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이 있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뉴스로 보도되었다.
피의자가 말한다.
"원래 사귀던 사이다. 피해자가 유혹한 것이다. 돈을 노리고 신고한 것이다."
피해자는 말한다.
"분명 성폭행이었다."
여기에 대해 누군가 말한다.
"둘 다 믿을 수 없다. 피의자가 강간했는지 누가 알고, 피해자가 꽃뱀인지 누가 아느냐?"
참 현명한 사람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냉철하고. 그러나 알까?
"피해자가 꽃뱀인지 누가 알겠느냐?"
그 말이 정작 피해자에게 가져다 줄 상처라는 것을?
그 반대의 경우더라도 그렇다.
"피의자가 강간을 저질렀을 것이다."
만일 무죄라면?
솔직히 나도 쉽게 범하는 실수이기는 하다. 그래도 원칙이 있다. 무책임하게 양비론은 하지 않는다.
양비론이 필요한 때가 분명 있기는 있다. 그것은 사실관계가 명확해졌을 때. 둘 다 잘못한 것이 분명해졌을 때. 그 전이라면 양비론이란 단지,
"나는 생각하기 싫다."
"책임지기도 싫다."
어느 한 쪽 편을 들었다가 괜한 덤터기 쓰기 싫으니까. 판단하기는 어렵고, 책임지기는 싫고, 그래서 분산투자한다는 심정으로 둘 다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는 자기만족에 들어간다.
"아, 나는 중립적이다."
"나는 객관적이다."
"나는 합리적이다."
그러는 사이 무고하게 상처입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없다.
내가 저지르는 실수란 다른 게 아니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구에게 더 상처가 크겠는가를 생각한다. 만일 그 주장이 사실일 때 누구에게 더 피해가 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누가 보다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고 누가 더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가. 약자 쪽이 훨씬 불리한 것이 분명하니까.
물론 그렇더라도 사실관계를 우선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도저히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경우 차라리 침묵한다. 중립이라는 이유로 둘 다 탓을 하는 것은 무책임이며 또한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행위이므로. 그리고 어느 한 쪽의 입장의 손을 들어줄 때 그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진다. 욕먹는 걸 두려워해서는 글같은 것 쓰면 안 된다.
내 원칙이다. 욕먹는 것 그리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욕먹는 것 싫다고 두루뭉수리 하나마나 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욕 먹는 게 싫으면 그냥 입다물고 살던가. 욕 먹는 것 싫다고 누구로부터도 비난을 듣지 않는 하나마나 한 소리나. 오로지 자기 위주로 이기적인 글쓰기따위나 하고 있으려면. 늬들 모두 바보다.
이번 타블로 사태만도 그렇다. 핵심은 무엇인가? 타블로에 대한 불신이다. 타블로를 상처입힌 것은 바로 대중의 타블로에 대한 불신이었다. 불신이 뭐 그리 상처가 되는가? 그러나 단지 의심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앞에 대고,
"타진요도 못 믿지만 너도 못 믿는다."
어느새 타진요와 타블로가 동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판단이 서지 않으면 모를까, 아니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차라리 입 닫고 판단이 서기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만일 이야기를 할 것이면 먼저 판단이 서고서 하던가.
더구나 폭력에 대해서다. 당장 눈앞에서 한 개인에 대해, 그 가족들에 대해 폭력이 휘둘러지고 있는데, 단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한다. 단지 자기가 판단을 못하겠다는 이유로 슬쩍 한 손을 거든다. 의혹이 있다. 잘못했다. 해명하라. 네 책임이다. 그 고통에는 아랑곳 않은 채.
차라리 타진요의 입장에서 타블로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낫더라는 것은 그래서다. 그들은 최소한 자기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지고 있다. 지고 싶지 않아도 지게 된다. 그것을 각오하고 그들도 타진요의 편에 서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립을 이야기하며 양비론을 펴던 이들. 타진요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타블로에 대해서도 여전한 불신을 보내던 그들. 과연 그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판단을 할 수 없어 유보한 것이 아니라 타블로에게도 잘못이 있다며 불신하고 탓을 돌리던 그들에게.
참 뻔뻔스럽다는 것이. 그것이 어느새 중립이 되고 객관이 되고. 중용이 되고 합리가 되고. 그럴 거면 말하지만 글같은 거 쓰지 말라는 거다.
항상 내가 가장 싫어하던 글쓰기가 그런 글쓰기였다. 하나마나. 오히려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자기는 전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그런 안전주의. 자기의 지성에 도취된 그런 글쓰기들.
"타진요도 못 믿지만 타블로도 못 믿겠다."
같은 말이더라도,
"아직 나로서는 판단을 못 내리겠다. 아직은 유보다."
차라리 타블로 욕하던 쪽이 더 낫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나마 욕이라도 먹고 있으니. 그에 반해 이제 와서 왓비컴즈와 티진요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 언론과 인터넷문화를 비판하고 나선 사람들이란 과연...
인터넷 글쓰기도 많이 저렴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면 그만한 자각은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나 글쓰기가 가능하다 보니.
신중할 일이다. 그리고 과감할 일이다. 신중하지도 않고 용기있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 일신만.
말하지만 중립은 그냥 한 가운데서 양쪽을 두고 비난하는 게 중립이 아니다. 먼저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전제로 다른 이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립이다. 욕을 먹더라도. 비난을 듣더라도. 조롱거리가 되더라도. 바로 그 책임이 중립인 것이다.
다시 말해 누가 잘했는가 모르겠다. 누가 잘못했는가 모르겠다. 그러니 둘 다 의심이 간다. 둘 다 잘못했다. 그건 중립이 아니다. 단지 판단 이전이다.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아니면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거나. 결국은 책임을 질 주제가 안 되거나 책임을 지기 싫거나.
하여튼 중립이라는 말이 남의 나라 와서 참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 가장 불쌍한 것이 중립이라는 말 아닐까? 개나 소나 중립. 똥과 된장도 가리지 못하며 그저 중립. 그렇다고 그것이 크게 잘못한 일인가면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잘났다고 떠들만한 일인 것인가.
어느새 다시 도취되어 버린 사람들을 보며. 인터넷이라는 게 이렇다. 다시 타블로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자신있게 예견해 본다. 인터넷은 발전이 없다.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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