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인터넷과 네티즌 -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 나의 삶을 정의한다!

까칠부 2010. 8. 22. 13:19

과거 삶의 양식이란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로, 혹은 지연과 혈연에 따른 연장자로부터 젊은이에게로 전수되었었다. 당시의 삶이란 바로 윗세대에 의해 정의되었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들며 그런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지연과 혈연에 의한 1차집단이 모두 해체되어 버렸다. 가정에서조차 가부장적인 권위가 사라졌다. 보편적인 교육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것은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고 개인이 요구하는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방향을 잃은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정의할 또다른 롤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또다른 가부장적 권위였다. 미디어였다. 미디어는 교육을 대신해, 가정을 대신해 그들의 삶을 정의해 주었다. 유행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유행이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양식이며 그 표현이었다. 어떤 옷을 입는가. 어떤 것을 먹는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미디어는 어느새 인터넷으로 그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다. 더 직접적이고 더 주관적으로. 더욱 상호적으로 쌍방향적으로 주고받는 영향은 더욱 사람들을 새로운 미디어 - 인터넷에 이끌리도록 만들었다. UCC를 비롯한 자기참여적인 성격은 소비자이면서 또한 생산자로써 인터넷에 얽매인 이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바로 네티즌이라는 것이다.

 

그 네티즌의 삶의 양식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그 네티즌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네티즌에 의해 생산되고 전파되는 그것이야 말로 그들의 삶을 정의할 양식이라는 것이다. 교육을 대신해.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를 대신해. 수평화된 그러나 수직적인 권위라까?

 

인터넷을 두고 가끔 개떼정신이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왜 사람들은 곧잘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잃고 매몰되어 휩쓸리는가. 그들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인 때문이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 부모를 그리듯 인터넷으로부터 소외될 수 없기에 더욱 인터넷에 집착하고 마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리 했으니 따르고, 어머니가 그리 했으니 그를 쫓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마냥.

 

결국은 내가 그동안 해 온 말들과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만이 아닌 대중문화 전반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원래는 다른 블로그에 다른 주제로 써보려 끄적여 본 것인데 날이 더워서인지 도무지 글이 나가지 않아서. 워낙에 압박이 없으면 쓰고 싶은 글일수록 더 쓰지 못하는 타입이라. 과연 쓰기나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사람은 다른 누구에 의지해 자기를 정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모두가 다른 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것을 부모가 했고, 어른이 했고, 학교가 해 왔고, 그리고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는 그들 자신이 맡아 하고 있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이란. 그러나 바로 그것이 본질이라는 것일 테지.

 

물론 그렇다고 무어라 하기에는 그런 게 또 본능이니까. 누구나 당연히 그런 부분이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만 얼마나 자기 중심을 잡고 그것을 지키는가.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정의해. 그런가? 모두들 느끼고 있지 않은가. 누가 나를 정의하는가. 누구로부터 나를 정의하는가. 내가 의존하는 그것들에 대해.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휩쓸리고, 너무나 쉽게 믿고,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그러면서도 전혀 책임은 지지 않고. 온갖 인간이 갖는 악덕이 녹아있는 것이 인터넷일 텐데. 늘 하는 말일 터다. 먼저 자신을 의심하라. 그런.

 

결국은 그만큼 사회가 고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감당 못할 정도로 좁아졌고. 그 영역은 넓어지고. 그에 휩쓸리기도. 나머지는 다음에. 아무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