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적었다. 다큐인가 싶을 정도로 예능이라기에는 웃음기가 쫙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왜?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안 그런 사람 있을까? 어려서 전투기 파일럿을 단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누비고 싶다... 그것은 로보트태권브이를 타고서 그것을 조종하고 싶다는 것 만큼이나 가슴을 부풀게 하는 꿈이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루어준다는데...
전문 파일럿이 전투기를 타는 것과는 다르다. 전문파일럿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 연예인이지만 그러나 전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 나같은 사람들. 그들이 전투기를 탄다. 어찌 눈을 뗄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타는 것마냥. 내가 전투기에 타고 있는 것마냥. 그래서 더 끌렸던 것이 김성민이 아닌 김국진이었다. 김성민이야 너무 쉽게 타고 쉽게 내려와서 별 느낌이 없었다. 역시나 다른 세계?
그러나 갑작스런 전투기 탑승에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김국진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나도 저러겠구나..."
왜 아닐까? 롤러코스터 처음 타는데도 그리 긴장되는데. 하다못해 헬리콥터를 타고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별 생각이 다 들더라. 하물며 전투기다. 마하로 날고 9G의 압력을 견디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가장 치명적인 무기다. 날개다.
"마치 내 인생과 같았다..."
아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내가 저 자리에서 저 전투기를 탈 수 있었다면. 그러나 안되겠지. 나도 중이염이 있고, 비염이 있고, 요즘 장이 안 좋아 죽을 고생 중이니까. 선택된 이들만의... 그러나 오늘 하루만큼은 나 역시 꾸어 볼 수 있었던 꿈.
좋았다. 바로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다. 남자의 꿈이다. 남자이기에 이루고 싶은 것들. 남자이기에 반드시 하고 싶었던 것들. 남자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것들. 영원히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남자의 꿈. 남자의 로망.
웃기지 않으면 어떤가? 말장난 없고 몸개그 없고 그래서 담백하니 다큐멘터리면? 아니 나는 웃었다. 역시나 호들갑을 떨며 전투기를 타는 김성민을 보면서, 바짝 긴장하며 전투기에 오르는 김국진을 보면서, 그리고 날아오르는 전투기를 보면서, 내려와 9G를 넘겨 견뎠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말장난이나 몸개그 없이도 그렇게 사람은 웃을 수 있는 거다.
이래서 내가 남자의 자격을 본다. 예능이라고는 띄엄띄엄 - 아니 아예 보지 않던 내가 바로 이 남자의 자격 때문에 예능을 보게 되었다. 눈물이 났고, 웃음이 났고,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아련한 카타르시스. 아아...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일요일 오후 그 한 시간 뿐인 시간들을 아쉬워한다. 너무나.
덧, 남자의 자격만의 매력을 또 느끼게 해준 것이 바로 공군소속으로 공군행사를 위해 나와 있던 조인성을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었다. 자기들도 연예인인데. 그래도 인지도도 있고 인기도 있는 연예인인데. 마치 일반인이 연예인을 처음 본 것처럼.
"조인성 아는 게 그리 대단해?"
굳이 조인성 있는 쪽으로 다가가 아는 체 하는 이경규나, 조인성이 마주 인사해 오자 놀라며 부러워하는 다른 멤버들이나, 어쩐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 보이는 이경규나. 연예인이지만 연예인같지 않은, 연예인이라는 기름기가 쫙 빠진 날남자의 모습이었다. 저들도 보통 사람이구나. 우리와 같구나. 아름다웠다.
단, 한 가지 옥의 티가 있다면 김국진이 전투기를 타려는데 걱정하는 마음에 멤버들이 김국진송을 불러줄 때, 윤형빈이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두고 그리 자막을 단 것이다.
"카메라에 굶주린 막내"
한 눈에 확 거슬렸다. 남자의 자격의 컨셉상 그것은 지극히 가족적인, 형을 걱정하는 아우의 마음으로 보아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내게도 그렇게 보였다. 겁먹고 긴장한 김국진을 재미있어하면서도 걱정하며 힘을 북돋아주기 위한 것으로. 아닐까?
웃기지 않아도 예능이라는 점을 제작진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리해서 캐릭터 만들고 웃기려 하지 않아도 남자의 자격은 충분히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예능과는 질적으로 다른 웃음을. 그건 확실히 무리였다. 다시는 그런 자막 보이지 않기를...
그리고 다음주 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보아하니 살림과는 거리가 먼 남자들인데, 과연 24시간 어떻게 집안일을 하며 버틸까... 이건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면 하는 소재였다. 남자와 집안일, 진부하지만 그러나 항상 새로운 주제다. 일곱 남자의 개성넘치는 24시간을 기대해 본다. 간만의 24시간이다.
아무튼 좋았다. 정말 남자의 자격만의, 남자의 자격다운 그런 시간이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가 예능프로 제작진에게 감사하기도 처음이다. 정말이지 고맙고 멋졌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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