙해진 것인지 말이며 행동이며 자연스럽고 활기차더라. 선화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고. 효민은 여전히 어색하고.

 

바로 그런 점에서 필요한 것이 MC의 역할일 것이다. 노주현은 그런 점에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김태우도 나름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다. 오히려 웃기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에 소홀한 것이 김신영이 아닌가? 남희석은 자신이 먼저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고.

 

아무튼 금요일 저녁 11시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시간대는 가족시간대다. 다음날 출근할 걱정이 없는 직장인들까지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대다. 자기야가 유독 선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결혼도 안한 미혼들이 자기야 보며 공감을 얻고 그럴까? 그리고 그런 나이대에서는 괜히 수선피우고 하는 것 피곤해 한다. 저녁시간대도 아니고 하물며 심야시간대에.

 

조금 잔잔하게 가는 게 좋겠다. 느리더라도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러자면 작가는 죽어날 것이다. 여러 변수들까지 고려해서 그것이 대본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철저히 계산해 대본을 써가야 할 테니. 더불어 출연자의 캐릭터와 관계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터이고.

 

그래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니까... 좋은 컨셉이고, 좋은 소재이고, 좋은 출연자니까... 제작진이 살려줄 수 있기를. 패밀리가 떴다나 무한도전, 일박이일 같은 기존의 버라이어티를 흉내내 쫓아가려 들지 말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면서도 때로 기름기가 쪽 빠진 음식도 먹고 싶어지는 게 사람인 것이다. 김제동의 오마이텐트가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가를 생각하며 그런 쪽으로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아직 출연자 사이의 관계도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는데 또다른 게스트라... 무리다.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지금 하는대로만 하면 된다. 웃음기 없이 진짜 열심히 일만 하는 모습들에서. 전혀 해본 적 없는 일들로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어느샌가 서툴지만 일을 해내는 모습들에서. 여기서 살냄새나는 관계만 살짝 더해줄 수 있다면. 어차피 그 나이대가 가만 내버려두어도 자기들끼리 웃길 나이가 아니던가? 아저씨와는 다르다는 거다. 아줌마와도 다르다는 거다. 나이대가 다르다는 거다.

 

"이것이 젊음인가?"

 

젊음이라는 거다. 거기에 뭐가 더 그리 필요하겠는가?

 

아무튼 남자의 자격 덕분에 눈만 높아졌다. 그 어설픔이 너무 좋아서... 웃기지도 않고 서툴기까지 한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청춘불패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경규와 김태원과 김국진이 그러하듯 나르샤와 구하라와 현아와 써니가 그러기를. 그랬으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