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 신중현과 엽전들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그 누구나 한번보면 자꾸만 보고 있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나도 몰래 그 여인을 자꾸만 보고 있네
그 누구도 넋을 잃고 자꾸만 보고 있네
그 누구나 한번 보면 자꾸만 보고 있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가사 출처 : Daum뮤직
과연 이 노래를 락이니 명곡이니 하는 테두리로 가두어야 할까? 그 이전의 어떤 원초적인 흥겨움이란.
아주 어렸을 적이다. 진짜 아주 어렸을 적이다. 음악이 뭔지도, 락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그러나 나는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누가 불렀는가? 누가 연주했는가? 전혀 몰랐다. 그냥 알았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에~~"
끝까지는 몰랐다. 단지 저 부분만 반복해 불렀다. 그리 흥겨웠다. 그리 즐거웠다. 그리 재미있었다.
우연히 다시 듣게 된 노래에서는 마치 장난처럼 흥겹게 기타리프가 시작되고 있었다. 장타령의 가락에서 비롯된 오로지 한국이라고 하는 문화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그 기타리프는 기타가 뭔지도 모르런 꼬마녀석조차 단숨에 매료시키고 있었다.
장르라는 게 무슨 소용인가. 얼마나 좋은 노래고. 음악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고. 하지만 좋은 노래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도 한 귀에 알아듣게 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영혼으로.
이 노래를 쓴 것이 신중현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밴드가 있었다는 것도. 그 신중현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도.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이미 이 노래를 듣고 흥겨움을 알았고 음악의 즐거움을 알았다.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바로 그것이 음악이다. 그것이 락이다.
신중현은 말한다.
"미인을 보면 당연히 갖게 되는 사람의 욕망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말 그대로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괜히 눈이 그리로 가고, 지나쳐가기라도 하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녀를 보게 된다. 아니 아예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쫓아 돌아가기도 한다.
누구의 애인일까? 사귀는 사람은 있을까? 대쉬를 해볼까? 머릿속으로 망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모두에 대한 사랑이라면 미인에 대한 사랑은 모두로부터의 사랑일 것이다. 만인의 연인이라던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모두의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모두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게 된다.
하긴 아이돌이란 그렇지 않은가. 설마 나와 무슨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천만의 말씀이다. 단지 아름다우니까. 멋지니까. 이끌림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저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 데 어우러져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나누며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남다른 외모의 연예인에 대해서. 아니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얼짱이라 불리우는 남다른 외모의 이성에 대해서.
나이가 많고 적고는 상관없다. 아니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아름답다는 것은 비단 특정 성별에 대해서만은 아닐 테니.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은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그를 쫓고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갖는 당연한 욕구일 터다.
너무나도 직설적인, 그런 만큼 민망할 정도로 주관적이고 원초적인 그 단순한 가사가, 그 가사만큼이나 쉽고 단순한 멜로디에, 그러면서도 한 귀에 들어오는 강렬한 연주와 개성에 실려 들려온다. 복잡하지 않은 만큼 속임의 여지란 전혀 없는 그 담백하고 간결한, 그 폭발적인 존재감을 통해서.
아마 한국락사상 최초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음반이 아니었을까.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은 히트곡이었다. 락으로써가 아니라 음악으로써. 락이라는 장르로써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써.
그래서 한국 락사상의 명곡이라 하기에도 민망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상의 명곡이라 하기에도 어색하고. 단지 그냥 좋은 노래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들으면 좋았던, 어느새 따라부르고 말던 좋은 노래다. 다만 인트로의 그 흥겨우면서도 강렬한 기타리프야 말로 아마 한국 대중음악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한국대중음악사의 정수가 아닐까? 짧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한국적인 락이란 이미 이 노래가 있는 이상 더 이상 거론할 것도 못될 것이다. 1974년 이미 한국 대중음악은 - 신중현은 이만큼 이루어내고 있었다.
한국최초의 아마 하드락 트랙이었을 것이다. 베이스가 "울고싶어라"의 얼마전 고인이 된 이남이였다. "울고싶어라"당시는 사랑과 평화가 재결성되어 들고 나왔던 노래였는데. 이후 80년대 이남이는 신중현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서도 함께 했을 것이다. 드럼은 권용남. 처음에는 김호식이었지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전설의 1000장짜리 한정판 이후 권용남으로 바뀌었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던 그들의 힘이 넘치는 하드록 사운드란 지금 들어도 호쾌하고 후련하다. 그들이 들려주는 연주력이란 여전히 대단하다.
한국 락의 시작이자 전부. 그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로써 완성되었다.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 모든 것을 쌓아 올렸던 거인. 안타깝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탓에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그 재능을 더 펼쳐보이기도 전에 강제로 꺾여 스러져갔다는 것일 게다. 과연 대한민국이 아닌 하다못해 일본이었다면 어땠을까? 펄시스터즈의 "님아"가 실패해서 그대로 월남에서 유럽으로 갔다면? 군사독재정권을 용서하지 못하는 또 한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이후 여러 후배뮤지션들이 여러차례에 걸쳐서 리메이크했고, 아들인 신대철 역시 시나위 9집에 리메이크해서 넣기도 했는데 역시 오리지날은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기술적으로야 지금이 더 나을지 모르지만 그 원초적인 연주와 보컬에서 들려지는 걸러지지 않은 그 감동이란 것은.
참고로 신대철 또한 아버지의 영향인지 한국 민요와 락을 접목하는 것에 꽤 흥미를 가지게 된 모양이다. 사실 벌써 한참 전 인터뷰라 그리 신빙성은 없지만, 아마도 그러한 시도의 성과가 있다면 시나위의 다음 앨범에 담겨 들려지지 않을까. 기약도 없는 시나위의 10집을 기대하는 이유다. 과연 신대철이 찾아낸 한국적 가락과 락의 만남의 답은 아버지와는 얼마나 다를까.
어쨌거나 돌이켜 보면 이야말로 후크송의 원조일 것이다. 나 어떡해를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확실해진다. 사비를 전면에 배치하고, 강렬한 사운드와 비트로 사람의 귀를 한 방에 끌어들이는. 가사따위 상관없이 이후의 내용까지 상관없이 바로 반복되는 그 한 부분만을 기억하게 되는. 나는 그때 그래서 이 노래를 기억하게 되었다. 오로지 그 부분에 대해서만.
시간은 흘러도 음악은 남는다. 좋은 음악은 시간과 상관없이 좋다. 좋은 음악의, 예술의 영속성에 대해 믿고 싶어지는 이유다. 여전히 들어도 좋다. 신중현이라는 천재를 품지 못한 한국사회를 안타까워하며,
음악을 듣는다. 어깨를 들썩이며. 그때처럼. 그 시절처럼. 어린 그 시절처럼. 그 시간들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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