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 아니 일본의 젊은이들만 해도 직접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굳이 좋은 음악을 찾아 레코드샾을 뒤지고, 여기저기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음악을 찾아 듣고, 라이브클럽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들을 찾아다니고...
즉 그들에게 음악이란 내가 좋아해서 찾아듣는 것이다. 누가 들려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기에 직접 품을 팔아 찾아 듣고, 돈을 지불하고 향유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 위해 품을 팔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대학입시라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관문이 놓여져 있었다. 자기는 아니더라도 주위의 강요 때문에라도 대학입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4당 5락이네 해가며 하루종일 공부에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디 음악을 찾아 들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대신 그들에게는 라디오가 주어졌다.
70년대 청년문화도 바로 이 라디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80년대 10대가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설 때도 라디오가 그 중심에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어 알고, 라디오를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청해 듣고, 그것을 단지 90년대 TV가 대신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일단 라디오는 앨범따위 들려주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타이틀곡만을 들려준다. 그리고 아무래도 음질 때문에라도 보컬이 위주일 수밖에 없다. 시간관계상 전주와 후주를 제끼기도 하고 거의 보컬파트만을 중심으로 멜로디를 듣는 것이 많았다. 전부 지금까지 우리 대중음악의 한계로 남은 것들이다.
말하자면 철저히 수종적인 수용성 문화라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찾아듣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가를 골라 듣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골라진 음악 가운데 겨우 하나 골라 듣는다. 그나마 80년대는 DJ들이 음악적으로 폭넓은 지식과 깊은 소양을 갖추고 있었지. 의외의 숨은 명곡이라든가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이 꽤 방송을 타고 했었다. 그런 것들이야 말로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길들여져버린 대중들에게 이미 스스로 음악을 찾아 듣는 능력이란 거세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그래서 흔히 말하지 않던가?
"왜 공중파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가?"
몇 번이나 말했다. 음원사이트 들어가서 대충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녀도 다양한 많은 좋은 음악들을 찾아 들을 수 있다고. 예전처럼 레코드샾에 그냥 일 없이 가서 몇 시간이고 이것저것 뒤집어 보면서 뭐라도 고르는 노력은 필요 없는 것이다. 제목 알아보고 그리고는 주위에 물어보고. 그거 괜찮느냐? 듣는 건 정액 끊어 놓으면 공짜니까. 다운로드받는 것이야 나중 일이더라도.
하지만 그게 안 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유전되어 버렸다. 공연장을 찾는 아이돌팬들도 그러나 자신의 아이돌을 만나는 계기는 미디어를 통해서다.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서 그 가운데 자기 아이돌을 고른다. 그나마 공연장 찾는 문화 자체가 그렇다.
왜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이리 획일적인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보컬만을 듣는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편곡이나 연주따위 상관없이 멜로디만 신경쓰는가? 모두 뿌리가 있는 것이다. 라디오를 통해 연주를 들을까? 그깟 라디오로 공부하면서 듣는데 편곡으 들을까? 그리고 어차피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음악이란 이미 미디어가 선별한 음악이다. 그런 음악들만을 듣는데 익숙해 있으면서 과연 스스로 음악을 찾아들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데 어디 다양성이 있을 수 있겠고.
공연 대신 행사라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공연은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사실 무척 성가시다. 인터넷 시대에도 어디에서 언제 어떤 공연이 있는가 시시때때로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껏 시간이 났는데 정작 알아보기를 등한시하다가 공연을 놓치고 나면 후유증이 몇 주는 간다. 그리고 공연장을 찾게 되면 공연장에서는 대중적으로 히트한 노래들 이외에도 아티스트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도 듣는다. 어찌 보면 그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의 정수들. 소통의 장이다.
반면 행사라는 것은 아티스트가 불려오는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듣겠다. 어떤 음악을 듣고 싶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 얼굴을 보려고. 그 이름을 듣고 얼굴이나 보려고. 노래는 그저 히트한 노래면. 굳이 연주따위 없어도 상관없다. 밴드음악에서 드럼 빠지고, 라이브가 아니라 AR이고. 뭔 상관인가? 그저 와서 받은 돈 만큼 자리만 챙겨주면 되는 것을.
한 마디로 게으른 대중이라 할 것이다. 떠 먹여주는데만 익숙해지다 보니 스스로 떠 먹는 방법을 모르는. 쌀을 씻어 밥을 하라고까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밥솥에서 밥으 푸는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게 안 되니까. 안 되니까 지금도 칭얼칭얼. 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싶다고. 음원사이트에만도 일주일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곡이 올라오고 있는데도 너무 획일화되었다고.
왜 우리나라의 30대 40대는 외국처럼 공연장도 찾지 않고, 자기 음악을 찾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가. 신해철의 말처럼 왜 그들은 고급문화의 향유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그들 역시 라디오세대니까. 지금은 인터넷세대이고 TV세대다. 역시나 일방적으로 수동적으로 수용하려는 게으른 대중들.
타블로 사태도 사실 그런 맥락이다. 직접 자기가 사실을 알려 하고 확인하려 했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그 잘났다던 파워블로거 가운데서도 사실여부에 대해 직접 알려고 노력한 이는 드물었다. 막연하게. 그냥 남들이 그러니까. 인터넷이 그리 떠드니까. 정작 일인미디어라면서도 정보의 생산자라기보다는 이미 생산된 정보를 맛깔나게 가공해서 전하는 임가공업자라고나 할까? 다 통한다.
공연장을 찾을 새도 없이 자율학습에, 보충수업에, 학원에, 음반을 직접 찾아 들으려 해도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공부... 더 좋은 음악을 찾아 들으려 해도 그 전에 성적표부터 신경써야 하고, 그래서 듣느니 라디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고 음악을 알고 그것이 전부가 되고. 지금은 TV와 인터넷을 그리 대신하고. 그렇게 길들여져버린 사람들이 한국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탓이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 이전 록이 한국에서 대중화되지 않은 이유로 썼을 것이다. 같은 이유다. 스스로 직접 찾아가서 무대를 통해 소통해야 할 음악이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소비하는 음악이 되어 버렸으니.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고.
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왜 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가?"
바로 그 말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이라고. 게으른 대중이 미디어와 쇼비즈니스에 놀아난 결과가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이라고. 획일화되고 아이돌일색이 되어 버린. 물론 그것이 아주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바람직한 모습인가? 더구나 일방적으로 아이돌과 기획사, 미디어만 욕해서는.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수단이 바뀌었어도, 그것도 꽤 괜찮은 기회일 수 있는 것이다. 레코드샾보다 더 편하게, 더 값싸게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으니. 듣는데는 한 달에 3000원밖에 않는다. 다운로드할 것이라면 조금 더 투자해도 좋겠지. 부지런한 새가 먹이도 찾아 먹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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