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왓비컴즈에 대한 공격 - 결국 바뀌는 것은 없는 것인가?

까칠부 2010. 10. 12. 06:59

타블로를 공격할 때도 그랬다. 타블로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욕할 때도.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들추고 파헤쳐 욕하고 조롱할 때도.

 

"이건 정의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들의 잘못을 응징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은 옳다."

 

지금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한 의혹제기였다 주장하는 심리가 그것이다. 지금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며 당당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이제 그 대상이 왓비컴즈로 바뀌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저 대단한 왓비컴즈가 우는 소리를 하게 된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악플러라니.

 

솔직히 고소하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있다. 더 심하게 당했으면 하는 마음이 확실히 있다. 하지만 그래서야 도대체 뭐가 다르겠는가? 섣부른 정의감으로 타인을 단죄하려 드는 그것에서. 타인을 탓하고 비난함에 있어 정도를 가리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악플러가 아니다. 오히려 그냥 모욕주고 망신주겠다 하는 악플러는 순진한 편이다. 상대에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겠다는 악플러는 솔직한 것이다. 자기 정의에 취해서. 어느새 정의의 용사 놀음에 빠져서.

 

"나는 옳다!"

 

그러니까 그저 그런 악플러 따위들은 어느 정도 주위에서 말리면 꼬리를 마는 시늉이라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감에 사로잡힌 얼치기들은,

 

"그래도 나는 옳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집에까지 찾아갈 수 있는 열정이라는 게. 법무부 공무원까지 사칭할 수 있는 의욕이라는 것이. 일인시위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적극성이라는 것도. 검찰에 고발하고, 언론과 인터뷰하고.

 

물론 말하지만 왓비컴즈는 말할 것 없이 개자식이다. 타빈요는 그냥 인터넷에 기생하는 버러지들이다. 특히 생각없이 부화뇌동하여 휩쓸린 인간들. 뇌란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한 채 타진요와 왓비컴즈 사냥에 나서는 개티즌보다는 한참 낫다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사적으로 제제할 권한을 누가 주었던가? 왓비컴즈를 비난하고 그 가족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그 누구에게 그러한 권리가 주어져 있던가?

 

반복인 거다. 이번에는 또 왓비컴즈가 악역이 되었고. 정선희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악역으로 남아 있다. 타블로야 그동안 당한 것이 그것이고. 또 누가 그 희생양이 될까?

 

어떻게 왓비컴즈가 그 많은 네티즌들을 낚을 수 있었는가. 그 잘났다던 파워블로거들마저 그에 휘둘려 정신을 놓을 수 있었는가. 바로 그런 의심할 줄 모르는 섣부른 정의감 때문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설익은 정의감 때문이다. 정의의 용사 놀이가. 판사놀이. 검사놀이. 영웅놀이.

 

하여튼 질리지도 않는 인사들이라는 생각이다. 어딜 가겠나? 그런 게 없으면 네티즌도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럴까? 이렇게나 극성스럽고 염치가 없을까? 정도를 모르고 절제를 모를까?

 

왓비컴즈와 타진요에 대한 욕이야 그동안 실컷 썼으므로. 타블로 옹호한 적 없다. 왓비컴즈와 타진요 욕했지. 더불어 네티즌 역시.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네티즌을. 정말 발전을 모르는 무리들이다. 왓비컴즈에 대한 미움과는 별개로 다시 왓비컴즈를 먹잇감으로 삼는 승냥이떼를 보며 그래서 화도 안 나는 것이다.

 

장담한다. 내기도 걸 수 있다. 지금 왓비컴즈를 아무 상관도 없는 양 비난하는 무리들 가운데 타블로에 똑같이 하던 인간들이 섞여 있음을. 그리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았을 때 또 그대로 하고 말리라는 것을.

 

네티즌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특히 개티즌들. 개가 사람말 한다고 사람이 될까? 구미호가 끝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본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혐오할 뿐이다. 깊이. 진심으로 경멸한다.